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5일 뤄양(洛陽)의 중국인들이 반일시위를 벌이며 일본 국기를 불태우고 있다. (사진=AFP)
9월 15일 중국 52개 도시에서 ‘조직적’인 대규모 반일시위가 벌어졌다. 네티즌들의 통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전국의 ‘애국(愛國)청년’들이 부순 일본차가 1900여 대, 일본계 상점 70여 곳을 약탈했고 점포 3곳에 방화를 했다고 한다. 또한 중국내 ‘친일파’ 50여 명을 공격했고 이중 2명의 ‘임산부’가 공격을 받아 유산했으며 창사(長沙)에서는 17세의 한 여성이 3명의 남자들에게 윤간을 당했다. 통계에 따르면 이번 시위로 국가에 끼친 손실은 약 29억 5000만 위안 가량 된다고 한다.
한편 중공 당국의 통계에 따르면 최근 부패공직자들이 해외로 빼돌린 돈이 8000억 위안을 넘어섰다. 이는 일본이 설정한 댜오위다오의 가치를 기준으로 할 때 6천개 이상 살 수 있는 금액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중공이 반일(反日)을 이용해 민중들의 민족정서를 선동하는 것은 상투적인 수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우언라이(周恩來)는 1946년 국민당 정부의 반일시위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 적이 있다. “국민당 선전부장 장췬(張群)은 ‘중국인민들은 나라를 사랑해야 하고 장제스(蔣介石)총재에게 충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 인민이 나라를 사랑해야 하지만 사랑할 대상은 인민의 국가이지 한 무리 반동파들의 국가가 아니다. 반동파는 출로가 없을 때면 극단적인 외국인 혐오 정서를 선동해 민중들의 시선을 돌리고 통치위기를 완화하려 한다.” 이 말이야말로 지금 중공의 반일 선동에 대한 아주 정확한 해석이다.
장궈타오(張國燾)는 ‘나의 기억’ 중에서 “1938년 8월 화베이(華北)에서 중국과 일본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자 마오쩌둥(毛澤東)은 마음을 놓았다. 마오쩌둥은 공개적으로 ‘장제스란 화근이 일본 저쪽으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또 장원톈(張聞天) 역시 득의양양하게 ‘항일전쟁이 마침내 발발했고 장제스는 이미 우리를 해칠 힘이 없다’고 말했다. 마오쩌둥은 당시 모자를 2개 갖고 있었는데 밖에서 사람을 만날 때면 새로 만든 국군 모자를 썼고 내부에서 회의를 할 때는 원래의 홍군 모자를 썼다”라고 기록한 바 있다.
역사적으로 ‘제9대’를 앞두고 중공 지도부는 문화혁명에 대한 견해차이로 심각한 분열양상을 보였다. 적지 않은 지방에서 두 파사이에 무장투쟁이 벌어져 대회를 개최하기조차 어려워졌다. 하지만 1969년 3월 전바오다오(珍寶島)에서 중국과 소련 간에 소규모 무장충돌이 벌어지자 중공 지도부는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면서 신속하게 계파조직을 없애고 4월에 ‘제9대’를 개최하기 위한 조건을 만든 바 있다.
1938년 11월 9일부터 10일 새벽 사이 나치 정부의 배후조종 하에 독일민중들이 자발적으로 거리에 몰려와 유태인 상점을 약탈하고 7천개 이상의 유태인 점포와 29개의 백화점에 불을 질렀으며 적어도 91명의 유태인들이 사망했다. 당시 거리 곳곳에 깨진 유리가 달빛에 반사되어 마치 수정처럼 빛났기 때문에 역사에서는 이 사건을 ‘수정의 밤’이라고 한다. 이후 채 1년도 안되어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이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수렁에 빠졌다.
중공은 지금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리자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열도)’로 불장난을 하며 반일감정과 민족정서를 선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불장난은 결국 자신의 멸망만을 재촉할 뿐이다.
110-340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32길 36, B107호(익선동 운현신화타워) | 정기간행물등록: 서울 다 06384
대표전화 02-557-2050 | 팩스: 02-6280-2050 | 독자의견 editor@epochtimes.co.kr
제보 sisa@epochtimes.co.kr (시사) | culture@epochtimes.co.kr (문화) | ent@epochtimes.co.kr (연예)
Copyright ⓒ since 2003 대기원시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