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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의 최종 목적-중국편(4)제3장 폭력적인 학살, 하늘에 사무치는 악행(상)
  • <9평> 편집부
  • 승인 2018.01.01 20:25
사진=shutterstock

들어가는 말: 공산 악령의 끊임없는 학살

공산당을 말하면 사람들은 ‘살인’을 떠올린다. 공산당의 살인은 대부분 평화시기에 자신들이 차지한 영토에서 일어났다. 중국 공산당은 숙반(반혁명분자 숙청)을 통해서만 10만 명에 이르는 홍군을 죽였고, 옌안(延安) 정풍운동, 토지개혁에서부터 정권을 장악한 1949년 이후 벌인 일련의 숙청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중국인들을 살해했다.

전쟁 시기의 살인이나 역사상 폭군들의 살인은 모두 적을 죽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공산당은 반대로 살인하기 위해 적을 찾았으며 적이 없으면 적을 만들어내 죽였다.

공산당이 이처럼 살인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살인은 공산 악령이 인간 세상에 공포 환경을 조성해 최종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전략의 일부다. 그래서 공산당은 살인을 일종 학문과 예술로 삼아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해했다.

그렇다면 공산당은 어떻게 살인했는가? 칼로 죽이고, 밥그릇으로 죽이며, 여론으로 죽였다.

칼로 죽인다는 것은 이해하기 쉽다. 그것은 ‘총 끝에서 정권이 나온다’고 주장하는 중국 공산당의 특기이기 때문이다.

그럼 밥그릇으로는 어떻게 죽이는가? 밥그릇으로 사람들을 위협하면서 굴복하지 않으면 밥을 주지 않는 수법이다. 이 때문에 수많은 지식인들이 공산당에게 무릎을 꿇었다. 중국 지식인들은 자고로 기백이 있었고 이익에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는데, 이는 과거에는 국가의 녹을 받지 못해도 생계 수단을 찾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섯 말의 쌀 때문에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는 고사는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부패한 관리들이 주는 모욕을 참을 수 없어 호기만장하게 관직을 내려놓은 후 자유로운 전원생활을 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은 모든 사회 자원을 통제했기에 그들이 밥그릇을 주지 않으면 죽음의 길밖에 없었다.

여론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도 공산당의 주요 특징이다. 그들은 모든 여론 도구를 통제했기에 누구를 타도하고 싶으면 그를 타도할 수 있었고, 누구를 나쁜 사람으로 몰면 그는 곧 나쁜 사람이 됐으며, 누가 죄악적인 삶을 살았다고 하면 그는 곧 그런 사람이 됐다.

공산당은 무엇을 죽였는가? 공산당은 하늘과 싸우고 땅과 싸웠으며 사람과 싸웠다. 그래서 하늘을 죽이고 땅을 죽였으며 사람을 죽였다.

하늘을 죽였다는 것은 무신론으로 신과 부처에 대한 신앙을 말살해 무신론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것을 말한다. 땅을 죽였다는 것은 무신론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패기’로 강산을 개조해 자연을 짓밟고 환경을 파괴한 것을 가리킨다.

살인에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이 희생양이 됐다. 당성(黨性)을 강화하기 위해 악랄하지 않은 공산당원을 숙청했으며, 전통문화를 계승한 사회 엘리트들을 포함해 악령의 계획 실행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죽였다. 또 군중을 무차별 학살하거나 서로 투쟁하게 했는데 목적은 살기등등한 공포 환경을 조성하고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의 살인은 여러 가지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억지로 만들어낸 적을 없애려는 것이고, 다음은 살인자의 손에 피를 묻혀 공산당의 공범이 되게 함으로써 공산당의 편이 되고 공산당의 살인 도구로 전락시키려는 것이다. 이밖에 공포 환경을 조성해 모든 사람들을 두렵게 하려는 것이다. 이런 살인은 모두 문화 파괴와 도덕성 파괴를 위해 길을 터놓는 과정이었다.

특히 종교 신도와 지식인들에 대한 학살은 문화적 단층을 조성해 이후의 세대가 전통 신앙과 전통문화와 단절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이는 인류를 타락시켜 파멸에 이르게 하려는 공산 악령의 계획에 있어서 지극히 중요한 부분이지만 사람들은 중시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공산당은 언제까지 살인하는가?

