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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曹操)가 보여준 관용(寬容)의 리더십
(Flickr / Robin Zebrowski)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중 하나인 조조(曹操). 이 소설에서 조조는 정치적 능력은 뛰어나지만 냉혹하고 계산적인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조를 난세의 간웅(奸雄)으로 기억하고 있다.

조조의 실제 모습에 대한 평가는 긍정과 부정이 엇갈리는 편이다. 조조를 지지하는 쪽의 주장에 따르면 조조는 문무를 겸비한 훌륭한 정치가이자 군인이었으며, 예술가였다. 신분보다는 능력 위주로 인재를 선발하였으며, 수하를 감동하게 하는 통솔력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다음 내용은 조조가 지닌 관용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에피소드이다.

후한 말 조조가 원소(袁紹)와 천하의 패권을 놓고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였다. 초반에 조조의 부대는 원소의 부대를 크게 격파하여 승기를 잡는 듯했지만, 곧 전세는 역전됐고 점점 밀려나 관도(官渡)에서 포위되고 말았다. 시일이 갈수록 전황은 점점 조조 측에 불리하게 돌아갔다. 군사들은 식량과 물자 부족으로 사기가 크게 떨어졌고, 조조도 마음이 초조해져 군대를 철수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원소의 측근이었던 허유가 조조 측으로 투항해온다. 그리고 허유가 제공한 정보에 따라 원소 부대의 식량창고가 있는 오소(烏巢)를 기습하는 데 성공, 마침내 전투는 조조의 승리로 끝난다. 이 전투를 관도대전[官渡之戰]이라고 부른다.

이때 원소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을 조사하던 중 원소와 내통하고 있던 조조 부하의 편지가 여러 통 발견됐다. 이 편지는 즉각 조조에게 보고됐다. 그런데 조조는 그 편지의 내용을 읽지도 않은 채 불태워 버리라고 지시했다. 배신자를 색출하여 처형해야 한다는 부하들의 주장에 대하여 조조는 이렇게 대답했다.

조조 (위키피디아)

“원소의 부대는 우리 부대의 몇 배에 달하는 대군이었다. 나조차도 승리를 확신할 수 없어 마음이 흔들렸다. 그런데 어찌 나에게 절대 충성하라고 요구할 수 있겠는가?”

그 말을 들은 주위 사람들은 조조의 관용에 감동했다고 한다.

 

강병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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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관용#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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