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잔혹한 고문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장시간 수면을 박탈하는 고문이다. 이런 고문은 세계적으로 비난받는 것으로 민주 사회에서는 이미 사라진 것이다. 중공 경찰은 이런 고문을 가리켜 ‘매를 들볶는다(熬鷹)’고 한다.
그림:상전(桑田)
이는 전문적으로 중대사건의 범죄피의자들을 대상으로 자행된다. 때리거나 욕할 필요도 없고 그냥 잠을 재우지 않는다. 하지만 눈을 감기만 하면 곧 괴롭혀 눈을 뜨지 않고는 버틸 수 없게 만든다. 이렇게 사람의 의식을 들볶는 고문은 다른 육체적인 형벌보다 더 괴롭다.
일반인은 3~5일 정도 잠을 재우지 않으면 모두 굴복하고 아무리 강인한 사람일지라도 보통 반달을 넘기기 어렵다고 한다. 간수소에 감금된 죄수들도 중공의 ‘매를 들볶는다’는 말만 들어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중공 경찰은 단지 다른 사람을 박해할 구실을 찾기 위해 연약한 여인에게 무려 2달 반이나 이런 고문을 가했으니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가! 나중에는 심지어 쇠 의자마저 변형됐다고 한다. 이런 것들은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선량한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3년이란 시간을 그리 길다고 할 순 없겠지만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한없이 긴 것으로 심신에 대한 고문은 몹시 고통스러운 것이다. 장펑이 감옥에 감금되어 있을 때 메이쉬안은 겨우 한번만 면회를 허락받았다.
그나마도 7, 8명의 경찰들이 감시 하에서 말이다. 3년 기한이 막 끝나 다시 남편을 만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중공 경찰은 이번에 메이쉬안을 납치했다. 그녀는 4년 판결을 받았다.
안후이 여자 감옥에 있으면서 메이쉬안이 받은 박해 역시 상상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그녀는 “감옥에서 먹는 음식은 모두 곰팡이 핀 썩은 쌀에 채소를 약간 끓인 후 소금을 뿌린 것들입니다. 제가 있는 감옥에서는 수감자들에게 수출용 옷을 만들게 했는데 매일 새벽 4시부터 노동을 시켰습니다. 원래 정상적으로는 매일 13-14시간씩 노동해야 했지만 흔히 17시간에 달했고 급할 때는 밤새도록 일을 시켰습니다. 경찰은 또 24시간 내내 우리를 감시했는데 그들이 받는 보너스는 우리가 한 작업에서 온 것입니다.”
“우리 작업장에는 200여 명이 있었는데 거의 매일 죽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과로로 죽거나 병사하거나 아니면 경찰의 구타로 맞아 죽거나 자살이나 혹은 사고로 죽는데 간혹 미쳐버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면이 부족해 늘 아주 피곤했고 손가락이 재봉틀에 걸려 절단되거나 기계에 눌려 다치는 경우도 늘 존재했습니다. 중국의 감옥은 한마디로 인간지옥입니다.”
그녀의 남동생이 검찰관(한국의 검사에 해당)이었는데 누나가 노동하는 장면을 보고는 멍해졌다고 한다.
메이쉬안은 “제가 감옥에 들어간 후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지 않고 전향하지 않자 그들은 줄곧 가족들이 저를 면회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남동생이 여러 사람에게 청탁하고 많은 돈을 쓴 후에야 겨우 한번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가족들은 제가 안에 있는 조건이 나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우리 극장에서도 사람을 보내 저를 잘 봐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동생이 제가 노동하는 것을 보고는 놀라서 멍해졌고 저를 면회하면서 머리를 끌어안고 한바탕 통곡을 했습니다.”
메이쉬안은 감옥에서 나온 후 오래지 않아 미국에 올 수 있었다. 그녀가 정치적인 망명을 신청하면서 자신이 겪은 상황을 설명하자 현장에 있던 미국 이민부 직원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말에 감동한 그들은 사무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파룬궁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메이쉬안이 겪은 고난은 거대한 것으로 다른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하늘이 장차 이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고자 할 때면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 몸을 힘들게 한다.”고 했다. 어쩌면 메이쉬안의 경우가 이에 해당할지 모른다.
생사의 고비에서 걸어 나온 그녀는 다시 자신이 아끼던 중국전통의 악기인 얼후를 잡고 세계 각지의 무대에 서고 있다. 아울러 션윈예술단 단원의 일원으로 세계인들에게 중국 전통문화를 전파하는 큰 임무를 맡았다. 생사의 고난을 겪은 후 그녀가 연주하는 얼후 소리는 자연히 일종 초탈하고 변화무쌍한 음색을 지니게 되었다.
