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도시 전경이 이 세상이 아닌 듯 명료하다. 빠트리는 곳 없이 내리쬐는 빛이 도시 전체를 감싼다. 제각각이면서도 완벽한 형태의 건물은 완전한 원형을 이루며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사람을 찾아볼 수 없는 그림 속 도시는 고요함과 함께 엄숙함이 느껴진다. 작자 미상, 이탈리아 우르비노의 마르케 국립 미술관 소장. 목판 템페라화(달걀을 용매로 써서 수채물감으로 유화 느낌을 낸 기법). (마르케 국립미술관)
학문과 예술의 부활을 외치던 르네상스 시대 건축가들은 신의 완벽함과 조화로움을 전하기 위해 이상적인 수학 비율로 건축한 이상도시를 꿈꿨다.
이상도시를 꿈꾼 르네상스 시대 작품들이 이탈리아 우르비노 팔라초 두칼레에서 전시 중이다. 팔라초 두칼레은 역시 15세기 이탈리아 건축 양식의 걸작. ‘이상도시(The Ideal City)’ 展은 학문과 예술의 부활을 외치던 르네상스 시대의 정신을 두루 느끼게 한다.
전시 큐레이터인 이탈리아 마르케 문화유산부 장관 로렌자 모치 오노리(Lorenza Mochi Onori)는 “우르비노 지방의 르네상스는 우르비노 공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Federico da Montefeltro)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페데리코는 군대 지휘관이자 모험가였지만 기계 구조 전문가이기도 했다.
몬테펠트로 공작은 15세기 중후반 자신이 살고 있던 팔라초 두칼레에서 회의를 열었다. 건축의 기본 요소인 정사각형, 육면체, 원, 구 등에 대해 수리적으로 이상적인 비율을 연구한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1472)와 뛰어난 수학자이자 종교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도 회의에 참석했다. 이들은 우르비노 지방의 르네상스를 이끈 주인공이다.
이상도시 작품에는 우르비노를 다룬 작품 외에도 미국 메릴랜드주(州) 볼티모어, 독일 베를린을 그린 작품도 있다. 그림 3점은 모두 작자미상이기 때문에 현재 소장돼 있는 지명인 ‘우르비노’ ‘볼티모어’ ‘베를린’으로 불리고 있다.
이상도시를 그린 작품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그것은 수학이며 이상적인 세계를 상징한다. 원근법은 그러한 상징을 현실적인 구조물로 만들어내고 있다. 화가가 마음에 품은 모든 것이 수학적 규칙에 따라 창조되는 것이다.
“작품 속에는 수학적 구조, 즉 원근법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색깔은 중요하지 않고 빛은 항상 균일하고 이상적이게 표현됐다”는 게 모치 오노리의 설명이다.
특이한 것은 작품 속에서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모치 오노리는 “사람은 이 수학적 공간 뒤에 있는 것 같다”며 “사람으로 혼탁해지지 않은 수정처럼 맑은 공간이지만, 이 공간은 사람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는 고전문학에서 비롯된 개념이다”고 설명했다.
이상도시가 추구했던 조화는 수학자이자 프란체스코회 수도사인 파치올리(Luca Pacioli)의 시각과도 연결된다. 이상적인 인간 신체의 비율을 그려낸 레오나르도 다빈치와도 함께 일했던 그는 신의 창조물인 세계가 수학적 관계와 수의 비율로 구성된다고 생각했다. 이 수학적 이치로 사람은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모치 오노리는 “플라톤이 언급한 5개의 정다면체를 이용하면 공간들 사이의 관계를 창조해 내는 것이 가능하다”며 “이러한 비율을 기초로 신의 조화를 반영함으로써 사람은 실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작품 속에는 수학적 구조, 즉 원근법만 있을 뿐이다. 원근법은 예술사상의 완벽한 표현이자 수학과 건축학의 조화로, 이상도시를 꿈꾸던 이상향을 나타낸다. 작자 미상, 메릴랜드 볼티모어의 월터스 아트 갤러리 소장. 템페라화.
이상적인 사회
중세 도시들은 권력, 지배, 사회통제라는 이미지 위에 세워졌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도시는 이상적인 비율이라는 가치 위에 만들어졌다. 이상도시의 조화로움은 ‘시민의 자유를 존중하고 이로써 평화롭고 조화로운 사회를 만든다’는 계몽주의 유토피아적 사상을 나타낸다.
모치 오노리는 “궁전이 도시로 직접 이어지는 것은 권력과 계몽사회간 사회관계의 균형을 강조한 것”이라며 이상적 도시 이미지와 사회질서의 관계를 설명했다.
이 작품들은 서랍장, 침대 머리판, 벤치 등받이 등에서 발견돼 그림의 용도가 가구장식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이상도시 작품들이 명상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다. 수학적인 실물을 응시함으로써 그림 속에서 나타나는 고유한 질서가 사람을 실물에서 추상적 상태로 이끌어 자기 성찰로 이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자기 성찰은 ‘신의 비례’라는 아름다움으로 사람을 승화시킨다.
르네상스 이상도시는 이후의 현대 도시계획에 영향을 끼쳐 이때부터 전 유럽에 격자 모양, 방사형 도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시는 그림, 조각, 상감세공, 데생, 채색필사본 등 예술품 50점도 함께 선보인다. 야코포 데 바르바리(Jacopo de Barbari), 만테냐(Mantegna), 브라만테(Bramante), 라파엘(Raphael) 같은 작가들의 건축 관련 전문서적들도 관람할 수 있다. 7월 8일까지.
우르비노의 팔라초 두칼레는
1490년 르네상스 초기에 벽돌과 대리석으로 지은 대규모 궁전이다. 용병 대장이었던 페데리코 공을 위해 달마티아의 건축가 루치아노 라우라나(1420~1479)가 짓기 시작하고 시에나 태생의 건축가 프란체스코 디 조르지오 마르티니(1439~1502)가 완성했다. 이탈리아 중부 아드리아해 연안인 마르케 지방에 위치, 구릉지 도시인 우르비노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랜드마크다.
팔라초 두칼레의 안뜰(사진)은 조화를 추구한 르네상스 건축가의 이상이 드러난다. 대리석 기둥의 색깔이 분홍색 벽과 구분되면서, 면과 선의 조화, 직선과 곡선의 어울림 등 모든 건축 요소에서 완벽한 비례에 따른 조화를 추구했다. 중정을 둘러싼 열주 회랑(아케이드)은 건조하고 태양이 강한 지중해지방의 대표적인 양식이다. 중정의 더운 공기가 위로 상승하면서 주변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는 일종의 '냉방 장치'다. 이탈리아 여행을 간다면 꼭 한번 아케이드를 거닐며 시원하게 사색을 즐겨볼 만하다.
우르비노 들르기
이탈리아 볼로냐까지 가는 항공편을 이용한다. 볼로냐에서 안코나행 기차를 타고 페자로역에 도착(1시간 30분 소요). 페자로역 앞 광장에서 우르비노행 버스를 타면 된다. 첫차는 6시 45분. 막차는 저녁 8시경, 배차 간격은 1시간이다. 광장에서 우르비노까지 택시를 타면 45유로 정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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