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성의 동쪽에 있는 경기도 크기에 인구 9백만 명의 도시인 상추(商丘)는 북서쪽으로 카이펑(开封), 남서쪽으로 저우커우(周口市)와 접하고 북동쪽으로 산둥성, 남동쪽으로 안후이성과 접한 지역이다.
상추는 삼황오제 시기(약 BC25세기) 신농, 전욱, 제곡이 살았던 지역으로 현재 상구시 휴양구는 낙양․개봉․안양․남양․정주․복양․준현(학벽시의 현)과 더불어 하남성의 중국역사문화명성으로 지정된 역사도시이다. 상추는 미자계(微子啓)가 세운 춘추전국시기 송(宋,?~기원전286)의 수도였다.
상인, 상품, 상업 이란 말이 이곳에서 발원하였다. 경내 명승고적이 100여 개소가 있으며, 대표적으로 수인 씨, 제욱고신 씨, 탕왕의 제상인 이윤, 송나라의 시조인 미자계 등의 능묘와 고대천문대인 알백대, 북송 사대서원의 하나인 응천서원유지, 상구고성, 송국고성 등이 있다. 공자 조상의 원고향이자 창힐과 장자의 고향이기도 하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국가인 하왕조는 우임금 이후 6대 소강(少康) 대에 잠시 ‘소강중흥(小康中興)’을 이루다가 결국 17대 걸(桀)이 왕위에 오르며 멸망의 수순을 밟는다. 하왕조는 우가 기원전 2070년 건국해 14대가 이어졌고 기원전 1600년까지 17명의 제왕이 제위를 계승했는데 그 기간이 471년이다. 하나라의 마지막 제왕 걸은 은나라의 마지막 제왕 주임금과 함께 역사상악명을 떨친 제왕이다.
중국의 역사 문헌과 은허(殷墟)에서 출토된 궁터 유적 등에서 증명 되듯이, 고고학적으로 그 실재가 인정된 중국 최초의 왕조가 상왕조이다. 상왕조 개국에 관한 기록은『史記』의「은본기(殷本紀)」,『상서(尙書)』의 「탕서(湯誓)」․「반경(盤庚)」․「고종융일(高宗肜日)」․「서백감려(西伯戡黎)」․「미자(微子)」, 『시경(詩經)』의 「상송(商頌)」등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이들 기록들에 의하면, 은왕조의 시조는 걸왕을 토벌하고 은(殷)나라를 세운 탕왕(湯王)으로 덕이 높은 인물이었다. 그는 중국 최초의 명재상으로 평가받는 이윤의 협력으로 상왕조를 세우고 왕도 정치를 폈다.
전설에 의하면 은을 세운 탕왕의 선조는 설(契)이다. 그의 모친은 유융씨(有娀氏) 군주의 큰딸인 간적으로, 간적은 제곡(帝嚳)의 둘째 부인이 되었다. 설은 성장하여 우(禹)를 도와 치수사업에 공이 커서 당시 순임금에게 사도(司徒)의 벼슬을 하사받고 백성들의 교화를 담당했다.
설의 6대 후손인 왕해(王亥)는 주변국과 부락사이에 무역을 했는데, 상족들은 무역이 번창했다. 그래서 그들을 ‘상인(商人)’이라 불렀는데, 그 이후 장사하는 사람을 상인이라 부르는 것은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왕해의 아들인 상갑미는 상족의 큰 발전을 가져오게 한 인물이다. 상갑미의 ‘상갑’은 갑일(甲日)에 태어났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상갑미 이후의 왕위 계승은 사기와 갑골문의 내용이 서로 순서가 다르다. 즉 『史記』는 상갑미-자보정-자보을-자보병으로 되어 있고, 갑골문은 상갑미-자보을-자보병-자보정의 순서로 되어 있는데 현재 역사학계는 갑골문의 것을 사용하고 있다.
설 이후에 7대 후손인 상갑미(上甲微)부터 13대 후손 천을(天乙)까지는 천간의 글자인 십간(十干)을 이용하여 이름을 지었는데 갑을병정임계을의 순서이다. 즉 상갑미(上甲微)-보을(報乙)-보병(報丙)-보정(報丁)-주임(主壬)-주계(主癸)의 순서이다.
설의 13대 후손 천을(天乙)이 바로 성탕이다. 역사는 보통 탕왕으로 부르는데 성탕은 천을의 시호로써 탕이란 말은 폭정을 제거한 분에게 올리는 시호이다. 주계(主癸)와 부도(扶都)사이에서 난 탕은 천간이 을(乙)인 날에 태어나서 호를 ‘천을’이라 하고, 한걸음씩 착실하게 하라는 뜻으로 이름을 ‘이(履)’라 했다. 상족은 시조 설로부터 탕에 이르기 까지 도읍을 여덟 번 옮겼다. 이후 탕은 현재 상구시인 박(亳)에 도읍을 정하고「제고(帝誥)」를 지었다. 또한 탕왕이 포악무도한 갈국(葛國)의 군주 갈백(葛伯)을 정복하기 위해 떠나는 날, 탕은 갈백의 죄행과 규칙을 선포하면서 경고한 연설이 ‘탕정(湯征)’이다.
