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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2기 지도부에 발탁된 ‘정치권 오뚝이’ 왕후닝은 누구?
  • 이강민 기자
  • 승인 2017.11.08 13:32
19차 당대회에서 선출된 최고지도부 중 가장 이례적인 인사로 평가 받고 있는 왕후닝(가운데). (Feng Li/Getty Images)

시진핑(習近平) 집권 2기 최고 지도부 7명 가운데 왕후닝(王滬寧ㆍ62) 중앙정책실 주임이 발탁됐다. 그는 지방행정 경험이 없는 학자 출신으로 지난 15년간 중앙정책실 주임을 맡으며 역대 지도자들의 통치이념을 정립해왔다. 이 때문에 중국 공산당 최고의 브레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62세인 왕후닝은 산둥(山東)성 출신으로 상하이푸단대학(上海復旦大學) 국제정치학과를 졸업했다. 1995년 장쩌민에 의해 발탁돼 중앙직속 기구인 중앙정책연구실에 들어오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역대 통치자들의 브레인으로 활약하며 정치사상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 대표적으로 장쩌민의 ‘삼개대표론(三個代表論)’, 후진타오의 ‘과학적 발전관’,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이 있다. 또한 이번 19차 당대회를 통해 당장(黨章·당헌)에 새로 추가된 ‘신시대의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도 그의 작품이다.

굴곡이 심한 정치권에서 세 명의 지도자를 모두 거친 왕후닝은 일명 ‘부도옹(不倒翁ㆍ오뚝이)으로 불린다. 이에 대해 그의 옛 동료는 왕의 성격에 그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푸단대학 동료인 뉴욕대학 정치학 교수 샤밍은 그가 "매우 신중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또한 "왕후닝은 어떤 상황에서든 어느 한쪽을 편들지 않았다. 자신의 관점을 밝히기는 하지만 진짜 속마음은 드러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홍색(공산당 원로) 가문 출신이 아닌 그는 80년대 중국 국가안전부 부부장의 딸과 재혼하면서 학내 최연소 부교수로 임명됐다.

톈안먼 사건이 발생한 1989년에 그는 본격적으로 정계에 뛰어들었다. 당시 현직 상하이시 위원회 서기였던 장쩌민이 언론매체 세계경제도보(導報)에 대한 압력행사를 주장했고 왕은 여기에 지지를 표명했다. 중앙정책연구실에 들어온 이후 정치사상, 이론 정립에 두각을 나타냈다. 장쩌민 집권기에는 ‘주석 특별 보좌관’으로 장쩌민의 외국 방문을 수행했으며 후진타오 집권기에는 홋카이도 도야코에서 열린 G20 등 주요 회의에서 모습을 보였다. 시진핑이 집권하자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등 3대에 걸쳐 총애를 받아왔다.

10월 하순 19차 당대회에서 발표된 3시간 반에 달하는 시진핑의 업무보고 연설문 역시 그가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10여 년 간 중난하이 최고의 브레인으로 평가받는 그에 대해 "지도자의 생각을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라고 칭화대의 주쉬펑(朱旭峰) 교수는 지적했다.

톈안먼 사건 이후 공산주의에 대한 불신이 높아진 가운데 공산당 통치의 합법성은 꾸준히 의문시되어 왔다. 그리고 왕후닝은 ‘신속(迅速)’하게 새로운 이론을 지도자에게 제시했다. 그것은 신보수주의와 민족주의로, 애국주의와 전통으로의 회귀를 존중하고 서구 민주주의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시대의 움직임과 지도자의 뜻을 정확히 포착하는 것이 그의 강점이다.

시진핑 주석은 10월 18일 당대회의 업무보고 연설에서 건국 100주년을 맞는 금세기 중반(2049년)까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고 수준의 국제적 영향력’을 가진 강국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정치평론가 후핑(胡平)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왕 주임의 이 같은 부상은 여러 요소가 겹친 결과라고 분석했다. "왕 주임이 ‘시진핑 사상’ 구축에 크게 기여했으며 향후 시 사상을 충실하게 이행하기 위해서 그의 도움이 절실하기 때문이다"라며 계파색이 옅은 것도 이번에 승진된 결정적 요소 중 하나라고 밝혔다.

이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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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후닝#시진핑#19차_당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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