공산당은 공개적으로 살인해 사람들이 공포에 짓눌려 일어서지 못하게 하려고 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피에 두려움이 녹아들고 공포의 유전자가 형성돼 대대로 전해지게 하려 했다.

이 정도가 되면 공산당은 공개 살인을 멈추고 음지에서 살인한다.

토지개혁, 진반(鎭反), 삼반(三反), 오반(五反), 문화대혁명 등 정치운동에서는 공개적으로 살인했고 심지어 일부러 대중에게 구경을 시켰다. 1989년 천안문사태는 반공개 살인으로 사후에는 시인하지 않았다. 1999년 파룬궁 박해가 시작된 후에는 비공개로 살인하면서 대규모 장기적출 만행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공산당의 역사는 바로 살인의 역사다. 살인으로 길을 터놓지 않으면 중국에 무신론을 도입하고 중화민족을 하늘을 무시하는 민족으로 만들며 중국 신전문화(神傳文化)를 파괴하기가 전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1. 소련에서의 예행연습

인류를 파괴하기 위해 공산 악령은 우선 중국 문화를 파괴해야 했다. 그래서 악령은 땅이 넓고 인구가 많은 중국의 이웃 국가 소련을 택했다. 소련은 중국과 가까워 경제적, 군사적, 지정학적으로 중국 공산당을 지원하기에 편리했다. 또한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아 정권 수립 초기 유럽 각국의 포위나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공격을 물리치고 공산주의를 지킬 수 있었다.

소련은 정권 수립 즉시 국력을 쏟아 부어 혁명을 수출했는데 주요 대상국은 중국이었다. 그래서 코민테른 극동부장 보이틴스키를 중국에 보내 지부를 설립하게 했으며, 바오뤄팅(鮑羅廷)을 통해 국민당에게 ‘러시아와 연합하고 공산당을 수용’하는 정책을 받아들이게 했다. 그리하여 중국 공산당은 국민당에 들러붙어 신속히 성장할 수 있었다.

소련은 정권 수립 직후부터 폭력적인 살인으로 공포를 조성하기 위해 비밀경찰기구인 체카를 설립하고 효과를 시험했다. 레닌은 “독재 정권은 폭력을 사용하면서도 법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며 체카에 재판 없이 살인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학술자료에 따르면, 1917년부터 1922년까지 체카에 의해 교수형을 당하거나 총살된 사람은 수백만에 이른다. 1921년에는 소련 공산당이 초래한 대기근으로 약 500만 명이 아사했다.

소련의 또 다른 중요한 실험은 폭력을 통해 무신론을 기반으로 하는 공산당의 사악한 설이 천하를 지배하게 하고 종교와 전통문화를 포함한 기타 이념을 모두 소멸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레닌은 1917년에 권력을 장악한 후 즉시 종교와 신앙을 고강도 타격하고 문화를 파괴했으며 도덕을 타락시켜 사람들이 신을 떠나게 했다. 이 또한 중국 문화를 파괴하기 위한 예행연습이었다.

레닌은 “과학적 사회주의의 이론과 실천에 있어서 무신론은 마르크스주의 일부이며 이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면서 무신론을 계속 확산시켰다. 이처럼 1917년에 수립된 볼셰비키 정권은 생겨난 첫 날부터 문화를 파괴하고 신에 대한 믿음을 파괴하는 것을 주요 혁명 목표로 삼았다.

레닌에 이어 권력을 장악한 스탈린은 1930년대에 피의 대숙청을 전개하며 공산당원뿐만 아니라 지식인과 종교계 인사들도 제거 대상에 포함시켰다.

스탈린은 ‘무신론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 계획이 완성되면 모든 교회가 폐쇄되고 모든 신부가 사라질 것이며, 소련은 ‘공산주의 무신론이 성장하는 옥토’가 되어 종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스탈린은 대숙청을 통해 4만 2천 명에 이르는 신부를 살해했으며, 98%에 이르는 동방정교 교회와 수도원을 폐쇄해 10월혁명 전 4만 437개에 달하던 동방정교 교회는 1939년에 이르러서는 100여 개밖에 남지 않았다. 또 이 기간 동안 수많은 엘리트와 지식인들이 실형을 선고받거나 강제수용소 ‘굴락’에 수용되거나 총살을 당했다.