탕의 덕이 높은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탕이 교외에 나갔다가 사방에 그물을 쳐놓고 신에게 “천하 사방의 모든 것이 내 그물로 들어오게 하소서”라고 기원하는 사람을 만났다. 탕왕은 그 장면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이렇게 그물을 펴 놓으면 숲 속의 짐승들이 모두 잡히고 말것이니 너무도 잔혹하다.” 그리고 그물을 거두고 이렇게 기원하게 했다.
“가고자 하는 대로 가고 하늘의 법도를 어기고 자기 스스로 그물에 걸리는 놈만 잡히게 하소서.”
이 이야기를 들은 제후들은 “탕의 덕망이 금수에까지 미치는 구나”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이 일은 여러 제후국에 펴졌다. 40여개의 제후국이 탕에 승복했다.
탕은 기원전 1600년경 하의 걸왕을 공격하기 전 박(亳)땅에서 전군을 모아 놓고 긴 연설을 했다. 사관이 그 훈시를 적어 놓은 것이 『상서(尙書)』의 「탕서(湯誓)」이다. 탕이 연설을 마치고 그 모습이 늠름하다고 해서 그를 무왕(武王)이라 칭한다. 탕서의 내용을 보면 유명한 고사성어가 등장하는 데 그 고사성어가 바로 식언(食言)이라는 고사성어이다.
보통 식언은 앞서 한 말이나 약속과 다르게 말하는 것을 말하며 보통 거짓말을 일삼는 것을 말한다. 상왕이 걸을 공격할 때 탕왕의 전차를 몰았던 인물이 비창(費昌)으로 비창은 진(秦)나라 황제의 먼 조상이다. 탕의 공격을 받은 걸은 명조(鳴條)에서 패하고 지금의 안휘성 소호시 서남쪽에 자리잡은 남소(南巢)로 유배갔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탕왕이 걸왕을 물리치고 돌아오는 길에 탕왕은 성탕혁명(成湯革命)을 이루었으나 무력혁명에 의해 천하를 얻게 된 것을 부끄러워하며, “나는 후세 사람들이 내가 한 일을 가지고 구실을 삼을까 두렵다”고 말했다.
재상인 중훼는 왕의 생각을 알고 대경(大坰)땅에서 탕왕에게 고한 것을 사관이 기록한 것이 『상서尙書』「중훼지고(仲虺之誥)」에 전한다. 중훼는 하나라에서 상나라로 귀순한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좌상(左相)의 벼슬을 했다. 탕, 외병, 중임, 태갑, 옥정 등 무려 다섯 상왕을 보좌한 원로인 이윤과 더불어 하나라를 정벌하고 상나라를 흥하게 한 상나라의 충신이다.
중훼지고의 내용에 보면 ‘…하나라 임금은 덕을 잃어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습니다(有夏昏德 民墜塗炭)’라고 한 구절이 나오는데, 여기서 도탄지고(塗炭之苦)라는 고사성어가 나온다. 도는 진흙이란 뜻이고, 탄은 숯불을 뜻한다. 몸이 진흙에 빠지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숯불 속에 들어 있듯이 많은 대중들이 극도로 곤궁한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을 ‘도탄지고’라고 부른다.
탕왕이 하걸 멸망의 정당성을 밝히고 백성과 함께 그 승리를 축하하면서 제후들과 신하들을 모아놓고 대의를 천하에 밝힌 연설문이 「탕고(湯誥)」이다. 상왕조 건립대회에 3000명의 제후들이 특산물을 가지고 와서, 제후들의 옹호에 의해 성탕은 천자의 자리에 오른다. 하는 가고 상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은대는 농경을 바탕으로 한 농업사회였기 때문에 천문과 역법이 발달했다. 은인들은 날짜의 기록을 위해 간지를 사용했다. 그러나 은허 이전의 상왕조의 역사는 불분명하다. 기록에 의하면 탕에서 은허로 수도를 옮긴 19대 반경까지는 300여년이 되는데 이 시대의 사적에 대해서는 갑골문의 기록도 분명하지 않아 그 역사를 알 수가 없다.
이 때까지 수도를 다섯 번이나 옮겼다. 은 왕조의 역사가 분명하게 나타난 것은 반경이 하남시 안양현에 있는 은허(殷墟)로 천도한 이후의 역사로 , 즉 19대 반경에서 30대 주왕에 이르는 약 273년간의 역사를 말한다.
인물열전의 저자 혜명 류동학 선생은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대전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 재학 중이며 현재 혜명동양학아카데미 원장과 대전대학교 철학과 외래교수이다. 영동방송(강원) ‘재미있는 역학이야기’와 ‘조선시대이야기’, 매일신문(대구) ‘류동학의 동양학이야기’ 등 각종 매체에 다수의 저작을 연재했으며, 현재 대구 영남일보에 ‘혜명 류동학의 동양학산책’을 연재 중입니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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