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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에서 온 편지 “‘남극’하면 ‘사람과 정(情)’ 입니다”남극세종과학기지 30년…월동연구대원이 보낸 편지
  • 홍순규
  • 승인 2018.03.07 07:40
남극세종기지 월동연구대가 1월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남극’하면 무엇을 가장 먼저 떠올리시나요? 

아무래도 남극을 대표하는 귀염둥이 펭귄이나 남극을 뒤덮고 있는 빙하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으실 듯합니다.

지구온난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곳으로 기억할 수도 있겠고, 저와 같은 월동대원들을 떠올리며 우리나라가 당당한 남극의 멤버임을 자랑스럽게 여기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2007년 남극에 첫발을 디딘 후 해마다 남극을 찾아 연구를 진행하고, 올해는 월동대장으로서 남극 세종기지에서 근무하고 있는 저에게, ‘남극’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람’과 ‘정(情)’입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사람에게 부대끼며 사는 우리 사회와 달리, 극한 자연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노력해야 하는 남극에서는 오히려 더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게 됩니다. 한국에서 출퇴근길에 자주 얼굴을 접하면서도 개인적인 교류가 없던 동료 연구원과, 이곳에서는 함께 야식으로 라면을 끓여 먹으며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또한 처음 만나는 외국인 과학자와도 어떤 연구에 관심이 있는지 마음을 열고 대화하고, 음식재료가 떨어지면 음식을 빌려주고, 신선한 야채나 과일이 보급되면 나눠 먹고, 고무보트 부품이 망가지면 이웃기지에서 부품을 빌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따뜻한 정이 오고가는 남극은 숨은 외교의 장이기도 합니다. 세종기지가 위치한 킹조지섬에는 총 8개 나라가 상주기지를 운영하고 있는데, 각국 기지에는 정부를 대표하는 고위 공무원이나 국회의원, 외교관 등이 수시로 방문하고, 이웃한 다른 나라 기지도 찾는 외교행사를 가집니다. 올해에도 벌써 중국과 콜롬비아에서 세종기지를 방문했고 최근 페루와도 만남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기상 악화로 아쉽게도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지난 2월 콜롬비아 해군의 세종기지 방문 모습.

우리나라도 올해 세종기지 30주년을 맞아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님을 비롯한 방문단이 칠레 프레이 기지를 방문해 그간의 지원에 감사를 표하며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남극에서 이뤄지는 외교 방문은 무전이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한 연락 등 아주 간단한 절차만을 거쳐 이뤄집니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외교적 방문을 위해 여러 단계를 거치지만, 남극에서는 이러한 절차들이 모두 생략된다는 것이 때로는 놀랍게 느껴집니다. 특히 평소 교류가 많지 않거나 외교적으로 불편한 관계에 있는 국가들이라도 자연스럽게 서로 협력하게 되는 장소가 이곳 남극입니다.

남극은 전 지구적 규모의 기후변화가 가장 빠르게 반영되기 때문에 미래의 지구 환경을 예측하기 위한 지표가 되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남극 연구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추세며, 우리나라도 그에 발맞춰 남극 연구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투입해 다양한 연구 활동을 펼쳐왔으며, 세종 과학기지에 이어 남극 빅토리아랜드에 장보고기지를 추가로 건설했습니다.

세종과학기지 건설 30주년을 맞은 올해에는 낡은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운 시설을 갖춘 연구동을 마련했고, 최신 장비들을 투입하여 인근 기지들 중 가장 앞선 시설을 갖추게 됐습니다. 미국, 칠레, 러시아 등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이 우리 세종기지에 관심을 가지고, 매년 연구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이제 훌륭한 연구시설과 탄탄하게 다져온 연구기반을 바탕으로 국제적인 연구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우리의 역량을 공유함으로써 남극 연구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남극은 혹한의 땅이자 미지의 세계로 알려져 있지만, 적어도 제가 경험한 남극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스한 정을 나눌 수 있는 곳이자, 국가 간 교류가 그 어느 곳보다도 활발히 이뤄지는 열린 외교의 장입니다. 또 무한한 가능성을 발굴해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고 국격을 높일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남극 연구를 선도하고 더 나아가 인류의 미래에 기여하는 대한민국을 꿈꾸며 저는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남극에서의 활동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홍순규 남극세종과학기지 제31차 월동연구대

남극세종과학기지 제31차 월동연구대

홍순규 드림

홍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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