스탈린 사망 후 소련이 해체될 때까지 소련 공산당은 지속적으로 각 분야의 엘리트를 박해하고 종교를 탄압했다. 유명한 러시아 소설가이자 역사가인 솔제니친은 6천만 명에 이르는 무고한 사람들이 스탈린에 의해 학살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중국은 인류 5천년 드라마가 펼치지는 무대이자 인간세상에서 최후의 정(正)과 사(邪)의 대전(大戰)이 펼쳐지는 곳이다. 소련 공산당은 예행연습의 역할이 끝나자 즉시 해체했고 한때 기세 드높았던 공산주의 진영도 함께 붕괴했다.

2. 무대에 오른 중국 공산당

2차 세계대전 후 파시즘은 사라졌지만 사악한 공산주의 진영이 생겨났다. 공산주의 진영은 전성기 때, 세계 인구와 영토의 1/3을 차지할 정도로 큰 세력을 형성했다. 학살 규모, 문화 파괴의 정도로 봤을 때 중국 공산당은 공산정권 중에서도 가장 사악했다. 중국 공산당은 중국 문화를 파괴하기 위해 매우 체계적이고 세밀하게 모든 것을 배치했다.

중국 전통문화는 창세주께서 종말에 중생을 구하기 위해 직접 다져주신 것이다. 공산 악령의 최우선 목표는 이런 중국 전통문화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공산 악령은 폭력으로 제거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인간의 육체일 뿐이며, 폭력과 기타 수단으로 문화를 파괴해야만 중국인들의 영혼을 파괴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세인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전통문화의 매개체인 엘리트들을 학살해 신과 인간 사이의 연결을 끊어놓음으로써 인간 파멸의 목적을 실현하려 했다.

문화 엘리트들로 구축된 전통문화의 토대를 파괴하기 위해 공산 악령은 그들을 학살하는 정치운동을 벌이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악행을 동원했다. 또한 이 과정 중에서 학살, 강제 세뇌, 기만과 억압 등 다양한 수단과 수법을 성숙시켜 최후의 정(正)과 사(邪)의 대결에서 승부수를 던지기 위해 충분한 준비를 했다.

동시에 공산 악령은 또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당문화(黨文化)’를 구축하고 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당문화’로 배양하고 훈련시켜 그들을 이용해 사람들을 계속 학살했다.

공산 악령은 세간의 경제 이익, 정치 세뇌 등 수단으로 세인들을 쉽게 좌우지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고, 끊임없는 정치운동, 탄압과 학살을 통해 이런 수단에 갈수록 능숙해졌다.

3. 엘리트 학살

농촌의 지주와 향신(鄕紳·지방 유력자), 도시의 상인, 지식인과 학자 등 문화 엘리트들은 5천년 중국 전통문화의 맥을 잇고 있었기에 그들을 제거하는 것은 전통문화를 파괴하는 중요한 한 걸음이었다. 그리하여 중국 공산당은 그들을 적으로 몰고 학살해 공포를 조성하는 동시에 그들의 재산을 수탈했다.

중국 공산당이 정권을 장악하기 전후에 ‘토지개혁’ 또는 ‘토호를 타도하여 땅과 밭을 나누자’고 했던 것은 농촌의 문화 계승자들을 학살하기 위해서였지 진심으로 농민들에게 땅을 주려 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관된 수법으로서 농민들에게 약간의 단맛을 보여줬을 뿐이며, 지주와 향신 학살과 문화 파괴의 목적에 도달한 즉시 ‘합작화’를 통해 농민들에게 나눠줬던 땅을 거둬들였다. 그 결과 대다수 농민들은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도시 주민들도 중국 공산당의 학살 대상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재산을 수탈하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사회의 부를 창조하고, 사회의 안정과 번영을 유지하며,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심지어 서양의 자유인권 사상을 갖고 있는 계층이기 때문이었다.

