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 선전부장 류윈산(劉雲山)은 공청단 파가 아닌 장쩌민 파의 적자이자 혈채파의 ‘괴벨(나치 독일의 선전부장)’로 불리며 가장 추악한 죄를 졌다. 그는 저우융캉, 보시라이의 모반에 깊숙이 관여했으며 지난 수년간 선전(宣傳)부문에서 혈채파의 태자 보시라이를 도와 모반을 위한 기초를 다져왔다.
일각에서는 류위난이 네이멍구 공청단 부서기직을 2년간 맡았다는 이유로 그를 공청단 파(후진타오 계열)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또한 류윈산이 통제하는 우마오(五毛:인터넷 댓글 알바)들이 의도적으로 이 점을 혼동되게 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가 공청단 파 중에서 상무위원에 진입할 다크호스라고 쓴 글도 있다. 더불어 일부 매체들도 덩달아 이런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다.
필자는 평론을 통해 류윈산에 대한 세간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자 한다. 사실 중공의 많은 관리들이 관직에 처음 들어설 때 공청단 간판부터 시작한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는 그가 후진타오 파라고 할 수 없다. 엄밀히 말해 중공에 공청단 파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땅히 후진타오 파, 원자바오 파, 시진핑 파 및 이미 붕괴된 장쩌민 파 등으로 분류해야 한다.
사실 류윈산의 경력을 살펴보면 그가 장쩌민 파의 적자임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지난 1968년 네이멍구 지닝(集寧)사범학교를 나왔고, 중등전문학교 학력의 문화혁명 극좌파 출신이다. 1993년 권력을 장악한 장쩌민에 의해 중앙선전부 부부장으로 발탁됐으며, 1997년에는 중앙정신문명판공실 주임(장관급)을 겸직했다. 그는 줄곧 장쩌민 수하에서 장관급 대우를 받으면서 9년간 선전부 부부장으로 일했다.
2002년에는 장쩌민의 파룬궁 탄압에 적극 가담한 공로로 선전부장으로 승진했으며 장쩌민이 은퇴한 후에도 선전부문에서 여전히 탄압정책을 지속해 왔다. 2002년 상무위원에 진입한 리창춘이 선전업무를 관장했지만 그의 목적은 후진타오-원자바오(이하 후-원)가 류윈산의 업무에 직접 간섭하지 못하도록 보호 우산 역할을 한 것에 불과하다. 장쩌민은 류윈산의 날조와 모함능력에 대해 아주 만족스러워했으며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2001년 발생한 톈안먼 분신자살날조극이다. 더욱이 류윈산은 ‘610’ 사무실 영도소조의 핵심멤버로 전국적으로 파룬궁을 탄압하고 모함하는 선전공작을 주관해왔다. 전국 ‘음란물 소탕’‘불법출판물 소탕’ 공작소조 조장을 맡고 있는 류윈산은 전형적인 장쩌민 파 인물로 혈채파의 괴벨이자 장쩌민이 육성한 차세대 대변인 중 한 명이다.
류윈산은 혈채파 원흉의 한 사람인 전 공안부장 자춘왕(賈春旺)과 사돈관계로 그의 아들 류러페이(劉樂飛)는 자춘왕의 딸 자리칭(賈麗青)과 결혼했다.
주지하다시피 저우융캉과 보시라이가 권력을 쟁탈하기 위해 모반을 꾀한 것은 이미 4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이 점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으며 보다 구체적인 것은 장톈량 교수의 ‘저우융캉 모반 꾀한 지 이미 4년 넘어(周永康企圖謀反已至少四年)’란 기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저우융캉-보시라이(이하 저우-보)의 모반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사실 간단히 말한 것에 불과하며 사실상 혈채파 전부가 다양한 정도로 이번 모반에 참여했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수만 명 사람의 살아있는 몸에서 장기를 빼내 팔아먹은 죄악은 이미 그들 혈채파의 퇴로를 막아버렸기 때문에 그들 모두는 좋든 싫든 어쩔 수 없이 모반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는 쩡칭훙과 류윈산 등도 포함된다.
사실 혈채파 선전부장으로서 류윈산이 만약 모반에 주동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왜 그런가? 저우-보가 모반을 꾀하기로 확정한 후 류윈산의 움직임을 보면 알 수 있다. 2009년 11월 류윈산은 충칭을 조사연구차 방문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동행했다. 이중에는 중선부(중앙선전부) 부부장이자 문화부장인 차이우(蔡武), 신화사 사장 리충쥔(李從軍), 중선부 부부장 왕샤오후이(王曉暉), 광명일보 총편집 거우톈린(苟天林), 중국국제라디오방송사장 왕칭녠(王庚年), 중앙편역국(中央編譯局) 국장 웨이젠화(韋建樺) 등이 포함됐다. 류윈산은 당시 방문에서 보시라이의 ‘창홍(唱紅)’을 높이 평가하고 충칭의 홍가(紅歌)공연을 찬양했다. 또한 보시라이가 충칭 방송이나 화룽왕(華龍網) 등 여론매체를 이용해 창홍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것에 대해 전폭적으로 인정하고 지지해줬다.
아울러 류윈산이 충칭에 데려간 선전부문 책임자들은 이후 몇 년간 보시라이 선전에 큰 역할을 했다. 다시 말해 보시라이가 전국적으로 큰 영향력을 지닐 수 있고, 전국적인 범위에서 성공리에 선전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류윈산의 공로를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성과에 도달할 수 있을 정도라면 선전부장이 주동적으로 참여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이다.
