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미국션윈뉴욕예술단 내한 공연 중 깊은 내포를 지닌 아름다운 가곡들이 주목을 받았다.
1. “홍진에 들어서 사람의 몸이 되어”
이중 소프라노 황비루(黃碧如)가 부른 ‘진상은 길을 알려주는 등불(?相就是指路燈)’에는 “자욱한 붉은 먼지 중생을 미혹시키고 명예, 이익, 정 속에서 사람마다 다투노라”(紅塵滾滾迷?生 名利情中人人爭)는 구절이 나온다.
또 바리톤 취웨(曲樂)가 부른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노라(告世人)’는 “홍진에 들어서 사람의 몸이 되어”(踏入紅塵身是人)라고 읊는다.
가곡의 가사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단어가 바로 홍진(紅塵)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홍진에 묻힌 분네 이내 생애 어떠한고”로 시작하는 조선 성종 때의 학자 정극인(丁克仁)의 상춘곡(賞春曲)을 통해 익히 알려진 단어이기도 하다. 흔히들 속세로 풀이하는 이 단어에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홍진이란 말의 원래 뜻은 흙길에 수레나 말이 지나갈 때 흩날리는 먼지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런 뜻으로 쓰인 용례는 당나라 때의 시인 두목(杜牧)이 지은 ‘화청궁을 지나며(過華淸宮)’란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長安回望繡成堆
山頂千門次第開
一騎紅塵妃子笑
無人知是?枝來
장안을 돌아보니 수놓은 듯 언덕 있고
산정의 수많은 문들이 하나하나 열리누나
한 필 말의 흙먼지에 양귀비가 웃은 뜻은
맛있는 여지를 가져온 것임은 아무도 모르리라”
이 시에서 일기홍진(一騎紅塵)이란 한 필의 말이 달릴 때 날리는 먼지를 뜻한다. 그런데 고대에 말과 수레는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이자 도시의 발달과 연관이 있었다.
때문에 이 단어는 점차 번화한 도시를 가리키는 말로 변했다. ‘한서(漢書)’의 저자 반고(班固)가 쓴 《서도부(西都賦)》에는 “홍진이 사방에서 일어나 연운(煙雲)이 서로 이어지네(紅塵四合,煙雲相連)”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는 수레가 달리면서 날리는 흙먼지와 연운(煙雲 연기와 구름)이 서로 이어질 정도로 복잡하고 시끌벅적한 도시의 풍경을 묘사했다.
남북조 시기 진(陳)나라의 서릉(徐陵)은 《낙양도(洛陽道)》에서 “버드나무 그늘에 봄빛은 짙고 홍진에는 잡기가 많이 있구나(緣柳三春暗,紅塵百?多)”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백희(百?)’란 고대 공연예술의 일종으로 다양한 기예를 선보이는 잡기(雜技)를 말한다. 즉, 이 시에서 홍진은 더 이상 먼지가 아니라 번화한 도시를 의미한다.
2. 홍진(紅塵)의 깊은 내포
그러다 수당(隋唐)시대를 거치며 중국에 토착화된 불교가 크게 발달하면서 홍진의 내포에도 변화가 생겼다. 주지하다시피 불가(佛家)와 도가(道家)에서는 세속을 초월한 수련을 중시하는데 번잡한 인간세상을 지칭하는 단어로 홍진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홍진의 의미가 번화한 도시에서 인간세상을 지칭하는 보다 광의적인 뜻으로 변했다. 당시 서역에서 들여온 불경을 한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세속을 뜻하는 의미로 홍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설에서는 홍진이 속세를 지칭하는 말로 널리 쓰이게 된 것이 당나라 장안의 풍토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長安)은 황토지대인 중국 서북지방에 위치해 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번창한 도시였던 장안은 수레와 말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정도로 번화했다.
특히 석양 무렵 날리는 황토 먼지는 붉은 색으로 보였다. 때문에 당시 장안 사람들은 이를 ‘붉은 먼지’라 했고 때문에 홍진이란 말도 여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불교에서 이 용어를 가져다가 속세를 표현하는데 사용했다.
‘홍진(紅塵)’이란 단어를 좀 더 분석해보면 ‘홍(紅)’과 ‘진(塵)’이란 두 글자로 조성되었다. ‘홍’은 붉다는 뜻으로 원래 붉은 색을 물들인 옷감을 지칭한다. 나중에 전통 사상 중 오행(五行)학설에 따르면 붉은 색은 화(火)에 배속된다.
다시 말해 화려하고 불꽃과 같은 것들을 상징하는데, 한의학에서는 심장을 지칭하며 기쁨이나 북소리 등과도 연관된다. 유가의 예(禮)와 악(樂)도 오행 중에서는 화(火)로 볼 수 있다.
때문에 고대에 홍색은 인간세상의 화려하고 번잡함을 대표하는 색으로 간주되었고 또 생명의 추구와 사람의 욕망 등을 상징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홍색이 곧 세간을 뜻하게 되었다.
한편, ‘진(塵)’을 말하자면 ‘녹(鹿)’과 ‘토(土)’가 결합된 글자로 쉽게 말해 사슴이 달릴 때 일어나는 먼지를 지칭한다. 이후 일반적으로 티끌이나 더럽고 탁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동양 사람들이 사찰이나 도관에 들어갈 때 반드시 신발을 벗는 이유는 자신의 신발 밑에 있는 티끌을 신성한 곳에 지니고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신발을 신고 교회에 들어가는 서양의 기독교 문화와는 차이가 난다. 나중에 ‘진(塵)’의 의미도 더욱 넓어져 단지 먼지나 티끌뿐만 아니라 마음속 번뇌 망상을 뜻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이 글자 하나만으로도 속세를 지칭하게 되었다.
2. 순결한 美, 영혼을 정화시키는 예술
그렇다면 홍진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불가에서는 사람이 속세의 번뇌와 속박을 벗어난 아주 깨끗한 세상을 정토(淨土)라 하고 기독교에서는 천국(天國)을 말한다.
‘정토(淨土)’에서 ‘정(淨)’의 본래 의미는 ‘정(瀞)’으로 물이 맑고 깨끗한 것을 뜻한다. 즉, 티 없이 맑고 깨끗한 세상을 정토라 하는데 흔히 극락이나 천국세계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인다. 만약 인간세상에서 천국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운 장면을 볼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정토일 것이다.
얼마 전 션윈 내한 공연을 본 후 저명한 연기인이자 경기도립극단 예술 감독 전무송 씨는 “천상의 세계를 봤어요. 사실 천상의 세계가 어떤지 궁금했었는데 오늘 션윈예술단원들이 천상의 세계를 보여준 것, 모든 장면 장면들이 저에게 아름다운 마음을 갖게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평가했다.
사실 이외에도 많은 관객들이 션윈공연을 관람한 후 내리는 한결같은 평가는 아름답고 화려할 뿐만 아니라 깨끗하고 순수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션윈공연이야말로 인간세상의 정토라 하기에 손색이 없다.
정극인은 상춘곡에서 세속을 떠나 산림에 묻혀 사는 즐거움을 이렇게 노래했다.
“홍진(紅塵)에 묻혀 사는 분들이여 이 나의 생활이 어떠한가,
옛 사람들의 운치 있는 생활을 내가 미칠까 못 미칠까?
천지간에 남자로 태어난 몸으로써 나만한 사람이 많건마는
왜 그들은 산림에 묻혀 사는 지극한 즐거움을 모르는가?”
그렇다면 사람 내면의 심금을 울리는 순결한 아름다움과 영혼을 정화시키는 예술을 한번 감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홍진에 묻힌 분네 션윈 공연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