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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스승님"…만학도들의 특별한 스승의날
스승의 날인 15일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에서 사은회가 열렸다. 1학년 4반 교실에서 학생들이 선생님께 감사를 전하고 있다.(뉴시스)

"평소에는 스승의 날 행사하면 다들 우느라 정신없는데 오늘은 안 우시네요?"

선생님이 농담을 던지자 교실에 모인 40여 의 학생들은 꺄르르 웃었다. 학생들이 서툰 음정과 박자로 '스승의 은혜'를 부르자 선생님은 흐뭇한 표정으로 이들을 지켜봤다. 

스승의 날인 15일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 1학년 4반 교실 안. 평범한 교실 같지만 '학생들' 외모가 다른 학교들과 달랐다. 희끗희끗한 파마머리, 활짝 웃는 눈매 사이로 보이는 주름살,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주글주글한 손까지. 학생들은 모두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다.

"여러분의 (배움에 대한) 간절함을 알기 때문에 저도 더 노력했는데 잘 알아주시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나이가 많지만 내게는 아직 손 많이 가는 중학교 1학년입니다. 친정엄마처럼 더 많이 챙겨드릴 테니 믿고 의지해주세요."

교단에 서서 감사인사를 전하는 선생님은 한눈에 봐도 학생들의 손녀뻘 정도 돼 보이는 앳된 얼굴이다. 선생님보다 학생이 훨씬 나이가 많은 생경한 풍경이다.

일성여자중고등학교는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만학도들이 다니는 학교다. 교사들 나이는 30~50대인 반면, 학생들은 50대에서 많게는 80대까지 있다.

이 학교 최고령 학생인 김보부(88)씨는 올해 중학교 1학년 새내기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14살에 겨우 해방을 맞았지만 5년 만에 6·25 사변이 터졌다. 평안남도가 고향인 김 씨는 평생 독립운동을 돕던 아버지가 북한의 미움을 사 숙청당하자 남동생만 들쳐업고 남쪽으로 피난을 왔다. 홀로 터를 일구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다 보니 글을 배울 새도 없었다. 

"내 한 많은 삶을 글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올해 이 학교에 입학해 처음으로 내 이름을 써 봤어요. 일주일 전에는 나와 막내딸의 한문 이름도 배웠고요. 너무 감격스러워요"

김 씨의 담임교사는 김 씨 손녀와 비슷한 또래인 30대 초반이다. 김 씨는 "나이가 어려도 선생님이기 때문에 항상 우러러본다. 나이가 제일 많아 습득이 느린 편인데 맨 앞자리로 불러 놓고 항상 챙겨주신다"고 말했다.

스승의 날인 15일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에서 사은회가 열렸다. 학생들이 교사 송세인(30)씨에게 사은 행사를 열어주고 있다.(뉴시스)

또 다른 학생인 임헌선(81)씨는 올해 중학교 2학년이다. 임 씨는 2013년 76세의 나이로 다시 양원학교에 입학해 4년간 초등교육을 마친 뒤 지난해 일성여중에 입학했다.  

임 씨는 노년에 4번의 암 수술을 받은 뒤 학교를 다니기로 결심했다.

"71세 때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위를 다 잘라내 죽기만 기다리는데 글을 못 배운 채 죽고 싶지가 않았어요. 1년 간 학교를 다녔더니 오히려 암이 다 도망갔어요. 너무 즐거우니까."

임 씨는 가장 감사했던 스승으로 이선재 교장선생님과 첫 담임선생님을 떠올렸다.

"'건강도 학업도 포기하지 말라'며 격려해주신 교장선생님 덕분에 제2의 삶을 얻었다. 일이 있어 수업에 늦을 때마다 지난 수업 내용을 대신 필기해 내 손에 꼭 쥐어주셨던 첫 담임선생님도 잊을 수 없다"고 말하는 임 씨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선생님들에게도 일성여중고등학교에서 맞는 스승의 날은 특별하다. 

2년째 합창단을 맡고 있는 송세인 선생님은 올해 30세가 됐다. 학교 내에서도 가장 어린 편인 그는 우연히 이 학교에 수업시연을 왔다가 어르신들의 열정에 감동을 받아 정착하게 됐다. 

"일반 학교의 어린 학생들을 대할 때는 짝사랑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 곳은 주는 사랑보다 받는 사랑이 더 많아요. 스승의 날마다 내가 이렇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교사인지 돌아보게 됩니다." 

나이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어려움도 있다.

송 씨는 "배운 것들을 자주 잊으시기 때문에 똑같은 내용을 백만 번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나 어르신들이 포기하지 않고 밤새 공부하시니 교사도 가르칠 의지가 생긴다"고 말했다.

송 씨는 "가끔 고민을 털어놓으면 다들 엄마의 마음으로 조언을 해주신다. 내가 교사인데 오히려 학생들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운다"며 웃었다.  

이날 일성여자중고등학교는 스승의 날을 맞아 전교생 1058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은회를 진행했다. 사은회를 마친 뒤에는 졸업한 선배 38명을 초청해 졸업생 특강도 진행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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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날#만학도#어린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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