승려와 도인들은 불교와 도교 경전을 전파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중국 공산당은 문화 중에서도 신에 대한 믿음과 직결된 종교에 창끝을 겨누고 학살, 처벌, 세뇌, 강제 환속, 교리 왜곡 등을 자행하는 한편, 중국 공산당의 지시에 따르는 앞잡이들을 내세워 불교협회와 도교협회 등을 설립하고, 종교를 통제하고 파괴하는 도구로 이용했다.

출가한 승려든 세속의 엘리트든 이들이 없으면 문화에 단층이 생기게 된다. 그래서 중국 공산당은 종교 파괴와 동시에 지식인 대상으로 ‘사상개조운동’을 전개했다. 또 이른바 유물주의, 무신론과 진화론 교육을 실시해 학생들을 체계적으로 세뇌하고 전통문화를 증오하게 했다. ‘반우파투쟁’은 공산당에 굴복하지 않는 지식인들을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 사회 최하층으로 밀어 넣었으며, 그간 발언권을 갖고 사회 여론을 이끌었던 사대부들을 ‘밥그릇’과 ‘여론’으로 죽이는 동시에 멸시와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반우파투쟁’ 이후 가정, 학교, 사회에서는 독립적인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학생들은 신과 부처를 믿지 않게 됐을 뿐만 아니라 전통 문화와 예술을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중국 공산당은 여전히 만족하지 않았다. 나이 많은 윗세대들은 여전히 전통문화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고 전통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는 문물과 고적 등을 도처에서 볼 수 있어 전통적 가치관이 여전히 ​​다양한 예술 형태로 전파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중국 공산당은 정권을 장악한 후 세뇌된 학생들을 이용해, 또한 이들의 반항적인 사춘기를 이용해 ‘4대 구습 타파’ 운동을 일으켜 중국 문화를 물질과 정신 방면에서 전면적 재앙에 빠뜨렸다.

사람들을 학살함으로써 중국 공산당은 일거다득할 수 있었는데 그 목적은 매우 극악무도했다. 첫째,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모든 반란 시도를 저지했다. 둘째, 사회의 부를 수탈해 정권의 힘을 길렀다. 셋째, 대중을 빈곤과 혼란에 빠뜨려 그들이 먹고 사는 것 외 교육을 받아 문화를 계승하는 등의 기타 문제에 신경쓰지 못하게 했다. 넷째, 사람들을 폭력에 무감각하게 만들었다. 만약 사람들이 신경이 무뎌지지 않거나 살인을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러한 반인류 범죄에 저항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중국 문화에 단층을 만들어 그 문화를 통해 종말에 창세주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았다.

이상의 다섯 가지 목적을 중국 공산당은 현재 어느 정도로 달성​​했을까? 중국 공산당의 학살 방식과 사망자 수를 통해 분석해보자.

1) 농촌과 도시에서 벌어진 학살

중국 공산당은 1950년 3월 ‘반혁명분자를 엄격히 진압함에 관한 지시’를 내린데 이어, 이듬해 2월에는 ‘농촌에서 반혁명분자 처형은 일반적으로 인구의 0.1%를 초과해야 한다’고 명령했다. 당시 중국 인구는 6억 명이었는데 이런 지시에 따라 최소 6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중국 공산당은 1952년 말까지 240만 명에 이르는 반혁명분자를 학살했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적어도 당시 인구의 1%에 이르는 500만 명이 살해됐다.

이 하나의 수치에서도 중국 공산당의 학살이 문화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쳤는지 알 수 있다. 1949년 상하이 황두(黃渡) 지역 청년과 중년 중 81.4%가 문맹이었고, 빈곤한 농촌에서는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예를 들면, 선자빈(沈家浜)촌에는 1949년 이전에 24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이중 19가구가 3대 내리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마을에서 편지 쓸 연필 한 자루도 찾지 못해 4리 떨어진 진(鎭)에 가서 도움을 청해야 했다. 다시 말해, 농촌의 지주와 부농을 죽여 농촌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쓸 줄 아는 사람들을 깨끗이 제거했다.

진반(鎭反)과 토지개혁은 주로 지주와 향신에 대한 학살이었고, 이어서 벌어진 삼반오반(三反·五反) 운동은 전통 교육을 받았고 기업 경영과 사업을 할 줄 알거나 서방 자유사회를 잘 아는 도시 중산층 이상 주민들에 대한 학살이었다. 이렇게 도시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부를 수탈했다.