혈채파 핵심으로서 류윈산은 또 저우융캉과 함께 엮일 수밖에 없으며 일단 파룬궁 탄압정책이 중단되면 자신의 결말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의 사돈인 전 공안부장 자춘왕 역시 피해갈 수 없으며 그와 아들이 착복한 돈도 지킬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저우융캉과 보시라이가 감히 모반을 꾀했다면 보시라이를 선전하고 시진핑을 모함한 선전부장 류윈산도 마찬가지로 이번 모반에 가담한 괴벨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류윈산의 아들 류러페이(劉樂飛)는 또 중공 2세대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공안부장의 사위이자 선전부장의 아들로서 그는 겨우 22세의 나이에 재정부 종합사(綜合司)에 들어갔으며 곧 부처장으로 승진했다. 일반적인 대학 졸업생이라면 하늘에 오르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25세 때는 국가 야금부 직속의 중예안순다(中冶安順達)실업총공사 부총경리가 되었고 동시에 서우촹(首創)증권공사 집행이사가 되었다. 30세 때는 중국은하증권유한책임공사 투자관리총부 총경리가 되었다. 33세 때는 중국인수(中國人壽-중국생명보험)수석투자관이 됐고 35세에는 중국인수 투자업무를 총괄했다. 중국인수는 현재 총자산이 1조 위안(약 181조)에 달하는 중국자본시장 최대의 기관투자사에 해당된다.
류러페이가 중국인수를 장악한 후 중국인수의 자금은 류씨 가족의 쌈짓돈이 됐고 류러페이는 류씨 가족이 통제한 부동산개발공사를 통해 막대한 돈을 벌었다. 2008년 12월에는 또 중신산업기금(中信產業基金) 이사장 겸 CEO가 됐다. 하지만 올해 6월 12일부터 더 이상 중신산업기금 이사장을 맡지 않게 됐다. 이것은 후-원이 류씨 가족들을 정리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란 관측도 있다.
류윈산은 장기간 장쩌민과 공산당의 나팔수 역할을 하면서 사상이 보수적이고 경직돼 있으며 선전을 독점했다. 매체와 인터넷 여론을 탄압하고 통제하며 반대인사들에게 강경한 수단을 사용했으며 우민정책을 실시해왔다. 2011년 7월 원저우 열차추돌사고가 발생했을 때 장더장이 사고가 발생한 후 불과 8시간 만에 수색을 중지하고 현장에 있던 잔해를 파묻고는 시신을 화장해 흔적을 없애 전국적인 분노를 산 바 있다.
나중에 류윈산은 같은 장쩌민 파 인물 장더장을 돕기 위해 보도금지령을 내린 바 있다. 이 때문에 그는 매체와 네티즌들의 공적이 되었다. 후진타오는 최근 류윈산의 극좌적인 발언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다. 지난 5월, 16명의 윈난성 원로들이 공개서신을 발표해 저우융캉과 류윈산의 면직을 요구하고 류윈산을 18대 상무위원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요구한 바 있다.
최근 몇 년간 류윈산은 전국매체에 대해 원자바오의 정치개혁 담화나 혈채파에 대한 비난에 대해 여러 차례 축소하거나 수정보도를 요구했다. 가령 얼마 전 원자바오가 ‘구시(求是)’에 발표한 문장의 원문은 많은 부분에서 아주 엄중한 말을 사용해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의 요언(유언비어) 조사명령을 비판했다. 그러나 요언 조사와 관련된 부분은 류윈산에 의해 삭제됐다.
류윈산은 이처럼 각종 행동에서 드러나듯 거짓을 날조하고 여론선전을 통해 사람들을 매장시킨 인물이다. 그가 직접 손에 피를 묻히지는 않았지만 그의 죄는 아주 크며 혈채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주동적으로 저우-보의 모반에 참여했으며 이는 끝까지 히틀러를 추종한 괴벨과 다를 바 없다. 단지 류윈산은 자신이 통제하는 선전부와 대량의 우마오를 이용해 자신의 피비린내 나는 진면목을 은폐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괴벨은 여전히 괴벨이며 모반에 참여한 류윈산이 18대 상무위원이 되는 것은 후진타오-원자바오에 대해 특히 시진핑에 대해 모욕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또 미래 정권을 불안정하게 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류위산은 절대 18대 상무위원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모반에 참여한 죄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원자바오의 원문 중에서 삭제된 부분을 첨부해 독자 여러분들에게 류윈산이 어떻게 매체와 여론을 통제하고 있으며, 어떻게 주동적으로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을 도와 진실을 은폐했는지 알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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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에 발표된 원자바오의 원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현재 인민군중은 인터넷에서 아주 많은 말들을 전하고 있는데 이는 무슨 요언이 아니다. 정반대로 우리의 많은 설법이야말로 거짓말이자 요언이다. 충칭시 정부가 왕리쥔이 병가를 내고 치료를 받았다고 한 것은 충칭시 정부가 날조한 요언과 거짓말이 아닌가?”
또한 원자바오는 “소위 요언조사령은 문화혁명 기간에 정치적인 요언을 조사한 것과 마찬가지이며 이는 완전히 문화혁명과 같은 방식이다”고 말했다. 또 “요언을 조사하라는 방식은 인민군중의 지혜를 너무 얕잡아 보는 것으로 인민군중은 밝은 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결국 사실로 드러나기 마련이며 그 누구도 장기간 사실을 은폐할 순 없다”고 했다.
원자바오는 또 “현재 소위 요언이 나타날 수 있는 이유는 정부가 마땅히 공개해야 할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절대다수의 소위 요언이 적대세력의 공격이 아니라 인민군중이 나라와 백성을 걱정한 것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민의 희망을 반영한 것이다. 지금 요언을 조사하라는 명령은 민심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예 소통할 수 없는 것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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