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대 왕조를 이끈 전설의 삼황 중 두 번째 황제인 신농(神農)은 백성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하루 100여 가지 약초를 맛보고 효능을 정리해 병자를 구했다. 신농은 숱한 독초를 먹고 중독되어 쓰러지기도 하고 몸의 형태가 변할 정도였지만 구도의 길을 멈추지 않았다. 신농이 당시 정리한 약의 성질과 효능은 훗날 한의학의 기초가 되었다. 삼황의 하나인 황제(黃帝)는 신하 기백(岐伯) 등과 함께 의학을 논했고 이를 정리한 황제내경은 한의학의 원전으로 불린다. 고대의 제왕에게 백성을 긍휼히 여기고 병자를 구하는 것은 중요한 사명이었으며, 훗날 세인의 추앙을 받은 명의들도 명예와 이익보다는 환자의 고통을 다스리고자 했다. 음양의 조화와 심신의 균형, 자연과 합일을 추구하는 한의학의 이론 체계를 다졌던 고대 명의를 찾아 그들의 행적을 따라가 보려 한다. -편집부
1746년 숨을 거둔 섭천사(葉天士)는 임종시 후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의(醫)라는 것은 할 수 있다 하여도 할 수 없는 것이니, 필히 하늘이 내려준 영민한 깨달음이 있어야 할 것이오, 만권의 책을 본 연후에야 가히 의술로서 환자를 치료할 수 있으니, 그렇지 않다면 사람을 죽이는 자 적지 않을 것이오, 약이 칼이 될 것이라. 내가 죽거든 자손은 함부로 경솔하게 의(醫)를 논하지 말라’
그의 유언에는 그의 인생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숱한 독서와 공부 끝에 의사가 되었으며, 작은 이치와 의술이라도 배울 수 있다면 천리가 멀다 하지 않고 자신을 낮춰 스승으로 모셨다. 당대의 천재로 불리는 타고난 재능이 있었지만, 누구도 그가 재능만으로 업적을 이뤘다 말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작용이 있고 효과가 있다는 것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말과 같다. 그러기에 만병통치약이 없고 사람과 상황을 잘 가려서 진단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의사의 도리라 하겠다.
섭천사가 살던 소주 지역에 한 고관이 있었는데 그의 서른 살 아들이 주색에 빠져 살았다. 하루는 이 아들이 집안에서 은화를 훔치다가 들켜 아버지에게 크게 꾸중들었다. 충격을 받고 쓰러진 아들은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더니 정신이 혼미해지며 일어나지 못했다. 아버지는 용한 의사를 모셔와 왕진케 했다. 그는 아들이 허한 것을 보고 인삼을 끓인 독삼탕을 연달아 복용케 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차도가 없었고, 오히려 피부가 시체처럼 굳어가면서 피부에 몽우리가 수없이 생겨났다. 가족은 임종을 준비해야 함을 직감하고 크게 상심했다. 한 지인이 섭천사를 찾아가 보라고 말했고, 간곡한 요청을 들은 섭천사가 도착했다. 그는 한참을 진찰하더니 큰 소리로 웃으며 40대를 때려도 죽지 않을 병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 뒤, 손수 처방한 약을 먹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은 3일 후 말을 할 수 있게 됐고 5일이 지나자 일어섰으며 한 달 후 정상을 회복했다.
독삼탕을 먹이느라 은화 천냥을 쓴 아버지는 섭천사에게 약값을 치르겠다고 했다. 섭천사는 농담으로 은화 1000냥을 들여서 치료 못한 병이니 2000냥을 내라고 했으나 이내 가족들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보고 웃으며 8푼짜리 무씨로 만든 약이라고 했다. 무씨는 한의학에서 나복자라고 하며 기침, 천식, 식적, 복부팽만, 가슴답답함, 설사, 이질을 치료하며 소화를 돕고 더부룩한 것을 제거하며 기를 내려 담을 삭게 하는 효과가 있다. 사실 아들의 병은 허해서 온 것이 아니라 순환이 원활하지 않고 기가 막혀서 온 병이었던 것이다.
건륭제 때 강남의 한 순무사(巡撫使)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스무살에 과거에 합격하니 집안의 경사였다. 잔치가 연일 이어졌고 아들은 못 먹던 술을 연신 먹었더니 몸이 말이 아니었다. 결국 5~6일 후 눈이 붉게 부어 오르더니 극심한 통증이 이어졌다. 명의로 이름이 높았던 섭천사를 초빙해 왕진케 했다. 섭천사는 진찰 후 눈병은 대수롭지 않으나 며칠 안에 발에 종기가 생겨 치료가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힘든 공부 끝에 뜻을 이룬 직후에 얻은 중병에 아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 슬펐다. 섭천사는 애걸복걸하며 살 방도를 묻는 그에게 종기가 생기지 않게 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방법인즉슨 왼 손으로 오른발바닥을 450번 문지르고, 오른손으로 왼발바닥을 똑같이 문지르면서 결코 화내지 않고 초조해 하지 않으며 마음을 조용히 하라는 것이었다. 7일 후 섭천사는 경과를 살피기 위해 들렀다. 아들은 섭천사를 보자마자 눈은 완쾌했는데 그보다는 종기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물었다. 섭천사는 껄껄 웃으며 종기가 생긴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대는 부유한 집안에서 어려움 없이 자라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줄 알기 때문에 치료가 힘들다 생각했다네. 그래서 먼저 죽음으로 겁을 줘 내 말을 따르게 했고, 잡념을 버리고 마음을 닦게끔 한 것이었지. 손으로 발바닥을 문지르면 자연히 화기가 아래로 내려가면서 눈병이 나을 것이요, 만약 조급함과 울분을 참지 못한다면 화기가 생겨서 눈병이 악화될 것이기에 마음을 다스리라 한 것이라네.”
그의 의술이 기록되어 있는 임증지남의안에는 여러 가지 치료 사례가 많이 있다. 공통점이라면 질병의 핵심을 짚어 간결한 처방으로 병을 치료했다는 점이다. 앞서 무씨로 중병을 치료한 예나, 말로써 콧대 높은 명문세가의 자제의 마음을 다스린 것에서도 이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섭천사의 업적이 현대 시대에 의미가 깊은 이유는 그의 숭고한 의사로서의 마음가짐이 의료인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함은 물론이요. 실타래같이 얽힌 질병의 원인과 환자의 사연 앞에서 초연하게 핵심을 짚어낸 유유자적한 모습 때문일지도 모른다.
* 섭천사의 성 섭(葉)은 잎사귀를 뜻하는 엽(葉)과 한자가 같으나, 성을 지칭할 때는 엽이라 읽지 않고 섭이라고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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