2) 종교를 말살해 전통 신앙과 단절

전통 신앙은 중국 문화의 근원이다. 문화는 신이 인간에게 전해 준 것이며 전통 신앙은 신이 직접 세워준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는 도교, 불교와 유교이다. 이런 종교는 사람들에게 부처가 무엇이고 도(道)가 무엇이며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줬다. 수천 년간 사람들은 신을 믿고 부처님을 경앙해 도덕성이 급속히 타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1950년 지방 정부에 회도문(會·道·門), 즉 각종 종교 조직과 단체를 없앨 것을 요구했다. 전국을 휩쓴 이 정치운동에서 각급 정부는 ‘믿을 수 있는 계급’을 동원해 회도문 관계자들을 적발하고 타격하게 했으며 기독교, 천주교, 도교, 불교 등 ‘미신 조직’을 해산시키는 데 직접 관여했다. 또한 교회나 절의 신도들에게 정부에 신고하게 하고 반성하게 했으며 기한 내에 신고하지 않으면 처벌을 가했다. 이듬해에는 회도문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사형이나 종신형을 선고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중국 공산당의 이 같은 폭력적인 탄압으로 중국의 각종 종교단체들은 와해되고 말았다. 진정한 불교, 도교 신자들은 탄압 받거나 잔인하게 살해됐고 나머지는 대부분 환속했다. 또 많은 사람들은 비밀 공산당원이었는데 가사와 도포를 입고 불경과 도장(道藏)을 왜곡시키고 경전 중에서 중국 공산당의 정치운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았다.

전통적인 종교가 파괴되고 농촌의 지주와 향신, 도시 사업가들이 살해되거나 수감되면서 나머지 사람들도 겁에 질려 불안에 떨었다.

3) 사상 개조로 무신론이 학교를 지배

지식인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사상 개조와 탄압 및 말살은 체계적으로 실시됐는데, 특히 대학 교수의 사상 개조는 정권 수립 초기부터 시작됐다. 중국 공산당은 중화민국 시기의 교육 전문가와 고급 지식인들을 신뢰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없으면 대학을 운영할 수 없었고 기술 인력도 육성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학과 개편을 통해 대학을 개조했다. 그들은 종교 신앙이 마르크스주의와 공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교회 대학을 없앴으며, 사립대학에서 철학, 사회학 등 학과를 없앴다. 이런 학과를 배운 학생들은 정치와 사회 문제를 사고하고 연구해 자유사회의 이념을 가질 수 있어 공산당 정권에 큰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또 소련의 교육 시스템을 그대로 옮겨오는 동시에 사상과 학문의 자유를 존중하는 중화민국 시기 교육 시스템을 폐기하고 대학 교수와 학생들에게 사상 개조를 실시해 그들을 중국 공산당의 지시에 따르고 기술만 있을 뿐 신앙이 없는 세대로 만들었다.

1950년에서 1953년까지 이런 학과 개편을 실시하면서 종합대학의 비중은 1949년의 24%에서 1952년의 11%로 떨어졌다. 역사 깊은 우수한 종합대학들은 이과대학으로 개조되어 기존의 가치와 지위를 잃었다. 이과대학의 급증은 소련을 완벽히 따라한 결과였다.

중화민국 시기에는 미국을 모델로 삼아 역사학, 철학, 사회학 등 인문학 영역에서 영향력과 실력을 갖춘 인재들이 적지 않게 배출됐다. 하지만 영국과 미국 자유주의 영향과 교육을 받은 인문계 지식인들은 마르크스주의 이념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그들에는 ‘소자산계급’이라는 딱지가 붙었고, 마르크스주의 체계에 속하지 않는 인문학과는 모두 폐지됐다. 특히 사회학은 그때부터 중국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학과 개편의 다른 한 가지 목적은 중화민국 시기의 대학과 각 학과 및 교수들을 분리시키고 연결 고리를 끊어놓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지식인들을 더욱 잘 통제하고 좌우지할 수 있게 되어 공산 독재정권을 수립하고 견고히 하는데 유리했기 때문이다.

