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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궁 수련하던 칭화대학 엘리트 학생, 고문으로 목숨 잃어
  • 방지유 기자
  • 승인 2017.10.09 09:31
중국 칭화대학 학생이었던 류즈메이(여)는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강제로 휴학 처리됐다. 이후 공안에 연행돼 20대에 7년이라는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출소 후 고문에 의한 후유증으로 정신이상자가 돼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밍후이왕)

2015년 2월, 산둥(山東)성 차이양쯔(菜陽子)시의 한 농촌의 우물에서 여성의 사체가 떠 있는 것을 주민이 발견했다. 통통한 체구에 하반신은 오랜 구타로 검게 변색된 여성은 겨울임에도 얇은 옷차림이었다. 그녀는 한때 농민 자녀 출신으로 베이징(北京) 칭화(清華)대학에 진학해 마을 사람들로부터 “까마귀 둥지에서 태어난 황금 봉황”이라는 칭찬을 받았던 류즈메이(柳志梅 35)였다.

뇌 기능 장애를 일으킨 류즈메이는 시신이 발견되기 며칠 전부터 행방불명 상태였다. 가족이 시신을 확인하면서 신원이 밝혀졌다. 그러나 공안 당국은 사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중국공산당 정권은 중국 전통 심신수련법인 파룬궁(法輪功; 法輪大法)을 탄압하면서 파룬궁 수련자 류즈메이를 7년간이나 불법적으로 수감했다. 그동안 간수에 의한 폭행이나 대량의 약물 주사, 고문, 다른 수감자를 동원한 집단 폭행 등을 강요했다.

중국공산당은 1999년 당시 인기 수련법으로 공산당 당원 수를 웃돌 정도 빠르게 확산되던 파룬궁에 대한 철저한 탄압을 통해 온 국민을 공포로 몰아갔고, 국가를 대표하는 엘리트 학생이었던 류 씨를 이토록 끔찍한 죽음에로 몰았다.

날개 부러진 ‘황금 봉황’

1997년 류즈메이는 가오카오(高考: 전국 대학 입시)에서 산둥성 최고의 성적으로 이듬해 칭화대학 화학 공정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칭화대학 학생이었던 류원위(劉文宇)는 류즈메이에 대해 “매우 순수한 여성이며, 머리가 좋고 얼굴도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동급생이던 리웬판(李艶芳)은 “매우 강하고 총명한 여학생이었다. 파룬궁 수련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국 과학 연구의 최고봉인 칭화대학에도 1998년 당시 파룬궁을 배우는 젊은이들이 많이 있었다. 우주와 생명의 신비, 물질과 정신의 관련성 등 학생들은 공부를 하면서 나타나는 모든 문제에 대한 답변을 수련을 통해 발견했다. 매일 아침, 캠퍼스 내에는 파룬궁 연공 동작을 하는 학생과 교직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졸업생들이 대기원에 밝히고 있다.

오로지 학업과 연구에 매진하던 젊은이들의 화려한 캠퍼스 삶은 중국 공산당의 무자비한 탄압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1999년 7월 당시 주석이던 장쩌민은 파룬궁을 공산당의 ‘적대 세력’으로 간주하고 상무위원 전원의 반대를 묵살하고 탄압을 지시했다. 대중매체와 인터넷을 검열 · 통제하고 파룬궁에 대한 모함과 비방을 계속해 국민의 마음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중국공산당 당국의 인터넷 정보 통제는 엄격하지만, 대륙의 박해 정보는 은밀하게 해외에 공개됐다. 파룬궁 공식 사이트 ‘밍후이왕(minghui.org)’에 따르면 파룬궁을 배우던 칭화대 학생 최소 32명이 체포, 투옥되고 고문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류즈메이는 그중 한 명으로 산둥 여자 교도소에 7년간 수감됐다.

밍후이왕에 따르면, 류즈메이는 수감 중에 정신 질환 환자에게 투여하는 3종류의 약물 주사를 맞았다. 그는 “클로자핀, 설피리드, 바루프로산 나트륨 등을 주사 맞은 후 심하게 목이 마르고 머리가 무겁고 눈이 몽롱하고 환각증세가 생겼다. 대소변이 나오지 않는다”라고 교도소 내 다른 수감자에게 말했다고 한다.

