진정한 전통문화가 중국에 남아 있을까. 많은 중국인 예술가들은 이 물음에 주저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5000년 역사의 중국 전통문화가 지금 중국에는 없다는 것이다.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대부분 사라졌고, 그나마 명맥을 유지한 것도 정치색으로 철저히 망가졌다. 하지만 수많은 중국인의 마음속에 전통으로 돌아가고 싶은 불씨마저 꺼진 것은 아니다. 그들의 염원은 하나둘씩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 소리 없이 일어나고 있는 문예부흥운동, 글로벌 중국어 위성방송 NTDTV가 주최하는 제5회 ‘전세계중국무용대회’다.
중국무용의 태동
중국 56개 민족은 유목, 농경, 수렵 생활을 통해 특유의 문화를 만들었다. 요고(腰鼓), 앙가(秧歌), 화고등(花鼓燈), 노생무(蘆笙舞) 등 다양한 무용이 탄생했고 방대한 중국무용을 구성했다.
현대 중국인은 고유의 무용이 없는 민족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질박한 무용의 힘은 민족의 혈액 속에 살아 숨쉬고 있었다. ‘시경(詩經)’에는 선민이 대지에서 춤을 추었던 노래를 남겼으며, 민간 무용의 생명력, 궁정 무용의 내포, 경극의 흡인력 등, 끊임없이 샘솟는 원천으로 중국무용은 세계 문화의 진귀한 보물이다. 민족의 독특한 신운(身韻), 신법(身法)으로 중국무용은 독특한 생명 풍격을 나타내 발레와 함께 각각 동, 서양을 대표하는 완벽한 고전무용으로 자리잡았다.
당나라 때 궁중무용은 최고봉에 이르러 ‘예상우의무(霓裳羽衣舞)’ ‘진왕파진악(秦王破陣樂)’ 등 걸작을 남겼다.
송나라에 이르러서는 중국무용이 경극에 유입돼 서사를 위주로 하는 문학 기풍이 농후한 대무(隊舞)를 이루었다. 명, 청나라 시기 경극이 최고봉을 이루었을 때 중국무용에서 잡극(雜劇)이 융성했고, 독립적인 예술성을 잃은 반면 풍부한 이야기와 표현력을 지니게 됐다.
동시에 몽골(蒙)족, 장(藏)족, 태(傣)족, 이(彞)족 등 민족 무용은 민족의 역사를 지니고 대지에 살아남았다. 농민들의 앙가, 서북 사나이들이 황토고원에서 치던 요고는 가슴을 벅차게 한다.
소리 없이 사라진 중국무용
청말에 이르러 서양 군함이 빈번히 출몰하자 청나라는 옹정(雍正)시기부터 쇄국정책을 시작했다. 일련의 실패를 거친 후 오만하던 중국은 열등감을 느꼈다. 중화민국 초기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소리 없는 나라로 조롱 받았고, 예술 역시 그러했다. 사람들은 경극의 타악기 리듬과 경극 배우의 노래 곡조에 빠져 대당성세(大唐盛世)의 기세 있는 무용을 볼 수 없게 됐다. 마약이 성행하면서 중국은 ‘동아시아의 병든 나라(東亞病夫)’라는 조롱을 들어야 했다. 정통적인 문화는 힘을 잃었고 중국에서 전통무용은 사라진 듯했다.
난세와 혁명의 파도 속에서 무용은 정치 도구로 전락해 순수한 예술의 힘을 잃었다. 경극도 오락과 관광 상품으로 간신히 명맥을 이어갔다. 중국인은 팔다리를 높게 들어 공중으로 솟구치는 중국무용의 동작을 잃음과 동시에 자신감과 긍정적인 마음을 잃었다.
한 차례 또 한 차례 혁명과 내부 투쟁을 거치면서 중국인으로서는 스스로 치료할 수 없는 상처를 지니게 됐다. 중화민국 시기를 거쳐 중국인을 대재앙에 빠트린 공산당이 집권하면서 상처는 더욱 깊어졌다.
(左)무산계급 혁명 아래 중국인은 과거 60년간 영혼을 잃은 모범극을 춰야 했다. (右)상하이의 한 나이트클럽. 현란한 모습에 순수는 이미 사라졌다. AFP/Getty Images
영혼을 잃은 허수아비 춤
공산당이 집권한 60년간 예술과 무용의 진정한 가치를 잃어버린 중국인은 매우 불행했다. 무산계급혁명 하에 탄생한 무산계급 예술과 모범극은 악몽 같았다. 붉은 기가 첩첩 산중에도 휘날리면서 중국인은 문화의 대지를 잃고 존엄과 신념을 잃어 버렸다.
중국인이 과거 60년 동안 췄던 모범극과 충자춤(忠字舞)을 돌이켜 보면 전통과 영혼이 없던 날들이었다. 마치 전 국민을 납치해 감금한 것 같던 시기였다.
