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중국의 약 30여 개 도시에서 반일(反日)시위가 벌어졌다. 이번 시위의 배경은 홍콩의 몇몇 인사들이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 명 센카쿠)에 상륙했다가 일본 측에 의해 체포, 억류, 강제추방을 당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에 대한 반발로 일본의원과 민간 인사들이 이 섬에 상륙해 자신들의 입장을 널리 알리기도 했다.
댜오위다오를 일본 측에서는 센카쿠열도(尖閣諸島)라 부른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 미국, 영국, 중국 세 나라 대표가 서명한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회담’을 발표해 전쟁이 끝난 후 일본의 주권을 혼슈, 홋카이도, 큐슈, 시코쿠로 제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일찍이 1895년 청일 양국이 맺은 시모노세키조약에 의해 ‘영원히 일본에 할양’하기로 했던 대만은 중화민국이 신탁통치하고, 센카쿠열도를 포함한 오키나와 군도(群島)는 미국이 신탁통치하기로 정해졌다. 한편, 카이로선언과 포츠담회담에 참여하지 않았던 소련은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전쟁이 끝나기 직전인 1945년 8월 8일 갑자기 대일 선전포고를 하고 일본의 북방 4개 섬을 점령했다.
1953년부터 1958년까지 중공 관영 인민일보는 일련의 사설과 문장을 발표해 “센카쿠열도를 포함한 오키나와 군도”에 대해 “이들 도서(島嶼)는 과거 그 어떤 국제협약에서도 일본과 따로 떼어 규정된 적이 없다”고 분명히 지적했다. 또한 소위 “중국이 오키나와에 대한 주권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주장은 미국이 날조한 것으로 이는 중일양국에 대한 “악랄한 도발”이자 “오키나와 주민들이 오키나와를 일본에 귀속시키도록 강력히 요구하게 하려는 목적”이라고 성명했다.
1972년 미국은 센카쿠열도를 포함한 오키나와 군도(나중에 오키나와 현으로 불림)를 일본 측에 넘겼고 중공 측은 당시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같은 해 중일 국교정상화를 위한 담판에서 중공 총리 저우언라이는 “댜오위다오 문제는 언급할 필요가 없으며 그것은 양국이 국교를 회복하는 것에 비하면 하찮은 문제”라고 명확히 표시했다. 뿐만 아니라 담판에 참가했던 일본 공민당위원장 타케이리 요시카츠(竹入義勝)에게 “나는 센카쿠열도에 대해 아는 게 없고 센카쿠열도에 대해 관심도 없다”고 말했다.
이와 동시에 중공은 또 소련에 점령당한 일본의 북방 4개 섬에 관심을 보였는데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및 중공 당국은 반복해서 “일본의 북방 4개 섬 수복을 지지 한다”고 성명했다.
제2차 대전이 끝나고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중국대륙과 대만 정부에서 제작 배포한 관방지도에는 모두 댜오위다오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나중에 대만 측에서 댜오위다오는 대만이나 혹은 중화민국의 영토에 속한다는 주장을 끊임없이 제기하기 시작했고 대만, 홍콩 및 미국 화교권에서도 줄곧 댜오위다오를 지키기 위한 인사들과 단체의 행동이 있었다. 이에 중공 정부 역시 피동적으로 댜오위다오의 주권문제에 대해 언급하게 됐다. 덩샤오핑 시대에 중공은 일본의 경제 원조를 받느라 급급했기 때문에 댜오위다오에 대해 덩은 직접 “일단 논쟁을 덮어놓고 후손들에게 남길 것”을 제안했다.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논쟁이 치열해진 것은 이 섬 주변에 석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는 것이 알려진(1967년 최초 발견) 이후의 일이다. 중국, 대만, 일본은 모두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에 대해 주권을 갖고 있다고 선포했다. 행정구역상 대만은 댜오위다오를 이란현(宜蘭縣) 터우청진(頭城鎮) 다시리(大溪里)에 예속시켰고 일본 측에서는 오키나와현 이시가키시(石垸市)에 예속시켰다. 그러나 중국대륙에서는 아직까지 댜오위다오의 행정구역조차 정해놓지 않았다.
사실 일본은 1895년 ‘주인 없는 땅’이던 댜오위다오를 자국 영토에 편입한 이래 1945년부터 1972년까지 미국의 신탁통치 기간을 제외하고 줄곧 이 섬을 ‘실제로 점유하고’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이달 들어 중국 민중들의 반일시위가 발생하고 각지에서 수백 명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시위대가 등장한 것은 최근 수년간 보기 드문 경우에 속한다. 분명 베이징 당국에서 어느 정도 암묵적인 허가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중공 고위층은 내심으로 지금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어도 댜오위다오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일본 입장에서는 이미 실제로 점유하고 있고 또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영토를 굳이 양보할 이유가 없다. 중국입장에서는 정부에서 이미 “댜오위다오 및 그 부속도서는 옛날부터 중국고유의 영토였다”라고 말했지만 어떻게 회수할 수 있단 말인가? 대만 입장에서는 지리적으로 댜오위다오가 대만과 가장 가깝고 중국이나 일본과는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양국의 다툼이 끊이지 않으니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미국 입장에서는 기왕 댜오위다오를 포함한 오키나와군도를 일본 측에 넘겼고 또 미일안보협정까지 맺은 상태인데 어떻게 현 상태를 바꿀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전쟁이란 무력투쟁 카드를 제외하고 댜오위다오 논쟁을 해결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누가 감히 전쟁을 벌일 수 있겠는가? 매년 미친 듯이 군사비와 군비 및 무장을 증가시켜온 중공집단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경거망동할 수 없다. 진퇴양난에 빠진 중공 지도부는 민간의 반일시위를 조심스레 통제하면서 민중들의 분노를 일부 발설케 하는 동시에 국민정서를 이용해 일본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불장난이 지나칠 경우 중난하이가 두려워하는 정국의 안정을 해칠 수 있고, 자칫하면 창끝이 중국정부를 겨냥할 수 있다. 자칫하면 자기 발등을 찧을 수 있다는 의미다.
대만, 홍콩, 미국 화교계에 비해 지역도 넓고 인구도 훨씬 많을 뿐 아니라 민족주의가 성행하는 중국 대륙에서 댜오위다오를 지키려는 사람이나 단체의 활동은 오히려 드물다. 원래 애초 댜오위다오 문제를 제기했던 인사나 단체는 모두 중공 당국의 탄압을 받았거나 경고를 받았으며 심지어 감시를 받다 목을 매 자살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애국이고 무엇이 매국인가? 분명한 것은 보편적인 가치가 심각하게 결핍된 중국에서는 심지어 국민이 주권을 지키려는 권리마저도 박탈당했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국가를 지키려 한다면 우선 독재자의 표정부터 살펴야 한다.
또 이번에 홍콩 인사들이 댜오위다오에 상륙해 중화민국 깃발을 꽂았지만 중국 매체에서는 이를 중공의 오성홍기로 바꿔 보도했다. 날조 대국 중국의 현실이 안타깝고 정권의 이익을 위해 민족정서까지도 멋대로 희롱하는 중공의 ‘애국’ 태도에 웃을 수도 그렇다고 울 수도 없는 상황이다.
110-340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32길 36, B107호(익선동 운현신화타워) | 정기간행물등록: 서울 다 06384
대표전화 02-557-2050 | 팩스: 02-6280-2050 | 독자의견 editor@epochtimes.co.kr
제보 sisa@epochtimes.co.kr (시사) | culture@epochtimes.co.kr (문화) | ent@epochtimes.co.kr (연예)
Copyright ⓒ since 2003 대기원시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