수감 중 이루 말하기 어려운 가혹 행위를 받아 몸이 망가지자 친척이나 지역의 파룬궁 수련자들이 그에게서 발생한 사실을 밍후이왕에 제보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수감 중에 구타를 당해 하반신이 검게 멍들었다.(밍후이왕)

2005년 겨울, 그는 유리 없는 창문으로 북풍이 몰아치는 초라한 오두막에 무표정으로 온돌에 걸터앉아 있었다. 소변에 젖은 이불, 자신의 변을 바른 벽, 방에 물씬 풍기는 악취도 모른 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고문과 강제 약물 주입으로 정신 이상 상태에 빠진 그는 가끔 굳은 표정으로 바깥쪽으로 뭔가를 밀어내는 자세를 취했다. 방에 사람이 들어서자 방구석에 가서 손으로 가슴을 보호했다. 친척 여성이 그의 옷을 갈아입힐 때 실수로 가슴을 건드렸다. 갑자기 기억난 듯 “그들은 나를 이렇게 때렸다. 너무 아팠다”며 친척의 손을 잡고 자신의 가슴을 격렬하게 구타하는 모습을 재연했다.

그는 엉덩이에서 발목까지 짙은 보라색으로 변해있었다. 정상적인 보폭으로 걷지도 못했고. 3~5일 간격으로 오는 잦은 생리로 옷은 빨갛게 물들었다.

7년이 지났지만 영원한 21세

그에게 나이를 묻자 진지하게 ‘21’살 이라고 대답했다. 그 나이에 그는 칭화대학의 생활과 학업에 열중하고 있을 때였다. 그녀의 시간과 기억은 당시 그대로 정지한 것 같았다.

류즈메이가 벽에 쓴 글 ‘칭화대학’(밍후이왕)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집 벽에 칭화대학이라는 네 글자를 썼다. 그에게 칭화대학은 영광과 학문의 기쁨과 함께 고통과 박해를 가져다준 곳이며, 그가 계속 돌아가고 싶었던 곳이기도 했다.

그는 수감 중 그를 찾아온 학교 관계자로부터 “수련을 그만두면 복학을 허가한다”는 말에 설득돼, '전향(수련을 포기)'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향하고 3년이 지나도 복학은커녕 출소도 허용되지 않았고, 오히려 수감 중인 다른 수련자를 전향하도록 설득하거나 폭행하도록 강요당했다.

배신, 사기, 폭력, 욕설 등 사람의 사상을 ‘개조’하려는 공산당의 포악한 방법에 그의 마음은 갈수록 상해갔다. 그는 매일 매일 다른 사람을 폭행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살아있다, 나는 살아있는…” 마을로 돌아온 후에도 그는 이 말을 중국어와 영어로 중얼거리거나 어딘가에 쓰기도 했다.

병세가 가벼울 때 그는 칭화대학에서 교류한 몇몇 동창들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그중에 칭화대학의 전 학생 황쿠이(黄奎)는 밍후이왕에서 그의 박해 정보를 보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 칭화대학은 특수 대학이다. 많은 중국 공산당 고위층은 칭화대학 출신이며, 칭화대 졸업생은 중국 사회에서 특별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엘리트 학생조차도 이렇게 잔인하게 박해한다면 중국공산당의 경찰, 사법 감옥은 일반 파룬궁 수련자에 대해 얼마나 잔인한 방법을 취하고 있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벽에 쓴 구불구불한 ‘칭화대학’ 글자를 보니 정말 가슴이 아프다. 이것은 칭화대학 100년 역사에서 최대의 치욕이며, 중국 민중에게 큰 슬픔을 준 중국공산당 사악 행위의 최대 노출이다.”

파룬궁 박해로부터 18년

‘파룬궁’ 박해로부터 18년간, 중국 공산당 정권에 의해 수많은 수련자가 연행되고 실종됐으며, 어디에 수감돼 있는지, 그들의 생사여부의 많은 정보를 당국에서는 공식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인권 단체 프리덤하우스가 2017년 2월 발표한 중국의 신앙 탄압에 관한 조사보고에 따르면, ‘중국 정신의 싸움’에서 불교와 도교 신자, 위구르 무슬림, 티베트 밀교도,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당국의 박해 수준 비교표는 파룬궁이 가장 높다.

해외로 건너간 파룬궁 수련자들은 중국공산당의 이러한 박해를 중지시키기 위해 중국의 정치 기관, 사법 기관, 공안 당국과 공산당 지부에 전화하거나 메일을 보내는 등 비인도적인 행위를 즉시 중단시키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

수련자들은 대륙에 해외 언론을 초청해 수련자를 소개하고 취재 활동을 돕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이안 존슨 기자는 현지의 파룬궁 박해를 주제로 기사를 쓰고, 2000년 저널리즘 최고의 영예인 ‘퓰리처상’을 받았다.

파룬궁 수련자들은 수련을 통해 닦은 도덕성을 기반으로 심신을 수련하는 동시에 국내외 사람들에게 중국공산당의 박해를 폭로하고 이를 중지시키기 위해 지금까지 18년간 지속적인 몸부림을 계속하고 있다.

 

방지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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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즈메이#칭화대학#파룬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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