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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벗어날 수 없는 인연...발에 매어놓은 붉은 끈
부부의 연이란 이미 정해진 것이라 거역할 수 없다. 따라서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더욱 서로 공경하며 사랑해야 한다고 믿게 됐다. 그림은 송대 작자 미상의 <여효경도권(女孝經圖卷)> 견본의 일부이다.(퍼블릭 도메인)

중국에서는 재산이나 외모에 상관 없이, 심지어 수만 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붉은 끈이 발에 매이면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인연이 맺어져 부부가 된다는 말이 옛부터 전해져 온다.

월하노인을 만나 남녀의 혼인 장부를 보다

당나라 원화(元和) 2년(807년), 서안(西安)에는 위고(韋固)라는 서생이 살고 있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읜 그는 하루빨리 장가를 들고자 여기저기 구혼을 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친구를 만나러 하북(河北) 청하(淸河)로 향하는 도중 송성현(宋城縣)의 한 여인숙에 묵었다. 손님 중 어떤 이가 그에게 결혼 상대로 청하의 사마 반방(潘昉)의 딸을 소개해 주겠다기에 이튿날 새벽 용흥사(龍興寺) 문 앞에서 그와 만나기로 약속했다.

다음 날, 위고는 일어나자마자 헐레벌떡 용흥사로 향했다. 동이 트는데 약속했던 사람은 오지 않고 어떤 노인만 계단에 앉아있었다. 백발의 노인은 큰 포대에 기댄 채 달빛에 글을 읽고 있었다. 위고는 그에게 다가가 무슨 글이 적혀 있는지 엿보았다. 글은 전서(篆書)도 아니고 범문(梵文)도 아니었는데, 도대체 어떤 글자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이를 기이하게 여겨 노인에게 물었다. “어르신께서 읽고 계신 글은 무엇입니까? 저는 경전을 공부하는 사람인데 어찌 여기 있는 글자는 하나도 알아보지 못하겠습니다.” 노인은 웃으며 말했다. “이것은 인간 세상의 책이 아니니 그대가 어찌 본 적이 있겠는가? 이것은 천하 남녀의 혼인 장부라네.”

이 그림은 명대 장로(張路)의 <팔선도(八仙圖)> 중 하나이다.(퍼블릭 도메인)

반신반의하던 위고는 포대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물었다. 노인이 대답했다. “부부의 다리를 묶는 데 쓰는 붉은 끈인데, 남녀 한 쌍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 둘을 묶어준다네. 원수 집안이든, 부의 격차가 크든, 외모가 어울리지 않든, 심지어 서로 수만 리 떨어져 있다 해도 이 끈이 묶여있으면 누구도 부부의 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네.”

위고는 또 물었다. “그렇다면 제 인연을 좀 찾아주십시오. 오늘 어떤 이와 여기서 만나 송성반씨 사마의 따님을 결혼 상대로 소개받기로 했는데,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노인은 책을 넘기며 말했다. “이루어지지 못하네. 명(命)이 합하지 않아.”

“그렇다면 저는 언제쯤 아내를 맞을 수 있을까요? 제 아내는 어디에 있죠? 그녀 집은 무얼 하는 집안인가요?”

노인은 또 책을 넘기며 말했다. “그대는 13년이 지나야 아내를 맞이한다네. 아내 될 사람은 여인숙 북쪽에서 채소 장사를 하는 진(陳) 씨 부인의 딸일세.”

위고는 거듭 물었다. “지금 제가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요?” 노인이 말했다. “진씨 부인은 종종 그 아이를 안고 채소 시장에서 장사를 한다네. 나를 따라오면 내가 그대에게 가리켜주겠네.” 노인은 책을 말아 포대에 담아 매고 길을 나섰다.

아직 세 살이 채 안 된 아내의 모습을 보다

날이 밝았는데도 약속한 사람이 오지 않자 위고는 재빨리 노인을 뒤따라 야채 시장으로 향했다. 거기엔 한쪽 눈이 먼 부인이 너덜너덜한 옷을 걸친 여자아이를 품에 안은 채 채소를 팔고 있었다.

노인은 여자아이를 가리키며 위고에게 말했다. “저 아이가 장차 그대의 아내가 될 사람이네. 지금은 세 살이 안 됐는데, 열여섯이 되면 자네한테 시집갈 걸세.”