대기근과 문화혁명은 중국인들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스스로 낸 상처였기에 서양인의 총이나 대포, 약탈보다 더 깊었다. 아직 중국인들은 거대한 상처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산송장처럼 살아 온 세월 속에 문화혁명과 6.4톈안먼 대학살, 독분유 사건과 쓰촨 대지진을 지나왔다.
공산당 독재 통치는 거짓말을 기초로 했다. 경제개방 정책으로 ‘경제 기적’이라는 가상을 심어 중국인의 자유와 정신을 박탈했다. 공산당이 중국인에게 입힌 상처는 감춰지고 변형됐고, 시장경제와 소비문화 속에서 잊히는 듯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이 예언한 것처럼 21세기는 중국인의 시대가 되어 가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부실 공사로 인한 인명 피해, 저급 문화, 거액의 혈세를 투입한 우주 계획 등이 함께 했다.
‘말만 고전’ 현대무용과 발레 섞은 대륙 무용
미술과 문학처럼 무용도 한 민족의 생명력을 측정하는 바로미터다. 강국으로 불리는 중국에서 사람들은 무슨 춤을 추고 있을까. 1980년대 죽의 장막이 열리고 중국인은 세계와 다시 연결됐다. 중국인은 황혼과 어두운 밤을 드나들며 연못, 초라한 대학 잔디밭에서 디스코를 췄다. 그런 무용은 욕망이었다. 상하이가 일류 대도시가 된 후 현란한 나이트클럽이 여기저기 들어섰지만, 춤은 점차 본래의 순수성을 잃어가고 있다. 중국인조차 자조적으로 “10억 인구에서 9억은 도박하고 1억은 춤을 추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보여준 고대복장 차림의 군무는 사실 현대무용이 주가 된 이름 모를 춤이었다. 화려한 무대에 오른 중국고전무용은 공산당 문화와 외래문화가 뒤섞여 말인지 당나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영혼을 잃은 중국의 현주소였다.
꿈의 중국으로 돌아가다
지난 NTDTV ‘전세계중국무용대회’에 출전한 리샹쉬(李詳諝, 좌)와 리보우위안(李寶園)이 2인무 '칠보성시(七步成詩)'에서 장력이 잘 느껴지는 동작을 연기하고 있다. 대기원
역사적인 문예 회복운동은 중국 밖에서 일어났다.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중국어 위성방송 NTDTV가 주최한 ‘전세계중국무용대회’는 중국무용의 순수성을 되찾는 주역이 되고 있다. 이룰 수 없는 아름다움 꿈을 이루게 한 듯한 이 대회는 우아한 중국무용을 재조명받게 했고, 세계 무용의 흐름까지도 이끌 태세다. 중국무용은 어느새 세계를 향하고 있다. 올해 5회째를 맞아 중국 땅인 홍콩에 상륙한 대회의 성공은 중국무용이 신세계 주류 예술을 이끌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올해 세계 80여 개 도시를 순회한 화인공연예술단체 션윈(神韻)예술단 수석무용수인 구윈(古韻)은 “현대와 외래의 다른 요소를 섞지 않고 순수하게 중국 고전무용의 예술 형식만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정말 불가사의 한 일”이라며 “중국인들은 해외 유행을 선호하고, 많은 중국 고전무용에 현대 무용, 발레의 기술을 섞었다. 중국을 벗어나서야 사회 주류층이 감상하는 것은 전통 문화임을 알게 됐다”고 언급했다.
중국이 어떻게 고전무용을 잃었는지를 대회 대변인 리웨이나(李維娜)는 상세하게 설명했다. “나도 중국에서 자란 사람이다. 나는 중국에서 당신이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든지 얼마나 사업에 정력을 기울이든지 얼마나 헌신하든지 결국은 (중공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지금 중국의 공산당 문화 환경에서는 진정한 중국문화의 내포가 담긴 좋은 작품을 할 수 없다. 중국무용가에게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구소련에서부터 오늘날 중국에 이르기까지 우수한 무용가들은 진정한 예술을 하기 위해 조국을 버리고 도피할 수밖에 없었다. 1981년 발레리노 리춘신(李存信)은 미국으로 망명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자유세계 고전발레 무대에서 뛰며 ‘세계 10대 발레리노’에 선정되기도 했다.
“나는 여태껏 조국을 배반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나라에 공헌하려는 생각을 해왔지만 나는 이런 권리를 박탈당했다.”
이런 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마오(마오쩌둥)의 라스트 댄서’에는 일련의 과정이 담겨 있다. 중국에는 이미 진정한 무용가가 없다. 중국에서 진정한 예술가와 작가는 결국 외국행을 택할 수밖에 없다.
무용대회 아태지역 첫 경기가 처음으로 홍콩에서 열린다. 대륙 무용가들은 강을 건너 마음 속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순수한 중국무용을 추게 된다. 그들은 꿈을 실현하게 됐다.
