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대 왕조를 이끈 전설의 삼황 중 두 번째 황제인 신농(神農)은 백성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하루 100여 가지 약초를 맛보고 효능을 정리해 병자를 구했다. 신농은 숱한 독초를 먹고 중독되어 쓰러지기도 하고 몸의 형태가 변할 정도였지만 구도의 길을 멈추지 않았다. 신농이 당시 정리한 약의 성질과 효능은 훗날 한의학의 기초가 되었다. 삼황의 하나인 황제(黃帝)는 신하 기백(岐伯) 등과 함께 의학을 논했고 이를 정리한 황제내경은 한의학의 원전으로 불린다. 고대의 제왕에게 백성을 긍휼히 여기고 병자를 구하는 것은 중요한 사명이었으며, 훗날 세인의 추앙을 받은 명의들도 명예와 이익보다는 환자의 고통을 다스리고자 했다. 음양의 조화와 심신의 균형, 자연과 합일을 추구하는 한의학의 이론 체계를 다졌던 고대 명의를 찾아 그들의 행적을 따라가 보려 한다. -편집부
한의학에는 두 가지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하나는 고대에서부터 내려오는 지혜이고, 다른 하나는 이를 계승해 발전하는 문명 이후의 의학의 모습이다. 이는 서양 의학의 현재 모습이 사실상 의성이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와는 별다른 관계가 없다는 것과 다른 점이라 하겠다. 서양 의학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일직선으로 성장해 왔다. 과거의 발견이나 상식 중 상당수는 지금에 와서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한의학의 기원이 도가 수련에 있고, 수련의 참 의미를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알기 어렵다는 점에서 사실상 한의학의 원래 모습과 지금의 한의학의 모습은 약간 다른 모습이다. 사람은 경험을 통해 발전하지만, 때로는 경험으로도 알 수 없는 근본적인 지혜가 있기 마련이다.
황제내경(黃帝內經)은 한의학의 원전으로 불리는 서적이다. 황제는 이름이 헌원(軒轅)이며 중국 문명의 시조로 불리고 또한 도교의 시조로도 불린다. 대략 BC 2704년경에 태어나 BC 2697년 왕의 자리에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당시 고대 왕국의 존재 여부 자체가 베일 속에 있다. 같은 이유로 황제내경의 실제 저자가 과연 누구인지, 황제내경의 내용은 언제 완성된 것인지에 대해 설이 분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타와 편작의 의술의 정수가 현재 남아 있지 않듯이, 황제내경에서 다룬 심신의 높은 경지는 현대인에게 멀기만 하다.
황제내경은 황제가 기백, 뇌공 등 신화와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 황제내경을 기황가언(岐黃家言)이라고 부르며, 나아가서 의술을 ‘기황(岐黃)의술’로 부르기도 하며 ‘기황’은 중의학의 별칭이다.
기백은 황제의 신하이자 태의로 전해진다. 일찍이 신농(神農) 시대의 명의 추대계를 따라 의학을 익혔으며, 청대 건륭(乾隆) 연간 ‘경양현지 인물(慶陽縣志·人物)’편에서는 ‘기백은 북쪽 사람으로 의술과 맥학에 정통했으며 황제는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의서의 조상격인 ‘내경’을 편찬해 세상에 내었다’고 서술했다.
황제내경에서 기백을 ‘천사(天師)’로 존칭했다. 장지총의 ‘황제내경소문집주’에는 ‘천사는 기백의 존칭이다. 천이라는 것은 그 천진함을 수련할 수 있음을 말한다. 사는 선지자이자 선각자라는 말이다. 도를 말하는 사람은 상제(上帝)의 귀한 것으로 사(師)는 도를 전하고 설교하는 것을 말함이니 기백을 천사라고 칭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의미는 기백은 천진함을 수양할 줄 알았던 선지자이자 선각자라는 말이다. 기백은 일찍이 황제의 명을 받들어 불사의 약을 신선에게 구하러 흰사슴 12마리가 끄는 강운거를 타고 동해를 유람한 바 있다.
‘제왕세기(帝王世紀)’에는 ‘기백은 황제의 신하로서 황제는 기백에게 각종 본초의 맛을 보고 의서를 편찬하라고 명을 했다’고 기재돼 있으며 이에 후세에 전해지는 ‘본초’ ‘소문’ 등의 책이 나온 것이다.
앞서 언급한 추대계는 망진, 맥진에 대해 깊이 연구한 인물이다. 노사(路史)에는 ‘신농이 추대계에 명해 색과 맥을 정리하고 관찰과 다스리는 것에 대해 정리해 천하에 이롭게 하고 사람이 그 생을 잘 돌볼 수 있게 하라’고 했다고 기재돼 있다.
‘황제내경 소문, 이정변기론(移精變氣論)’에는 추대계가 망진과 맥진의 서술에 정통했다는 말이 나온다.황제 왈 “저는 환자를 볼 때 병세의 정도와 예후가 어떠한지를 알고 싶고, 질병의 애매한 것을 판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일목요연한 요령을 알고 싶은데 그런 진단 방법을 제게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기백이 대답하기를 “청적황백흑(青赤黃白黑) 5색의 변화를 관찰하고 맥상을 짚는 진단 방법은 고대 제왕이 중시하던 것으로 저의 스승이 제게 전수해 준 것입니다. 고대에는 추대계라고 하는 고명한 의사가 있었는데, 제왕이 그에게 색을 보는 법과 맥을 짚는 법을 연구하라고 맡겼습니다. 그래서 추대계는 5색, 맥상과 금목수화토 등의 오행과 사시(四時), 팔풍(八風), 육합(六合)을 서로 조화시켜 그 일정한 정도를 벗어나지 않고 변화가 서로 이동해가며 그 미묘한 변화를 관찰함으로써 그 요령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5색은 태양에도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있는 것처럼 밝은 색과 어두운 색이 다름을 뜻합니다. 맥상은 달이 차고 기우는 것과 같이 허실(虛實)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계속 색과 맥의 차이를 탐구하여 그 요령을 알 수 있게 됐습니다. 고대 제왕은 5색과 사시의 맥이 서로 호응하는 것을 중시했기에 그 미묘한 차이를 관찰했습니다. 정신이 있으면 죽음에서 먼 것이고 생에 가까운 것이라는 것은 고대 성왕이 양생의 도를 수양하는 방식입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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