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 권미영
은파패와 뇌개가 태자 은교 형제를 추격할 때 방필․방상 형제는 두 분 전하를 모시고 길을 나선지 하루가 지났는데, 방필이 동생 방상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와 너는 두 분 전하를 보호하여 조가를 반역하고 떠나왔는데, 호주머니는 비었고 노잣돈은 한 푼도 없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비록 황비호 장군이 준 옥패가 있어 너와 내가 이를 처분하여 어떻게든 사용할 수 있으나 만약 사람들이 이 옥패의 출처를 캐어 묻는다면 도리어 불편할 것이다. 이곳에 당도하니 마침 동남 두 갈래 길이 나타났는데, 너와 나는 두 분 전하를 앞으로 가도록 인도하고, 우리 형제는 다시 다른 곳으로 찾아 들어가야, 양쪽 다 온전할 수 있을 것이다.”
방상이 대답했다.
“형님의 말이 몹시 옳습니다.”
방필이 두 분 전하께 청을 올리면서 말했다.
“신에게 드릴 말씀이 있어 두 분 전하께 보고를 올립니다. 신 등은 한낱 용기만 지닌 필부에 불과하여 천성이 어리석은데, 어제 전하께서 이러한 억울한 죄로 고통을 당하시는 것을 보게 되자 일시에 성질이 치밀어 조가를 반역하였습니다.
그러나 길이 아득히 먼 것을 생각하지 못하였고, 노잣돈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황비호 장군이 몸에 차는 보배로운 玉玦옥결을 남겨주어 돈으로 바꾸어 사용토록 하였으나 그 출처를 캐어물을까 두려워 도리어 불편하게 되었습니다. 하물며 재앙을 피하기 위해 모름지기 은밀히 숨어있어야 합니다. 막 신에게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는데, 반드시 길을 나누어 각자 남의 눈을 피해 잠행하여 안전에 만전을 기해야 합니다. 바라옵건대 두 분 전하께서 깊이 숙고하셔서 신 등이 모두 온전할 수 있도록 하시옵소서.”
태자 은교가 대답했다.
“장군의 말씀이 지극히 합당합니다. 다만 나의 형제가 어려서 가는 길을 모르니 어찌하면 좋겠소!”
방필이 대답했다.
“이쪽 길은 東魯동로로 가고, 저쪽 길은 南都남도로 가는 큰 길인데, 인가가 많이 모여 있으니 이 길을 따라가면 가히 멀리 갈 수 있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 이상 두 분 장군은 어느 방향으로 가려 하시오? 어느 날에 다시 만날 수 있으리오?”
“신이 이번에 떠나면 어느 鎭진의 제후에게 잠시 몸을 의탁하던지 관계없이, 전하께서 군사를 빌려 조가로 진격할 때 신은 스스로 전하의 휘하로 찾아가 선두에 서서 말을 타고 앞장서겠습니다.”
네 사람은 눈물을 뿌리면서 각기 이별을 고하였다.
방필․ 방상이 두 전하와 이별하고 작은 길을 택해 떠나자, 태자 은교가 동생 은홍에게 말했다.
“아우야, 너는 어느 길을 택해 가려느냐?”
은홍이 대답한다.
“형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은교가 말했다.
“나는 동로로 가고, 너는 남도로 가거라. 내가 외할아버지를 만나면 울면서 이 한바탕 억울한 죄로 겪은 고통을 호소하여 외할아버지께서 반드시 군대를 움직이게 할 것이다.
그때 내가 관리를 파견하여 너에게 알릴 것이다. 너도 혹 수만 명의 군사를 빌려 함께 조가를 정벌하여 달기를 사로잡아 어머님의 원수를 갚도록 하자. 이 일은 가히 잊을 수 없구나!”
은홍은 눈물을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형님, 이곳에서 한번 이별하면 어느 날에 다시 재회할 수 있으리오?”
형제 두 사람이 목을 놓아 한바탕 우는데, 서로 두 손을 부여잡고 쉽게 떠나지지 못했다.
후인들이 시로써 이 가슴 아픈 이별 장면을 노래했다.
