댜오위다오 사건을 이용해 권력을 부지하려는 장쩌민 파의 계략과 후-원의 통전부 반격. (대기원 DB)
9월 1일 중공 당국은 통일전선부(이하 통전부)장 두칭린(杜靑林)이 ‘연령제한’으로 물러나고 링지화(令計劃)가 후임으로 임명됐다고 발표했다. 본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두칭린 낙마는 후진타오(胡錦濤)-원자바오(溫家寶)(이하 후-원)의 반격 전술의 일환이다. 통전부는 사실상 장쩌민(江澤民) 파가 실권을 지닌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왔으며 최근 후-원-시진핑(習近平)과 장쩌민 파가 배후에서 격렬하게 다투는 과정에서 두칭린의 낙마는 사실상 보시라이(薄熙來) 낙마 이후 한차례 큰 결전이었다.
장파, 댜오위다오 사건 이용해 후-원에 압력
지난 8월 15일 홍콩의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 열도) 수호 행동위원회’ 등 14명의 일행이 홍콩을 출발, 선박을 이용해 댜오위다오에 도착해 주권을 선포하고, 이중 7명이 섬에 상륙했다 일본 측에 억류됐다. 이번 사건은 최근 끊임없이 마찰을 빚던 양국 간의 댜오위다오 문제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다. 그 후 중국대륙 각지에서 대규모 반일시위가 발생했으며 일부 해외 중문매체와 인사들이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반면 중국청년보(中國靑年報)와 인민일보(人民日報) 등 중공 관영매체들은 사태를 진정시키고 반일시위의 열기를 내리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8월 24일 인민일보 일본지사장 한샤오칭(韩晓清)은 일중신문(日中新聞)에 발표한 평론에서 댜오위다오 수호인사들에게 냉정을 촉구하고 댜오위다오에 상륙한 행동을 해국행위로 비판했다. 이 평론이 발표된 후 많은 비난이 있었고 나중에 한샤오칭이 매체를 통해 사죄해야 했다.
본지에서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장쩌민 파가 통전부가 통제하는 해외매체 및 특무(간첩)들을 동원해 댜오위다오 수호를 선동하면서 후-원-시에게 압력을 가하려는 것이다. 댜오위다오 문제를 격화시켜 전시상황을 만들면 18대 권력 이양기에 이를 활용해 저우융캉(周永康) 등 장쩌민 파의 권력을 지속시키려는 것이다.
중공은 18대 당대회가 다가옴에 따라 언제든 붕괴될 위기에 처해 있다. 러시아, 일본은 물론 남중국해 인근의 여러 나라들은 모두 중공의 위기를 틈타 평소 해결하기 힘들었던 영토문제를 해결하려 생각하고 있다.
이외에도 댜오위다오 사건은 후진타오와 시진핑을 진퇴양난에 빠지게 만들었다. 특히 일본은 댜오위다오 국유화를 선포했고, 미국이 개입함에 따라 장쩌민 파가 중공원로들을 선동해 반미를 내걸고 후-시에게 압력을 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댜오위다오에 대한 ‘강요된 애국정서’를 촉발시켜 중국의 현 정세를 무질서에 빠지게 했다. 중공 내부의 극좌파가 이를 이유로 나라를 전시상태로 몰아가고자 하는 목적은 장쩌민 파 핵심인물인 저우융캉의 은퇴를 늦추려는 것이다.
통전부, 600여 매체 관계자 불러 충칭서 홍가 불러
충칭일보(重慶日報)에 따르면 2011년 9월 17일 50여개 국가와 지역에서 온 600여 명의 중문매체 이사장, 사장, 편집장 등이 충칭에 모여 대규모 세미나를 진행했다. 보시라이(薄熙來)와 중공 국무원 화교판공실 주임 리하이펑(李海峰), 국무원 신문판공실 부주임 둥윈후(董云虎)가 회견에 참가했다.
당시 홍콩이나 대만에서 거의 모든 해외 유명 중문매체의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세계화문매체집단 사무총장 장샤오칭(張晓卿), 봉황위성TV 이사장 류창뤄(刘长乐), 캐나다 화교시보 사장 저우진싱(周锦兴), 대만 중앙사 이사장 천궈샹(陈国祥), 중국시보 총집장 왕메이위(王美玉) 등이 모였다.