위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내를 맞이하는 데 뭔 13년이나 걸린단 말인가! 여자아이를 보아하니 그리 정감 가지 않은 생김새에 얼굴에는 콧물자국이 있었다. 위고는 화가 났다. “혼인이란 집안 수준이 맞아야 하는 것인데, 사대부 집안 출신인 내가 어찌 이런 촌뜨기 집안 딸과 결혼해야 한단 말이오?!”

노인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대들의 발에는 이미 붉은 끈이 매였네. 이를 바꿀 수는 없어!”

위고가 물었다. “내가 저 아이를 죽이면요?” 노인이 말했다. “저 아이는 명에 재복이 있고, 아들로 인해 크게 부를 얻을 것이야. 그대는 저 아이를 죽일 수 없네.” 말을 마치자 노인은 홀연히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온 위고는 생각할수록 언짢았다. ‘그 아이를 죽이고야 말 테야. 그러면 내 아내가 될 일도 없겠지!’ 마침내 위고는 종을 시켜 아이를 찔러 죽이게 했다. 하지만 겁이 많은 종은 아이를 보고는 황급히 아무렇게나 칼을 휘두르고는 재빨리 달아났다.

13년이 지나자 정말 그 아이를 아내로 맞다

그 후 매년 위고에게 혼담이 들어왔지만, 한 번도 성사되지 않았다. 눈 깜빡할 새에 13년이 지났고, 위고는 상주(相州) 자사(刺史) 왕진(王泰)의 수하에서 참군관(參軍官)을 지냈다.

위고의 재능을 높이 산 왕진은 그에게 아직 아내가 없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딸을 그에게 시집 보냈다. 색시는 열여섯에 용모가 수려했다. 위고의 마음은 흡족했다.

아내는 눈썹과 눈 사이에 채색 장신구를 붙이고 있었는데, 밤에 잘 때도 떼어내지 않았고, 몸을 씻은 후에도 다시 장신구를 붙였다. 위고는 참지 못하고 그 까닭을 물었다.

그림은 송대 작자 미상의 <여효경도권(女孝經圖卷)> 견본의 일부이다.(퍼블릭 도메인)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답했다. “사실 저는 자사의 친딸이 아니라 조카딸이랍니다. 이전에 아버지께서 송성현의 현령으로 계실 때 직무 수행 중에 순직하셨습니다. 그 후로 어머니와 오라버니까지 연이어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아직 젖먹이였을 때 진(陳) 씨 유모께서 저를 길러주셨고, 종종 저를 안은 채 야채 시장에 가서 장사를 하며 세월을 보냈습니다. 세 살 때 어떤 강도의 칼부림에 눈꺼풀을 다쳐 흉터가 생겼는데, 그 후 항상 장신구로 흉터를 가리고 있습니다. 몇 년간 숙부께서 저를 길러 주셨고, 숙부께서 이곳에 관직을 맡게 되셔서 저도 따라온 것입니다. 숙부께서는 저를 친딸로 여겨주시며 낭군께 시집을 보내셨습니다."

위고는 말을 들은 후 크게 놀라며 물었다. “진 씨라면 한쪽 눈이 먼 부인 아니오? 야채 시장이라면 송성 여인숙 근처를 말하는 것이오?” 부인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어찌 그리 잘 아시는지요?”

위고는 솔직히 털어놓았다. “당신을 찌르도록 내가 사주했소.” 위고는 그해 한 노인을 만난 이야기를 꺼냈다. 이처럼 우여곡절을 겪은 둘은 부부의 연이란 이미 정해진 것이고 거역할 수 없는 것이기에 인연을 소중히 여겨 서로 간에 더욱 공경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믿게 됐다. 그 후 부부는 아들 하나를 낳아 이름을 위곤(韋鯤)이라 지었다. 위고는 변경의 관문을 지키는 안문(雁門) 태수로 부임했으며, 왕 씨는 ‘태원군태부인(太原郡太夫人)’에 봉해졌다. 과연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 것이다.

실로 남녀의 인연이란 하늘에서 정해주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라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월하노인이 붉은 끈으로 묶어주지 않는다면, 아무리 그리워해도 결국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없다.

그림은 <송고종서효경마화지회도책(宋高宗書孝經馬和之繪圖册).사장(士章) (화(畵))>.(퍼블릭 도메인)

참고문헌:
당(唐) 이복언(李復言) <속현괴록(續玄怪錄)·정혼점(定婚店)>
송(宋) 이방(李昉) 등 편찬 <태평광기(太平廣記)> @*

글 / 종가수(宗家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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