주최 측은 “중국인 무용가들이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말고 참가해 위대한 예술 인생의 서막을 열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대륙 무용가들이 강을 건너 대회에 참가함으로써 중국 무용계의 비극을 종식시키는 것이 이번 대회의 가장 큰 의의다.
무용을 통해 세계인이 다시 중국문화를 바라볼 때,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중국은 어떻게 무용을 잃었고, 어떻게 되찾았을까?” 무용을 되찾는 진정한 의의는 한 민족의 장엄한 생명을 되찾는 일과 같다.
(上)지난 NTDTV ‘전세계중국무용대회’에서 작품 ‘소년영대(少年英台)’를 선보인 리징징(李晶晶). 연보라색 옷을 입고 보라색 큰 부채를 들고 열연했다. (下)천쟈링(陳佳伶)의 ‘선무청천(仙舞清泉)’. 맑은 샘물처럼 아름답고 특이한 경험이다. 대기원
사라진 정통(正統) 중국무용의 부활
뉴욕에서 제1회 대회가 열릴 때 홀에는 관중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당시 최우수상을 수상한 무용가들의 완벽한 무용 기법은 모든 것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여자 무용가 런펑우(任鳳舞)가 머리에 연꽃을 달고 고전적인 중국옷을 입은 채 순수하고 아름다운 ‘연화송(蓮花頌)’을 펼쳤고, 남자 무용가 천융자(陳永佳)는 흰옷을 입고 상투 끈을 날리며 고대 무인의 위용을 하늘에 떨쳤다.
그들을 시작으로 중국무용은 역사 속에서 되살아난 것 같았고, 5년간 대회는 중국무용계의 성대한 축제가 됐다. 관중들은 겨우 티켓을 구해 대회장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이 대회는 일류 무용수를 발굴했고, 사람들에게 진정한 무용이 무엇인지 알렸다. 무엇보다 변질된 중국무용을 바로 세우고 새로 태어나게 했다.
21세기에 우린 다시 진정한 무용을 보았다. 이 대회를 통해 중국무용의 독특한 신법(身法), 신운(身韻), 수천 년 전 신(神)이 전한 문화의 내포를 볼 수 있었다. 민족의 오랜 심미관과 품격, 잃어버린 지 오래된 여인의 우아하고 부드러움, 강인하고 굳센 남자의 모습, 예의와 의협심 등 중국 고유의 기질이 담긴 예술은 보는 이들에게 중국무용의 혼을 느끼게 했다.
대회에서 우선 평가하는 항목은 신운(身韻)이다. 이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수천 년 문화를 거쳐 체내에 깊이 뿌리박힌 일종의 기질이다. 진정한 예술가는 생활에서도 노력을 거쳐 자신을 바꿔야 한다. 현대인이 중국고전무용의 운치를 표현하려면 무용수 자체가 전통적인 가치관을 몸과 마음으로 익혀야 한다.
이는 중국무용의 어려운 점이며 또한 가장 소중한 부분이다. 진정한 중국무용이 현대사회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원인일지도 모른다. 현대 중국무용계는 뒤틀린 형상과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자태로 중국무용을 추고 있지만, 추한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거짓을 진실로 속이고 있다.
이 대회가 열리면서 중국무용은 더는 박물관의 표본이 아니게 됐다. 청년 무용가는 고전무용의 깊은 뜻을 사색하고 탐구하며 어려운 기교를 연마한다. 내면에서 표현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며 중국무용의 경지에 들어섰다.
대회에서 무용가들이 선보이는 무용은 시공을 초월한다. 젊은 무용가들이 세심하고 조리 있는 작품을 선보일 때 중국무용의 기적 같은 부활이 목격됐다. 당시 부활한 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잊어버린 비할 바 없이 아름다운 고대 중국이었다.
인류는 다시 춤추고 있다
세계인이 중국무용을 직접 체험하고 중국무용의 다채로운 풍모를 감상할 줄 알게 된다면, 중국무용이 이미 생활의 일부분이 됐을 때일 것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미적 경험을 느끼고 무용의 미학을 다시 세울 것이다. 중국고전무용은 사람들이 무용을 생각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분야가 될 것이다.
천천히 침몰하는 현대문명의 폐허에서 중국무용의 부상은 신이 준 기적이다. 무용수가 공중으로 도약할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그리듯, 진정한 사람의 품격을 되찾을 때다.
역사적인 여느 사건과 마찬가지로 대회는 하나의 시작에 불과하다. 대회 수상자들 중에는 ‘5000년 중국 전통문화의 부활’을 알리는 션윈예술단 월드투어로 세계무대에 진출하기도 한다. 조용히 신(神)이 전한 중국 전통문화의 부흥을 알리며 시간 속에 잃어버린 중국의 진면목이 부활하고 있다.
대회에 참가한 무용수 개개인의 풍채에서도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대범한 깊은 내포가 드러나고 있다. 무용이라는 가장 원시적인 신체예술에서 바른 문명의 길로 돌아가는 인류의 미래가 보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