당시 모임을 주최한 장본인이 바로 두칭린이었다. 소식통에 따르면 두칭린이 통전부장으로 있을 때 보시라이와 아주 가까워졌다고 한다. 2012년 7월 말 두칭린은 1644명의 당 원로들 서명을 받아 원자바오의 파면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내 보시라이를 구하고자 시도했다.
통전부, 보시라이를 ‘대륙의 마잉주’로 선전
본지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2008년 4월 장쩌민이 선정했던 후계자 천량위(陳良宇)가 후-원의 공격을 받아 18년 형을 받은 후 장쩌민 파는 보시라이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특히 통전부장 두칭린은 국내외에서 보시라이를 미화하고 충칭(重慶)정신을 널리 보급하는데 앞장섰다. 소문에 따르면 골수 장쩌민 파인 후이랑위(回良玉)가 두칭린에게 보시라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예를 들어 대만에서는 보시라이를 ‘대륙의 마잉주(馬英九)’ 이미지로 만들어 시진핑보다 더 매력적인 인물로 보이게 했다. 또한 해외중문매체에서는 보시라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해 국제사회가 보시라이에 대한 많은 호감을 갖도록 했다. 아울러 보시라이를 중공 정계의 ‘미래 스타’로 자리매김해 대만 기업인들에게 보시라이와 유대관계를 맺도록 했다. 이것이 많은 대만 기업가들이 충칭에 투자한 원인의 하나이다. 두칭린은 사적으로 대만 기업가들에게 “기회를 잡아 보시라이와 합작관계를 맺으라”고 알려줬다.
후-원-시에 대한 유언비어 퍼뜨린 통전부
최근 통전부와 정보부문의 요구에 의해 친 장쩌민 파 중공 해외매체들이 잇따라 후진타오, 시진핑, 링지화 등에 대한 부정적인 소식들을 쏟아내고 있다.
가령 링지화가 통전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에 대해서도 링지화가 이미 세력을 잃었고 전도가 유망하지 않다는 등의 소문을 흘렸다. 동시에 또 보시라이가 “재판 없이 풀려날 것”이며 “장쩌민이 강력하게 밀고 있다”는 등의 소문을 흘렸다.
후-원의 통전부에 대한 반격
장쩌민 파가 장악한 통전부가 댜오위다오 사건에서 자신들이 통제하는 해외정보계통을 이용해 대대적으로 대립을 부추기며 선동하는 자료를 퍼뜨리자 후진타오는 통전부장 두칭린을 끌어내리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두칭린의 심복이 해외로 도피하려는 과정에서 이번 항공기 회항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두칭린을 끌어내린 것은 후-원의 최근 전략의 일부분이며 사실 9월 1일 며칠 전에 고위층 내부에서 이미 결정된 일이다. 하지만 이 정보가 새는 바람에 8월 29일 항공기 회항이라는 촌극이 발생했다.
후진타오의 심복인 링지화가 새 통전부장에 임명된 것은 후-원이 장쩌민 파가 지휘하던 해외 ‘대통일전선’ 체제를 접수한 것이자 댜오위다오 사건에서 진퇴양난에 몰린 후 극적인 반격에 나선 것이다.
한편 후-원이 홍콩에서 한 가장 중요한 행동은 렁춘잉(梁振英) 행정수반의 APEC참가를 제한한 것이다.
후-원, 렁춘잉 APEC 참가 저지
홍콩의 신임행정특구 수반 렁춘잉은 일찍이 중공지하당원임이 폭로됐다. 뿐만 아니라 중공 특무(간첩)계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홍콩 지하당의 특무계통은 일찍부터 쩡칭훙(曾慶紅)이 장악해왔고 렁춘잉 역시 쩡칭훙이 키운 인물이다.
렁춘잉이 취임하자마자 쩡칭훙은 공산당 ‘세뇌교재’를 ‘국정교육교학수첩’이라 하며 교육정책을 세웠으나 홍콩에서 큰 반발을 야기시켰다. 동시에 홍콩 정부는 9월 초부터 3년 내에 초중고 학생들에게 국민교육을 강제로 추진하려 했다. 그러나 명목은 국민교육이지만 실제 내용은 애국보다는 공산당을 찬양하는 내용이 많아 젊은 세대들을 세뇌하기 위한 술책이라는 비난이 들끓었다.
