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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겨울 개나리


        겨울 개나리

    잉태한 것들을 다 거두고 싸늘히 식은 대지 위에,
    폐경을 맞은 아낙네가 임신하듯
    헐벗은 개나리가 난감한 기적을 몇 점 매달았다

    찬 서리를 끼얹고 황망히 부푼 저 노랑 꽃잎
    놀라우리만치 태연하다만  
    제철 황국(黃菊) 앞에서야 그 무슨 감동이랴

    머잖아 칼바람을 무마할 향기가 없음을 깨닫는 날
    얼어붙은 제 잔해를 붙안고 까무러치면
    겨울은 또 겨울대로 마음이 편하랴 

 

오늘 새벽, 강변로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덤불 속에 점점이 피어 있는 작은 꽃송이를 보는 행운을 만났습니다. 무슨 꽃인가 싶어 다가갔다가 허연 상고대를 뒤집어쓴 채 옹그리고 있는 노란 꽃잎의 실체를 알아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개나리꽃이었습니다. 계절을 거스른 대가를 치르느라 웃음기 하나 없이 화석처럼 뻣뻣이 얼어 있는 몰골을 보노라니 방금 얻은 행운이 도로 날아갔습니다.

한겨울의 낯선 소동, 이게 무슨 변괴인가 싶기도 하고, 이 엇나간 생명활동을 어찌 해명해야 하나 싶기도 해서 한참을 바라봤지만, 의뭉스러운 도발에 혀를 내두르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토록 파괴적인 삶을 살도록 충동질했을까요?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분명 자연의 순환에는 엄정한 질서가 있겠으나, 현대인들은 그 질서가 주는 익숙함과 편안함을 오히려 답답해하며 일탈을 꿈꿉니다. 여름 수박을 이른 봄에 먹어야 직성이 풀리고, 사주팔자를 고친다며 태아 출산일을 인위적으로 앞당기고 늦춥니다. 그것뿐이겠습니까. 이제는 성(性) 정체성도, 종(種)의 경계도 예사로 허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쩌면 오늘 본 개나리도 인간의 이러한 파행을 어설피 흉내 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무엇이든 도가 지나치면 파국을 맞는 법. 생체 사이클이 흐트러진 이 개나리가 내년 봄을 응대할 수 있을지, 그리고 예상되는 파국 앞에서 우리는 또 떳떳할 수 있을지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뭅니다.

홍성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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