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 출신 마을버스 운전기사 백미화 씨. 사진=문용 기자
“고향에 있을 때는 어려워서 행복을 모르고 살았어요. 한국 드라마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중국 길림성 연변 출신인 백미화(41)씨는 경기도 일산의 070번 마을버스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다. 부광운수라는 작은 버스회사에 속한 30명 기사 중에 유일한 여성이다. 같은 연변 출신인 남편은 시내버스 기사로 일하고 있다. 백씨는 올해 정부에서 주는 임대아파트도 받았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생활 10년 만에 거둔 결실이다.
백씨의 시부모는 6.25 전쟁 때 중국으로 건너갔기 때문에 한국에 호적이 있었다. 시부모 덕에 백씨와 남편은 2003년 한국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부부에게 한국생활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000년 한국에 와서 작은 가게를 냈다. 하지만 주변에 대형마트가 들어서자 가게를 접고 다른 직장 일을 해야 했다.
그러다 고향에서 운전을 했던 남편이 시내버스 운전기사로 취직해 일하는 것을 보고 백씨는 욕심이 났다. “아직도 고향에는 여자가 운전하는 일이 많이 없어요. 그래도 남편이 하니까 나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2007년 대형운전면허를 따 둔 백씨는 마을버스 기사 모집에 도전했다. 남편이 ‘3개월 수습기간에 사고 나면 잘릴 각오해라’ ‘웬만한 일은 본인이 처리해야 한다’며 여러 걱정스러운 말을 했다. 하지만 백씨는 “경쟁을 각오했고 남편이 먼저 시작해서 합격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몸살이 날 정도로 힘들었다. 하지만 수습을 마치고 2달 전 정식 기사가 돼 배차를 받았다. 수습 기사 중에 여성이 3명이었으나 백씨만 통과된 것이다. 백씨는 하루 12시간을 운전하는 고된 일이지만 지금은 1년 6개월의 마을버스 운전 경력이 쌓이면 시내버스 기사로 진출할 꿈을 갖고 있다.
백씨의 이런 소박한 ‘성공’ 뒤에는 한국생활을 긍정하는 자세가 있었다. 집안에서 장녀인 백씨는 동생들도 한국으로 데려왔다.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돼 남동생이 건설 일을 다녀와서는 스트레스 엄청 받았다며 팀장과 목수 욕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너 그런 것 각오 안했느냐. 누나는 다 거쳤다. 거기서 돈 못 버니까 여기 와서 버는 것 아니냐. 그러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지 않느냐’며 다그쳤죠.”
이후에도 백씨의 남동생은 일만 다녀오면 ‘내일 당장 돌아간다’고 불평했다. 하지만 1년 정도 지나 기술을 익히자 팀장이 일 잘한다며 따로 보너스도 챙겨줬다. 그래도 남동생은 3년 뒤 ‘다시는 한국 땅 안 밟는다’며 중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남동생은 중국에서 베이징-상하이 간 관광버스 기사로 취직했다. 하지만 한국생활을 못 잊고 백씨에게 자주 전화를 걸었다. 결국 1년 뒤 한국에 다시 들어왔고 이제는 회사도 잘 다닌다고 한다.
백씨도 이제는 “중국이 30년 산 고향이지만 이제는 가서 살라고 하면 못 살겠다”고 말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1년에 한 번 꼴로 고향에 다녀왔었다. 하지만 갈수록 고향으로 가는 횟수가 뜸해져 3년 전 다녀오고 안 갔다고 한다. “일주일 정도는 있을 만한데 한 달 정도 있으려면 힘들어요. 여기서는 마트에서 물건을 다 믿고 사는데 거기서는 시장에서 물건 하나를 사도 사기 당하는 느낌이에요. 저울을 잰 후 바로 돌아서서 다른 저울을 달아보면 무게도 달라요.”
이제 백씨에게 한국은 고향보다 더 편안한 제2의 고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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