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환자가 병원에 실려 왔는데 응급실에 자리가 없다. 수술도 해야 하는데, 비어 있는 수술실도 없다. 환자는 죽어 가는데 각 과 의사들은 자기 담당이 아니라고 미룬다. 그나마, 사랑에 목을 매는 한가로운 인턴이나 권력을 차지하려고 온갖 권모술수를 쓰는 이는 없다. 구조적 문제점을 가진 병원이지만, 의사들은 적어도 환자를 살리는 소임에 충실하다. MBC 월화드라마 ‘골든타임’은 우리 의료계의 현실을 담은 다큐 같은 드라마다. 3회 연장이 결정돼 25일 드라마는 끝난다. 하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골든타임’ 속 의사들의 일상은 계속될 것만 같다. 바로 드라마를 현실로 만든 ‘골든타임’의 힘 덕분이다.
“모든 게 돈이 문제네요”중증외상센터.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 그리고 드라마 ‘골든타임’이 아니었다면 우리에게는 아직도 낯선 단어일 것이다.
2011년 1월 발생한 석해균 선장 사건 이후 우리나라에 심한 외상을 입은 사람을 전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일었다. 그 후, 중증외상센터를 여는 병원이 생기기 시작했다. 올 연말에는 보건복지부에서 80억 규모의 중증외상환자 전문 치료시설인 권역외상센터를 선정한다고 한다.
병원에서 중증외상센터를 운영하는 데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 석해균 선장의 경우는 그래서 특별하다. 외국에 나간 한국인이 외국인에게 총을 맞았다. 그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는 온 국민의 관심사였다. 그를 치료하는 병원에서는 비용문제는 뒤로 하고 그를 살리는데 최선을 다했다. 마침내 그는 살았고, 병원은 8억이 넘는 적자를 보았다.
문제는 모든 중증외상환자가 석해균 선장과 같은 관심을 받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중증외상은 주로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에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독거노인, 외국인 노동자, 극빈자…. 그래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영역’이었다.
이런 현실은 ‘골든타임’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골든타임’은 중증외상 환자의 생사를 결정짓는 최소시간을 말한다. 드라마는 중증외상센터를 갖춘 부산 해운대 세중병원을 배경으로 중증외상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들의 분투와 의료계의 부조리한 현실을 꼬집는다.
부산 해운대 세중병원에는 중증외상센터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하지만, 중증외상환자를 위한 침상과 그들을 치료할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곳에서 일하는 의사는 변변한 책상도 없고, 그나마 그들이 쓰던 좁은 회의실도 다른 과와 나눠서 사용해야 할 판이다. 초응급환자 이송을 위한 헬기 사업도 신청했지만, 정부의 예산문제로 헬기규모가 축소됐고, 헬기사업은 기지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2차 병원의 몫으로 돌아갔다.
쓰러진 할아버지를 대신해 이사장 업무를 맡은 강재인(황정음 분)은 중증외상센터 지원을 확대하려 하지면 번번이 예산문제에 걸린다. 보건복지부의 현장조사와 심평원(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감사를 받게 된 의사들은 규정을 벗어난 ‘적극적인 치료’를 망설였다. 바로 과징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돈은 되지 않으면서 위험부담은 큰 중증외상환자를 박대하는 일은 드라마가 아니라 진짜 현실이기에 더 씁쓸한 장면이었다.
그래도, ‘골든타임’에는 현실과 달리 환자를 살리기 위해 자기자리를 걸고 위험한 수술을 감행하는 최인혁(이성민 분)과 이민우(이선균 분) 같은 의사도 있다. 많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중증외상센터’ 건립에 힘을 싣는 이사장 대행 강재인, 결혼을 미루면서까지 병원 일에 매달리는 실력파 간호사 신은아(송선미 분)와 좌충우돌하지만 중증외상센터 일에 행복을 느끼는 후임 간호사도 있어 다행이다.
사랑보다 끈끈한 동료애책임을 떠안을 줄 아는 멋진 의사 최인혁, 고생인 줄 알면서도 최인혁의 코디네이터가 된 신은아, 두려움을 이기고 병원 경영에서 나선 강재인, 인턴 나부랭이 임에도 용기 있게 환자를 위해 메스를 집어든 이민우. 참 매력적인 주인공들이다. 이들이 함께 일하면서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닐까. ‘골든타임’에도 여느 드라마처럼 러브라인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법은 일반 드라마 공식과는 좀 다르다. 좋아한다 말 한마디 없고, 그 흔한 키스신 하나 등장하지 않지만, 이들의 사랑은 어느 드라마보다 쫄깃하고 설렌다.
최인혁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동료로서 신은아가 좋다. 이제 개원하게 될 중증외상센터를 이끌어 가는데도 경험이 많은 그녀는 꼭 필요한 존재다. 그녀가 약혼자와 함께 있는 모습에 질투가 나는 걸 보니 신은아가 여자로서도 끌리는 듯하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곁에서 고생만 한 그녀를 잡을 용기가 없다. 신은아도 최인혁을 의사로서 존경하고 믿는다. 그리고 그와 함께 하고 싶다. 자신에게 무심한 듯 구는 최인혁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것을 보니 동료애 이상의 감정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정말 필요한 사람인지는 자신이 없다. 그래서 그의 옆을 묵묵히 지키며 그가 잡아주기만을 바란다.
재인과 민우는 함께 병원 일을 시작했다. 두려움으로 환자를 대하던 두 사람은 어느덧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진 의사로 함께 성장하는 중이다. 민우는 환자를 살리려고 주저 없이 메스를 들었고, 재인은 잠시 가운을 벗고 이사장 자리에 앉아 병원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휴가를 간다더니 이사장으로 돌아온 재인을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민우. 두 사람은 현재 호감을 이성적인 감정으로 발전시킬 감정적인 여유가 없다. 민우는 ‘잘 갔다 와’라는 한 마디로 힘겨워 하고 있을 재인에게 그의 마음을 전했다. 재인 역시 민우의 마음을 알기에 말없이 웃기만 한다.
최인혁과 신은아, 이민우와 강재인 네 사람의 모습에서는 남녀의 사랑보다 끈끈한 동료애가 먼저 보인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보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데 더 집중한다. 우리가 그들이어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서’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그래서 이들의 답답한 사랑법이 더 로맨틱하게 느껴진다. (사진=방송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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