마인(馬寅) 전 베이징대 총장은 1951년 10월 23일 인민일보에 ‘베이징대 교직원 정치학습운동’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는데 그는 이 글에서 “반드시 국가의 수요에 따라 학과 개편을 철저히 단행해야 한다... 이런 목적에 도달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발적인 사상 개조이다”라고 강조했다. 한 마디로 대학의 학과 개편은 사상 개조를 위한 것이었다.

대학의 학과 개편을 통해 교육 전문가와 고급 지식인들의 사상을 개조한 것은 중국 공산당이 정권 장악한 후 지식인들에게 순종을 강요한 첫 번째 행동이었다.

4) 지식인을 탄압하고 전 국민에게 거짓말 강요

1949년 당시 중국에는 약 200만 명의 지식인이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해외에서 유학했지만 여전히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전통사상을 일부 갖고 있었다. 공산당이 그들을 방치할리 만무했다. 그들의 사대부 계층 사상은 대중의 사상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었다.

1957년 중국 공산당은 ‘백화제방(百花齊放),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중국 지식인과 군중에게 당의 정풍(整風)을 도와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진정한 목적은 반당분자를 색출하려는 것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꼬투리를 잡지 않고 몽둥이를 들지 않을 것이며, 죄를 뒤집어씌우지 않고 추후에도 절대 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으며 ‘말하는 사람은 죄가 없다’고도 했는데 이런 거짓말들은 정말 효과를 봤다. 당시 유명한 지식인이었던 장보쥔(章伯鈞), 룽윈(龍雲), 뤄룽지(羅隆基), 우쭈광(吳祖光), 추안핑(儲安平) 등은 중국 공산당의 정곡을 찌르며 각종 폐단을 지적했다. 그러나 하룻밤 사이에 풍운이 돌변해 반우파투쟁이 시작됐고 그들은 반당, 반사회주의 우파분자가 되어 타도 대상이 됐다. 당시 총 55만 명이 우파분자로 낙인 찍혀 27만 명이 공직을 잃었으며, 23만 명이 중도·우파분자와 반당·반사회주의분자로 몰렸다. 그들은 일자리를 잃고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게 되자 굴욕을 참으며 조용히 살 수밖에 없었다.

반우파투쟁은 지식인들을 박해한 것 외에도 전체 중국인에게 공산당 통치 하에서 진실한 말을 하면 비참한 처지에 이르게 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역대 정치 운동에서 전 국민에게 반드시 비판에 동참하게 하여 침묵할 권리마저 박탈했다.

거짓말은 중국 공산당 문화에서 가장 대표적인 악습 중 하나다. 중국 공산당은 반복적인 정치운동을 통해 중국인들이 당문화로 문제를 생각하고 일처리를 하도록 훈련시켜, 거짓말을 습관처럼 하게 하고 가짜와 거짓말, 유언비어, 흑백전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추종하게 했다.

오늘날 중국에는 가짜 담배, 가짜 술, 가짜 약, 가짜 식품, 가짜 학위, 가짜 결혼(이혼) 등 곳곳에서 가짜가 넘치는데 사람들이 습관처럼 거짓말을 하는 데서부터 시작됐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진(眞)’이라는 이 도덕적 하한선을 포기하면 더 이상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게 된다.

반우파투쟁은 공산당이 중국의 전통 도덕과 문화를 철저히 파괴하기 위한 중요한 한 걸음이었다.

문화 엘리트들을 제거하면서 공산 악령은 대대로 계승되던 중국 전통문화의 맥을 끊어 놓아 다음 세대들은 가정, 학교, 사회와 이웃을 통해 배우던 전통문화를 접촉할 수 없어 사실상 문화가 없는 세대가 됐다.

삼반, 오반, 진반, 사상개조, 학과개편, 반우파투쟁 등 일련의 세밀한 배치는 문화를 파괴하고 각종 문화 엘리트들을 잔인하게 학살하는 운동이었다. 이를 통해 중국 농촌과 도시에서 중국 전통문화를 지탱하던 기존 엘리트 계층은 와해되고, 유물론과 무신론 그리고 당문화로 배양된 새 세대가 성숙되어 폭력적인 사상과 행위를 갖고 각자 배역에 따라 신전(神傳)문화를 파괴하는 다음 배치에 들어갔다.

