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에 열릴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18대 상무위원 인선이 정해질 예정이다. 현 톈진시 서기 장가오리(오른쪽 장쩌민파)가 18대 상무위에 진입할 다크호스로 거론되고 있다.(사진=Getty Images)
18대 상무위원 인선을 사실상 결정할 7월 베이다이허 회의를 앞두고 톈진시 서기 장가오리가 다크호스로 거론되고 있다. 위정성과 마찬가지로 장가오리는 보시라이 사건이 발생한 후 갑자기 태도를 바꿔 후진타오에게 연속 충성을 표명하며 18대 상무위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장쩌민 파가 최근 장가오리에 관한 보도를 대대적으로 하는 배경에는 그가 과거 파룬궁 탄압에 적극 가담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대표단 이끌고 충칭 방문한 장가오리
장가오리는 2010년 8월 중순 80여 명의 톈진시 당정간부들로 구성된 대표단을 이끌고 이틀간 충칭을 방문했다.
충칭에서 그는 보시라이를 칭찬하면서 “학습과 고찰을 통해 우리는 충칭시의 업무와 사고가 신선하고 방법이 실질적이고 추진력이 강하며 속도가 빠르고 효과가 좋고 많은 소중한 경험들을 축적한 것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허심탄회하게 충칭시를 학습하고 장점을 배워 개척정신으로 각 항목 업무를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보시라이의 톈진 답방
두 달 후 2010년 10월 9일부터 이틀에 걸쳐 보시라이는 60여 명으로 구성된 충칭시 당정대표단을 이끌고 톈진을 방문했으며 황치판 충칭 시장도 동반했다.
당시 장가오리는 보시라이를 계속 칭찬하면서 “얼마 전 우리는 충칭시에 가서 학습하고 고찰한 후 충칭시 개혁의 힘이 크고 개방의 수준이 높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많은 성공적인 경험과 방법들은 우리에게 귀중한 참고가 됐고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계발을 주었다”고 발언했다.
보시라이 사건 이후 돌변한 장가오리
그러나 4월 10일 보시라이가 정치국 위원직에서 해직되고 구카이라이가 살인혐의로 사법기관에 이송됐다는 보도가 나온 후 장가오리의 태도는 돌변했다.
4월 11일 ‘중국조직인사보’에는 장가오리가 3월 23일 새로 부임하는 구와 현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의 일부가 보도됐다. 장가오리는 “절대 무리를 짓거나 작은 패거리를 짓지 말아야 하며” “후진타오 동지를 총서기로 하는 당중앙 주위에서 단결해” “우수한 성적으로 당의 18대와 제10차 당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맞이하자”고 강조했다.
그러나 관방에서 보시라이 사건을 통보하기 전날(4월 9일)까지 매체에서는 일체 장가오리에 대한 활동을 보도하지 않았다. 4월 11일에야 19일 전에 있었던 이 발언을 보도하게 한 것은 이를 통해 중앙에 자신의 태도를 밝힌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4월 12일 톈진왕(天津网)에는 또 장가오리가 4월 11일 톈진정법치안유지전선에서 진일보로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업무에 대해 조사연구를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장가오리는 “인민일보 평론원은 문장을 이해하고 정확한 정치방향을 견지하며 정확한 정치입장을 확고히 해야 하며 정치적인 높이에서 문제를 잘 처리해야 한다. 시종 사상에서나 정치에서나 행동상에서 후진타오 동지를 총서기로 하는 당 중앙과 고도의 일치를 유지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에 앞서 상하이시 서기 위정성은 이미 양회에서 보시라이를 ‘나관(裸官)’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비판하며 상무위 진입을 위한 점수를 딴 바 있다.
파룬궁 박해에 적극 가담했던 장가오리
장가오리는 선전시 서기 겸 선전경비구 당위원회 제1서기로 있던 2001년 ‘백일회전(百日會戰)’으로 파룬궁을 타격하는 계획을 세운바 있다. 같은 해 4월에는 전시통일전선 공작회의에서 파룬궁에 대한 공격을 강화할 것을 거듭 강조했다.
장가오리는 2001년부터 2007년까지 파룬궁 박해가 가장 심했던 기간에 산둥성 서기 및 성장으로 재임했다. 2002년 산둥성 제9기 인민대표대회 정부공작보고와 2003년 성위원회 공작회의에서 파룬궁에 대한 공격을 요구했다. 2002년 12월 6일에는 성공안청 지휘센터, 형사과학연구소, 성신방국을 시찰하면서 파룬궁에 대한 단호한 공격을 강조했다.
국제파룬궁박해추적조사조직이 2004년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장가오리 가 직접 파룬궁 박해를 지휘해 산둥성을 전국에서 파룬궁 탄압이 가장 심각한 곳의 하나로 만들었다고 한다. 2004년 2월까지 산둥성에서 박해로 사망한 수련자의 수는 적어도 100명에 달하며 이는 전국에서 3번째에 해당한다.
칭다오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2003년 4월 27일 파룬궁 전단지를 붙이다 체포된 장(張)모씨와 그 모친이 공안에 체포돼 지난시 간수소에 감금됐다. 5월 4일 장모씨가 창문을 넘어 탈출하자 산둥성 서기 장가오리가 지시를 내려 200여 명의 경찰을 동원해 그를 체포하게 했다.
장가오리는 톈진시 서기로 옮긴 후에도 파룬궁 박해를 계속해왔다. 2008년 5월 올림픽 전에 장가오리는 “파룬궁에 대한 공격을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울러 톈진시 관할 각급 구, 현, 향진 파출소에 파룬궁 수련자 집을 가가호호 방문해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뿐만 아니라 부하를 시켜 다강구(大港区) 쭤진(坐镇)의 파룬궁 수련자의 직장과 가정에 찾아가 상방(청원)하지 않는다는 보증서를 받아오도록 강요했다. 톈진시 610 사무실은 올림픽을 구실로 여러 명의 파룬궁 수련자들을 체포했다.
2011년 9월 장가오리는 조사연구차 톈진을 방문한 610사무실 주임 겸 공안부 부부장 리둥성(李东生)에게 “끊임없이 파룬궁을 억압하는 공작의 수준을 높이고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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