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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사태 원인은 ‘좌편향·포퓰리즘’...'21세기 사회주의' 좌절민주제, 수립도 쉽지 않지만 지키는 건 더욱 어려워
2019년 1월 25일, 베네수엘라 수도의 가두집회에서 시위하는 민중 (Photo by Luis ROBAYO / AFP)

1월 23일,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거리로 나와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의 부패와 관리 혼란에 대한 항의시위에 나섰고,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은 본인이 임시 대통령직을 수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브라질 등이 과이도의 임시 대통령 신분을 인정한다고 발표하자, 많은 나라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러시아 쿠바 볼리비아 멕시코 터키 등은 마두로를 지지했고, 이에 유엔은 양측의 대화를 촉구했다. 로이터 통신이 모스크바 소식통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 민간용병 400여 명이 이미 베네수엘라에 파견됐다.  

2011년의 이집트나 시리아와 마찬가지로, 베네수엘라 군대의 태도가 양측의 승부를 결정짓는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늘에 이른 베네수엘라, 누구의 책임인가?

중국어 소셜미디어와 적잖은 서양 언론들이 오늘날 베네수엘라의 곤경을 민중과 독재자의 싸움이라 보는 문제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베네수엘라는 1958년 헌정을 실시하고 문민정부를 수립한 후, 민주행동당과 기독교사회당이 번갈아가며 집권했다. 그러다가 1998년 12월에 ‘애국중심’ 대통령 후보였던 우고 차베스가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전통을 가진 두 정당이 교대로 집권했던 정치 구도가 깨졌다. 그 후 차베스는 사망하기 전까지 장장 14년 간 집권했으며, 그가 사망하자 차베스의 측근이자 추종자였던 마두로 부통령은 37일 간 대통령 권한대행을 한 끝에, 2013년 4월 14일 마침내 베네수엘라 ‘포스트 차베스 시대’의 초대 대통령이 됐다.

필자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기초해, 지금 베네수엘라의 곤경이 독재자와 민중의 대립이 아니라고 본다.

1. 마두로는 2018년 대선에서 승리하며 연임에 성공했다. 그의 첫 임기 중의 ‘정치적 업적’은 세상이 다 안다.

2. 마두로는 동시에 4개의 야당과 경선에 나섰다. 여론은 비교적 약한 당이 사퇴를 선언하거나 자신의 유권자들에게 표를 다른 야당에 주라고 호소하는 등으로 막판에 표를 몰아줘야 했는데, 야당끼리 서로 헐뜯기 바빴기 때문에 마두로가 당선됐다고 비난해왔다. 이렇게 표를 몰아주는 행위는 프랑스와 미국 선거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으로, 이는 일종의 선거 기술이며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3. 일부 유권자들은 돈을 받고 선거표를 팔았는데, 이러한 뇌물 선거 현상도 개발도상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세계적으로 볼 때, 민주제 수립도 쉽지 않지만 민주제를 지키기 것은 더욱 어렵다. 차베스 시대부터 베네수엘라를 주목해 온 필자의 관찰 결과, 베네수엘라의 현재의 곤경은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잘 지키지 못한 결과이지, 민주와 독재의 싸움은 결코 아니다.

오늘 날 세계 언론은 모두 좌편향적이어서, 그들과 야권은 재임자를 독재로 모는 것을 가장 좋아하고, 유권자들이 자신들의 표로 ‘독재자’를 통치자 자리에 올렸다는 사실은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베네수엘라는 민주주의국가이자 사회주의국가이다. 70년대의 영광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베네수엘라는 차베스, 마두로와 큰 관련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이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반성이 없다면 대통령이 바뀌어도 소용없다.

유권자는 자신과 국가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  책임을 지는데 있어 주요 행동은 자신의 표에 책임을 지고 본인이 원하는 결과를 생각해 투표를 하는 것이다. 2018년 5월 선거 전, 베네수엘라는 이미 악성 인플레이션과 식량 부족, 공중보건 위기에 깊이 빠져 있었다.

국제사회조차도 이번 선거를 통해 지도자가 바뀌고 오랜 시간 이어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원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에 대부분 투표를 하지 않았다.

이번 대통령 선거의 초점은 투표율이었다. 투표율과 관련해 여러 주장이 나왔다. 2018년 7월 31일 새벽 티비사이 루세나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은 “첫 제헌대회 예비 선거결과에 따르면, 7월 30일 투표에 참여한 총 인원은 800만 명을 넘었는데, 이는 등록한 유권자들의 41.53%를 차지한다”고 발표했다.

마두로와 그 지지자들은 마두로가 민주선거의 합법적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야당은 두 가지 이유를 들며 이를 부정했다. 첫째는 투표율이 이보다 훨씬 낮다는 것으로, 그들이 내놓은 투표율은 15%와 30%이다. 두 번째는 마두로가 돈으로 민심을 샀다는 것이다.