5)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개조

1966년 5월 16일, ‘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통지’(5.16통지)를 통해 중국 공산당은 더 큰 규모의 전통문화 파괴 운동, 즉 문화대혁명을 발동했다. 그해 8월, 고위간부 자녀들이 주축이 되어 조직된 베이징 일부 중고교 홍위병들이 베이징에서 대규모 가택수색, 폭행과 학살을 감행하면서 수천 명이 사망한 ‘붉은 8월’ 참극이 빚어졌다.

중국 공산당의 문화혁명 기간 동안의 만행은 책 ‘9평공산당’에서 충분히 폭로했으므로 여기서는 이런 만행이 문화면에서 중국인들에게 어떤 해악을 끼쳤는지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베이징 다싱(大興)현에서 벌어진 학살을 예로 들겠다. 1966년 8월 27일부터 9월 1일 사이, 다싱현 13개 인민공사의 48개 생산대대에서 주민 총 325명이 살해됐는데, 80세 노인과 생후 38일된 아기까지 포함됐으며 22가구는 온 가족이 몰살됐다. 살인에는 몽둥이로 구타하거나 작두로 자르거나 끈으로 목을 조이는 등 방식이 사용됐고, 아기는 한쪽 다리를 밟고 다른 한쪽 다리를 찢어 살해했다.

이런 만행을 저지른 자들이 인간성을 잃은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측은지심, 즉 중국 문화 중의 ‘인(仁)’을 포기해야만 참고 넘어갈 수 있었다.

옛사람들은 ‘측은지심이 없다면 인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이런 비인간적인 행위를 극력 조장하면서 학살에 앞장선 사람들을 입당시키기도 했다. 광시(廣西)장족자치구만 하더라도 문화혁명 기간 쾌속 입당한 당원 중 9천여 명이 살인한 후 입당했으며, 약 2만여 명은 입당한 후 살인했다. 살인 사건에 연루된 당원도 1만 9천여 명에 달했다. 이 지역에서만 약 5만 명의 공산당원이 살인 사건에 관여된 것이다.

그 후 발생한 1989년 천안문사태, 1999년 시작된 파룬궁 박해에서도 살인을 대량으로 저지르고 수법이 잔인한 자들이 표창을 받고 상을 받았으며 심지어 승진했다. 뤄간(羅幹), 저우융캉(周永康)과 같은 잔인한 우두머리들은 장쩌민에게 발탁돼 정국급(正國級·국가지도자급) 고위직인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진해 살인과 도덕·문화 파괴의 ‘공로’를 인정받았다.

중국 공산당은 파룬궁을 박해하면서 전체 국가 자원을 투입했으며 국내외와 고금의 잔인한 고문 수단을 모두 동원했다. 구타뿐만 아니라 성폭행, 강추위에 얼리기, 무더위에 갈증에 시달리게 하기, 고강도 육체노동, 수면 박탈, 독사·셰퍼드·모기 등에게 물게 하기, 생체 장기적출로 폭리를 얻는 등이 포함된다.

이런 대량의 잔학행위는 반인류죄를 구성하기에 충분하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아직 인간이라면 마땅히 이 같은 반인류 범죄를 반대해야 한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폭력적인 살인과 전통 종교에 대한 박해에 참여하게 하거나 수동적으로 이런 범죄에 협력하게 해 옳고 그름과 선악의 기준을 모르는 비인간적인 인간으로 만들었다.

신께서는 인간을 구원하러 오시지만 아직 ‘인간’으로 부를 수 있는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이 사람들을 비인간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은 그들이 구원받을 기회를 없애는 것이며 사람들을 지옥에 밀어 넣고 있는 것이다.

공산 악령은 사람들에게 폭력과 살육이 정당하다고 가르치고 인간으로서 있어야 할 양심을 반드시 포기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적에게는 엄동처럼 냉혹해야 한다’는 당문화 이념을 심었다. 이와 관련된 사례는 너무나 많다. 중국 공산당의 악행 하나하나는 모두 전통문화를 파괴하고 도덕성을 파괴하는 당(黨)문화를 구축하는 과정이었다. 당문화의 영향으로 많은 중국인은 공산 악령의 앞잡이와 살인 도구가 됐다.

<9평>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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