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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보리밭 향수
사진=송재권


        보리밭 향수   

    술 한 방울 없이도 생각이 났어,
    누런 들판 그 파도 소리

    황금빛 웃음이었다가
    속 붉은 울음이었다가

    술 괴듯 피어올라  
    향긋한 찻물인 듯 번지는,

    종잡을 수 없이 아련한
    고향의 소리

 

장마가 시작됐습니다. 이렇게 몇 날 며칠 비가 내리면 손주들 입 심심하다며 갓 수확한 밀을 볶아 주시던 외할머니가 생각납니다. 형편이 어려운 집에서는 보릿겨로 만든 보리개떡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습니다. 추적추적 장맛비가 내리자 60여 년 전 먹거리를 타고 생각은 또 보리밭, 밀밭으로 달려갑니다.

황금빛 보리밭에 바람이 불면 묘하게도 파도 소리가 납니다. 파도가 밀려와 몽돌에 부딪칠 때 나는 ‘쏴~’ 하는 소리와 흡사합니다. 기분 좋은 ‘고향의 소리’지요. 지금은 보리밭 보기가 힘들어서 그런지 어쩌다 그런 소리를 듣는 행운을 만나면 코끝이 다 찡해집니다.

6, 7월에 떠올릴 수 있는 고향의 소리는 또 어떤 게 있을까요? 시인 이호우가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고 노래했듯이 고향의 소리도 어디나 다 비슷할 테지요. 보리밭 상공에 높이 떠 지저귀는 종다리 소리, 무논 써레질할 때 새끼 부르는 암소 울음소리, 들마당에서 삼삼오오 둘러 서서 보리타작할 때 나는 도리깨질 소리 등등, 찾아보면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뭇 다릅니다. 경운기, 트랙터, 콤바인, 오토바이 소리가 두엄 냄새나는 옛 소리를 밀쳐내고 들판을 점령해버렸습니다. 그런 기계음은 지난날 고향의 소리보다 음이 한 옥타브 높습니다. 그 바람에, 바람에 흔들리는 보리밭 파도 소리 따위는 쉬 묻혀버립니다. 이래저래 코끝 찡할 일은 점점 더 줄어드는가 봅니다.

홍성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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