처음에 유권자들이 투표를 했더라면 현재 이렇게 힘들게 거리로 나와 항의시위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차베스와 마두로 모두 본인들의 선택으로 대통령이 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정치를 비난하고 탓하기에 앞서 먼저 자기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왜 차베스에 열광했나?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차베스 사랑은 중국인들의 마오쩌둥 사랑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차베스의 역사와 그가 인민의 행복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난한 농업국에서 자원 대국으로 발전한 베네수엘라 운명의 전환점은 1922년이었다. 그해 12월 로열더치셸(Royal Dutch Shell)그룹은 베네수엘라 북서부 마라카이보(Maracaibo) 호수의 한 시추공에서 거대한 기름 줄기가 족히 수 십 미터 높이까지 치솟는 것을 발견했다. 이때부터 세계는 베네수엘라에 풍부한 석유가 매장돼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1970년까지 베네수엘라 전역에서 총 57개의 유전이 발견됐으며, 확인된 매장량은 세계 1위이며 석유생산량 또한 세계의 10%에 달했다.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이때부터 석유에 의존해 잘 살기 시작했고, 1인당 GDP는 브라질과 콜롬비아 등의 인접국보다 훨씬 많았으며, 미국과도 큰 차이가 없었다.

석유는 베네수엘라에 수출 소득의 76%와 재정 수입의 절반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석유로 인한 부패가 시작됐고 권력 계급이 생겨났으며 빈부격차가 심해졌다. 그리하여 많은 하층 국민들이 이에 대해 원망을 품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하늘이 내린 위인’ 차베스가 혜성처럼 나타났다.

하층민 출신의 차베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으며, 좌편향과 포퓰리즘은 바로 차베스가 표심을 얻는 비결들이었다. 1998년 대선 때 그는 베네수엘라 국민들에게 최상의 복지를 약속하고 사회주의와 유사한 일련의 복지 조치를 제시했다. 그리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16%포인트의 우세로 경쟁 상대를 가볍게 제쳤다.

취임 후 차베스는 대외적으로는 반미 깃발을 높이 내걸고 민족 포퓰리즘에 부응했다. 그는 대내적으로는 공약을 실천하기 시작해, 베네수엘라에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제공하고, 200만 채의 집을 지어 무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살게 해줄 뿐 아니라 심지어 석유까지도 거의 공짜로 쓸 수 있는 ‘21세기 사회주의’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정책들이 민생을 개선하고 빈곤율을 낮춘 것은 사실이다.

사회주의의 최대 장점은 빈곤층의 평등과 복지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차베스는 운 좋게도 그가 취임 후 10년 동안 국제 유가가 계속해서 상승했다. 2003년 이후 유가는 더욱 치솟아 2008년 7월 배럴당 150달러(약 17만원)에 육박하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영 베네수엘라 석유회사(PDVSA)는 차베스에게 황금알을 낳는 암탉이 됐고, 벌어들인 돈은 전부 차베스의 사회주의 실험에 사용됐다. 또한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한 때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국민이 됐다. 세계 각지에서 미친 듯이 물건을 사대는 모습은 마치 몇 년 전 세계 쇼핑시장을 가득 메웠던 중국의 부유 중산층의 모습과도 같았다.

사회주의 최대 단점은 바로 눈앞의 이익만을 보기 때문에 경제 발전이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이다. 모든 사회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차베스는 케이크를 나누고 먹을 줄만 알았지 만들 줄은 몰랐다.

그는 집권 시기 첫째, PDVSA를 모두 재정비해 측근들이 회사를 장악하도록 했지만, PDVSA에 대한 기술적 투자를 포기함으로써 경제적 기둥의 생산능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이와 동시에 또한 다른 공업산업의 발전도 포기했다.

둘째, 국유화를 대대적으로 추진해 민영기업과 외자 대기업을 국유화함으로써 베네수엘라의 국가 신용이 파산했고, 더 이상 여기에 투자할 다국적 기업도 없어졌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베네수엘라 경제는 석유에 심각하게 의존하게 됐으며, 차베스 집권 중기에 PDVSA는 나라 전체 외환수입의 95%를 차지하게 됐다. 이런 석유 중심의 단일 자원형 경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국제 석유시장의 유가하락이다.