메이쉬안은 “션윈예술단에 가입한 후 수련이 제고됨에 따라 제 마음상태도 점차 순정해졌습니다. 무대에서 연주할 때도 완전히 연주에 몰입할 수 있었고 모든 잡념이 사라졌으며 전신의 모든 세포들이 저마다 하나의 음부(音符)를 끌어당기게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곡을 창작할 때도 과거의 인생경력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앞에 떠오르면서 한 가닥 선율이 떠오릅니다. 저는 늘 참지 못해 많은 눈물을 흘리곤 했는데 인생의 각종 정서가 자신도 모르게 창작 속에 반영됩니다. 얼후의 음색은 우리 중화민족의 민족성을 잘 표현할 수 있는데 아주 슬프고 비장한 느낌이 있습니다. 하지만 서서히 수련이 제고됨에 따라 비장함에서 자비로 승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매번 ‘불성(佛性)이 나오면 시방 세계를 진동’하는 장관을 느낄 때마다 사람의 진정한 본성의 일면이 각성됩니다. 저는 마치 법(法)이 인간세상을 바로 잡을 때 구도 받은 중생들이 모두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는 웅장한 장면을 보는 듯합니다. 이번에 제가 창작해서 무대에 올리는 ‘소환(召喚)’이란 곡을 통해 모든 관객들이 회귀의 여정에 오를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예술을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다시피 매 사람의 기예가 일정한 정도에 도달했을 때 만약 더 높이 제고하려면 오직 인품과 덕성이 제고되어야만 한다. 덕(德)과 예(藝)를 두루 갖춘다는 말의 내포에는 덕와 예가 상호 촉진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고상한 품행이 있어야만 순수한 심태가 있을 수 있으며 마음속의 그런 순진함이야말로 기예가 진일보로 승화할 수 있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물론 예술가 본인의 타고난 재능 및 창작이나 연주할 때의 감정도 아주 중요하다. 이런 모든 조건들이 다 구비되었을 때, 특히 그의 인품과 도덕이 상당히 높은 경지에 도달한 후에 창작하거나 연주하는 곡은 자연히 출신입화(出神入化)의 절묘한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세계적인 명곡의 탄생은 모두 이런 것이 아닌가?
어떤 사람은 메이쉬안의 연주를 듣고 이렇게 표현했다.
“무대 위에서 메이쉬안이 가볍게 줄을 움직일 때 은은한 소리가 멀리 울려 퍼지며 조용한 극장 상공에서 서서히 흩어졌다. 얼후 소리가 아득하고 장중한 것이 마치 한 단락 비장한 역사를 말하는 것 같다.”
“조용히 음미해보면 음악 속에 희망을 상징하는 한 가닥 시냇물이 흐르는데 수많은 굴곡을 거친 후 마침내 거대한 바다로 모여든다. 연주 소리가 끊임없이 높이 올라가면서 마치 교룡(矯龍)이 기둥을 감싸고 수직으로 올라가는 것 같고 봄꽃이 흐드러지게 핀 것처럼 광명이 다시 드러난다. 선율이 최고조에 오른 후 갑자기 뚝 그친다.”
이 묘사는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것이긴 하지만 문자의 힘으로는 메이쉬안의 곡이 지닌 내포를 충분히 표현할 수 없다. 이 작품의 내포에 대해 말하자면 의미가 몹시 풍부하고 불법에 대한 메이쉬안의 이해를 융합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겪은 고통스런 경험을 세인에 대한 자비로 변화시켰고 큰 자비심으로 중생의 불성을 일깨우고 있다.
사람의 불성이야말로 한 생명의 진정한 본질이다. 이는 마치 한 가닥 금실처럼 한 사람의 생명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으며 사람이 수많은 윤회를 거치면서도 여전히 영성의 빛으로 그를 비추고 있다.
메이쉬안의 악곡이 그녀의 손끝에서 흘러나올 때 그것은 그녀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니다, 그것은 그녀의 불성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그녀가 일정한 층차에 도달한 후 그녀의 음악 속에서 불법(佛法)이 여의롭게 펼쳐진 것이다.
그녀의 경쾌한 손끝에서 전해지는 음악은 또 아름다운 천국세계를 관통해 천국 신불(神佛)의 간절한 기대를 전달하고 있다. 그녀의 연주는 바로 한 편의 신곡(神曲)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연주를 들을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흘리는 것도 사실 이상할 것이 없는데 이 눈물은 바로 한 사람의 불성이 드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 선 메이쉬안은 단정하고 장중하며 자태도 아주 곱다. 길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뒤로 드리우고 앞이마는 약간 솟아올랐다. 그녀의 평온한 미소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난 침착함이며 미간에는 가닥가닥 자비가 엿보인다. 사람들은 무대 위에서 이처럼 빛나며 아름답고 우아한 여인이 그렇게 심한 고난을 겪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의 유난히 침착하고 안정된 연주 속에는 찬란한 광명 속에 포함된 한 가닥 황금과도 같은 마음을 포함하고 있다. 그녀가 과거에 겪은 고난이 그녀의 오늘날 휘황을 성취시켰고 그녀는 또 이 모든 것을 초월했다. 그녀가 수련한 경지는 바로 그녀가 연주하는 음악과 같으며 그런 자비와 그런 상화함으로 자신조차 완전히 녹아들어가 세인들을 ‘부르고(召喚)’ 있다.
필자는 문득 그녀가 전설에 등장하는 봉황처럼 아름답고 위엄이 있다고 느꼈다.
불교에서는 봉황이 열반할 때 자신의 몸을 불살라 거듭난다는 말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봉황은 인간 세상에 행복을 전하는 메신저이다. 봉황은 오백년마다 인간 세상에 누적된 모든 불쾌한 것들과 증오, 원한 등을 짊어지고 훨훨 타는 불꽃 속으로 몸을 던져 생명과 아름다운 종결을 통해 인간세상의 상화로움과 행복을 가져다준다.
이렇게 자신의 몸으로 거대한 고통을 겪은 후 봉황은 다시 새 생명을 얻는다. 몸을 불살라 거듭난 봉황은 그 날개가 더욱 풍부하고 그 소리가 더욱 맑아지는데 법력(法力)이 배로 증가해 유유히 천국 세계를 노닌다고 한다.
그렇다면, 메이쉬안이 겪은 고난은 바로 봉황이 ‘불로 사르는 것(浴火)’을 상징한다. 어쩌면 이것은 봉황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신곡(神曲)을 전달하려는 신불의 기대일지 모른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또 그녀가 직접 연주하는 곡을 들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까닭을 알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는가! 그것은 바로 사람의 본성이 깨달은 것이다!
중문: http://epochtimes.com/gb/10/3/1/n2831175p.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