홍콩시민들은 최근까지 이번 세뇌교육에 항의하는 시위를 두 달간 지속해왔다. 결국은 9월 9일 홍콩 입법회 선거 전날 본래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던 렁춘잉이 갑자기 3년 내 국민교육 추진을 철회하고 학교별로 자율적으로 진행하도록 했다.
또한 렁춘잉은 9월 5일 러시아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담 참석을 취소했다. 본지 소식통에 따르면 렁춘잉의 이런 행동은 배후세력의 지시를 받고 통전부와 협력해 홍콩에 중공을 옹호하는 교육을 확대하려했던 것이다. 배후세력의 의도는 홍콩시민들을 격분하게 만들고 홍콩정국을 혼란으로 몰고 가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후진타오는 렁춘잉이 홍콩을 떠나지 못하게 하여 APEC참가를 막음으로써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중공 중앙이 렁춘잉에게 분노하게 된 또 다른 원인은 그가 통전부와 모의해 홍콩에서 댜오위다오 수호 선박을 출항시켜 후-원에게 압력을 가했기 때문이다.
이번, 홍콩에서 댜오위다오로 향한 치펑2호(启丰二号)의 순조로운 출항은 그동안 줄곧 의문시 돼 왔다. 왜냐하면 홍콩정부는 그동안 문제를 일으킬 것을 우려해 출항금지령을 내려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번에 활동에 참가한 인사들조차 이렇게 쉽게 성공하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왕리쥔을 기소하게 된 배후
후-원과 시진핑이 갑자기 왕리쥔(王立軍)을 기소하면서 발표한 4가지 죄목은 모두 보시라이 저우융캉과 관련이 있다. 이렇게 한 이유는 첫째 미국, 일본 등에 후-원-시가 연합해 정국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이다. 둘째, 장쩌민 파에게 더는 보시라이를 살릴 희망을 갖지 말도록 경고하는 동시에 장쩌민 파 잔당에게 정국을 어지럽히지 말라고 경고하는 메시지다.
중공당국이 왕리쥔의 4대 혐의로 지적한 내용은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 법을 어기고, 배반성 도피, 직권남용과 뇌물수수 등이다. 해외매체에 따르면 이 4가지 죄목은 모두 보시라이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으로 사실상 보시라이의 목에 밧줄을 건 것과 같다는 분석이다.
보시라이 사건 뒤집으려는 저우융캉
한편 이미 세력을 잃은 중앙정법위 서기 저우융캉이 최근 들어 자주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일과 4일에는 안후이성 ‘시찰 및 조사연구’에 나서 구카이라이(谷開來) 사건을 심리한 허페이 중급인민법원을 시찰하고 “매 안건이 모두 법률과 역사의 검증에 떳떳할 수 있도록 심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저우융캉의 이런 행동은 구카이라이 사건을 심리한 허페이 중급법원을 위협한 것이다. 뒤이어 친 장쩌민 파 해외매체에서는 저우융캉이 구카이라이를 언급한 것은 의도적으로 행한 보시라이의 복권을 위한 암시라고 보도했다.
또한 지난 8일 서방매체에도 갑자기 ‘친보시라이 인사’의 말을 인용해 지난달 심판받은 구카이라이는 사실 본인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왔다. 일부 매체에서는 또 정치적인 원인 때문에 이번 사건의 재판절차는 ‘보시라이를 제거하려는 목적’에 끼워 맞춰졌다고 했다.
9월 3일 해외의 모 중문사이트에서는 ‘저우융캉 측근’의 말을 인용해 “저우융캉은 사적인 자리에서 구카이라이는 헤이우드를 살해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그는 또 지난 몇 달 간 저우융캉이 여러 차례 보시라이와 구카이라이를 방문했다면서 “보시라이 동지는 어둠이 곧 사라질 것임을 믿으며” 그는 “반드시 태양이 뜨는 날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어떤 매체는 홍콩 시사평론가의 말을 인용해 보시라이가 당적을 박탈당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형사처분을 면할 것으로 보도했다.
본지는 장쩌민 파 저우융캉, 쩡칭훙 등이 중공 극좌파와 연합해 현재 중국의 경제위기를 빌미로 정국을 혼란시키고 의도적으로 군사통제를 실시하는 동시에 원자바오, 왕양(汪洋) 등 개혁파를 제거하고 최후에 후진타오-시진핑의 수중에서 권력을 빼앗으려 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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