국제 유가는 2008년 7월 배럴당 150달러라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후, 같은 해 말 마침내 극적으로 40달러(약 5만원) 아래로 떨어졌다. 또한 2009년 1월 21일 뉴욕상품거래소의 원유 선물 가격은 33.20달러(약 4만원)로 2004년 4월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그러자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그 즉시 어려움에 직면했고 석유 수입은 더 이상 베네수엘라의 복지 시스템을 지탱할 수 없게 됐다. 차베스가 2013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의 베네수엘라 사회와 경제 상황은 인플레이션이 20%까지 치솟고, 살인률 또한 세계 상위권에 올랐으며, 민심은 극도로 분열된 사회가 됐다. 그로 인해 각종 사회·경제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국민들은 계속해서 ‘차베스의 아들’ 마두로 선택

2013년 대선에서 차베스 시기의 부통령 마두로가 승리했다. 경선에서 그의 정치적 적수였던 엔리케 카프릴레스 라돈스키는 대선 패배 후 “우리는 마두로가 아닌 차베스의 영혼과 싸웠다”고 결론지었다.

마두로 승리의 비결은 여전히 좌파와 포퓰리즘이었다. 마두로는 선거전 개막연설에서 차베스 지지자들을 향해 “나는 차베스가 아니지만 그의 아들이다. 나는 당신들과 같은 노동자이다. 당신들과 나, 우리 모두가 차베스이며 이 나라의 노동자이자 병사이다”라고 말했다.

처음 시작에 마두로는 총명하게도 자신을 ‘차베스의 아들’이자 ‘차베스주의’의 충실한 옹호자로 정의했다. 그는 지지자들에게 석유 수입을 사회 복지에 투입하는 안건을 포함해 차베스가 집권 14년 동안 추진해 온 정책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장담했다.

당시 매우 어려웠던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권자에게 최저임금 인상을 약속했고, 때를 놓치지 않고 차베스의 시신을 수정관에 넣어 사람들이 추앙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미 제국주의를 통렬히 비판해 포퓰리즘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도 그가 반자본주의를 표방하는 중요한 비결이다.

이 일련의 움직임은 많은 차베스 지지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이로 인해 그는 상당히 많은 표심을 얻을 수 있었다. 아발로스 베네수엘라 중앙대 사회학교수는 “마두로가 가진 매우 중요한 무기 두 개는 바로 차베스의 유지(遺志)와 국가기관”이라고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차베스에게 선택받고 베네수엘라 민중들에게 추대된 마두로는 차베스만큼 개인적인 매력도 없었고, 석유만으로 돈을 계속해서 벌어들일 운도 없었다. 그는 차베스만큼 독재적이고 부패했으며 무능했다. 몇 년 동안에 걸친 그의 통치 결과 몇 십 년 동안 축적된 문제들이 집중적으로 터지기 시작했다. 이는 베네수엘라를 ‘20세기 이래 전쟁외 조건이 초래한 인류사회 최대 규모의 붕괴’에 빠지게 했다.

베네수엘라 정치의 악성종양, 좌편향과 포퓰리즘

2011년 아랍의 봄에 대한 경험은 ‘한 정권을 전복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국가재건은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베네수엘라의 곤경은 또한 개발도상국의 일반적 병폐를 보여준다. 민주제를 수립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민주제를 지키는 것은 더 어렵다. 라틴아메리카 좌파 정치의 제도적 막다른 길은 베네수엘라 정국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민주사회주의는 줄곧 전 세계 좌파들에게 인간사회제도의 정점으로 여겨져 왔다. 무려 60여 년 동안 헌정 민주제도를 수립해 온 베네수엘라의 헌법은 법률제도, 국민선거, 의회제 등의 민주제도 요소와 마찬가지로 부족함이 없다.

복지제도는 예부터 라틴 아메리카 나라들 중 최고로 우수했는데, 이 나라가 사회주의를 건설했다는 징표로 여겨졌다. 라틴 아메리카와 중동국가들은 또한 반미를 외적에 맞서고 자본주의를 거부하는 길의 첫 징표로 여긴다.

베네수엘라는 이 두 방면에서 모두 매우 철저하게 해 왔으며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를 고수하고 있다. 지금까지 베네수엘라 국민들과 서방국가들은 이 나라의 문제를 되짚어볼 때, 자원의 저주만 인정했을 뿐 사회주의 제도로 인한 재앙으로는 결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제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거리시위가 이제 시소 게임으로 변질되면서, 군부의 태도가 승패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는 자국 내 분쟁에 외국 세력을 끌어들였는데, 결국 러시아와 미국을 대표로 하는 서방세계의 대리전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이 생겨나 원래 부유했던 나라를 공연히 고통스럽게 해 만신창이의 전쟁 폐허로 만들었다.

시리아 내전은 ISIS를 탄생시켜 중동아프리카 북부지역을 편히 살지 못하게 괴롭혔을 뿐 아니라, 유럽의 안전과 안정을 해치고 있다.

필자는 외부 관찰자로서 오직 베네수엘라 국내 분쟁이 평화롭게 해결되기를 기원한다. 새삶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자신들의 좌편향과 포퓰리즘 전통을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엄청난 위기를 겪고도 다시 태어나기 어렵다.

허칭롄(何清漣) 재미 중국경제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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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좌편향#포퓰리즘#차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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