“여행길에 오른 기러기처럼 형제가 각기 길을 떠나니 진실로 가슴 아픈데, 형은 남으로 아우는 북으로 떠나니 서로 만나지 못하니 고통스럽구나. 모친의 원통함을 생각하니 천 갈래 눈물이 흐르고, 길을 잃었는데 근심은 만 갈래 단장에 더하네. 몇 가닥 피리 부는 소리가 저녁 안개를 재촉하는데, 외로운 구름 한 조각이 푸른 물결을 쫓는구나. 그 누가 나라가 망하고 사람이 흩어지며, 나라가 기우는 것이 여자(달기)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은홍이 길을 나서는데, 눈물이 흘러 마르지 않아 처량하고 비참하였으며, 근심이 만 갈래로 가슴에서 일어났다. 하물며 나이조차 어리고, 궁궐에서 자랐으니 산 넘고 물 건너는 먼 길을 가는 고생을 알기나 하였을까?
은홍은 길을 떠나서 가다가 멈추고 가다가 멈추고, 앞서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이 머리에 떠오르자 발걸음을 가로막아 더디기만 한데, 배속에서는 또 배고픔이 엄습해온다. 왕자라는 신분으로 깊은 궁궐 속에 거처하였고, 옷은 능라 비단을 입었으며, 매일 진수성찬을 먹었던 생각이 떠오르는데, 사람들에게 어찌 구걸을 할 수 있겠는가!
어느 농촌마을을 지나다가 인가가 있어 바라보니 여러 명이 둘러앉아 집안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은홍이 앞으로 바짝 다가가서 下敎하교하듯이 말했다.
“과인에게 먹을 밥을 가져 오너라!”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은홍이 붉은 옷을 입고 있고, 그 모습이 보통 사람 같지 않아 서둘러 몸을 일으키며 “이리로 앉으시오, 밥이 있습니다.”한다.
그리고는 재빨리 밥을 가져와 탁자위에 놓는다.
은홍은 주린 배를 채우고 몸을 일으켜 감사를 표시했다.
“밥을 대접하느라 수고했는데, 어느 날에 당신들에게 이 은혜를 갚을지 모르겠습니다.”
마을사람들은 말했다.
“어린 도련님께서는 어디를 가시오? 그리고 귀하의 성은 무엇이오?”
은홍이 대답했다.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紂王주왕의 아들 은홍이오. 지금 남도의 鄂崇禹악숭우 제후를 만나러 갑니다.”
이 말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서둘러 땅바닥에 엎드리면서 전하를 외친다.
“전하! 어린 백성들은 그것도 모르고, 영접조차 하지 못하였사오니, 그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바라옵니다.”
은홍 전하가 말했다.
“이 길로 가면 남도로 가는 길이오?”
마을 사람들이 말했다.
“이 길은 남도로 가는 대로입니다.”
은홍은 그 시골 마을을 떠나 앞을 바라보고 길을 따라 갔는데, 하루에 이 삼 십리 걷는 것이 고작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저자 육서성
옮김 김일륜
-지난 줄거리-
주왕이 천년 묵은 여우 달기에게 홀려 정사를 돌보지 않자 도인 운중자가 여우를 제거할 계책을 알려준다. 그러나, 주왕은 달기의 꾀에 넘어가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오직 달기와 향락에 빠져 벗어나지 못한다.
나라를 걱정하는 태사 두원선과 매백이 상소를 했다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황후 마져 달기의 모함으로 한 쪽 눈과 손가락을 불태우는 형벌을 받아 목숨을 잃게 된다. 이에 태자 은교가 분을 참지 못하고 강환을 죽이고 달기 마져 죽이려하자 주왕은 당장 두 아들을 잡아오라는 어지를 내린다. 쫓기게 된 형제가 방필과 방상 장군의 도움을 받아 궁을 떠난다. 조전․조뢰가 태자를 뒤쫓아 왔으나 방필과 방상 장군이 무서워 감히 뒤쫓지 못하고 꾀를 써서 그 일을 황비호에게 떠 넘긴다. 어쩔수 없이 길을 떠난 황비호가 얼마 되지 않아 태자 형제를 따라잡는다. 그러나, 형은 아우의 목숨을, 동생은 형의 목숨만을 살려달라고 통곡하는 바람에 황비호는 차마 잡아 올 수 없어 계책을 세우고, 방필과 방상에게 태자형제를 잘 보필하라는 명을 내리고 빈손으로 되돌아온다. 태자형제를 잡지 못했다는 황비호의 보고를 받자, 달기는 우환을 없애지 않으면 화근이 된다며 당장 없애야한다고 제기한다. 주왕은 곧 은파패와 뇌개 두 장군에게 삼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가 잡아오라 명하지만, 황비호가 병든 병사와 병든 말만 골라 주어 뒤쫓은 무리의 가는 길은 더디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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