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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이 장쩌민 정치유산 제거해야 하는 이유“파룬궁 박해·반부패 문제 해결로 과거와 단절해야”
  • 샤샤오창(夏小強·대기원 시사평론가)
  • 승인 2017.08.11 12:36
시진핑은 반드시 장쩌민의 정치유산을 제거해야 한다.(Getty Images)

현재 중국은 정치, 경제, 사회 등 여러 분야에서 위기와 혼란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가장 큰 이유는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수십 년 동안 이어온 중국 공산당의 잔혹한 통치를 꼽을 수 있다. 공산당은 중국을 말세로 이끌며 중국인에 대한 전방위적인 파괴를 감행해왔다. 또 다른 하나는 지난 20여 년 동안 중국 사회를 지배해온 장쩌민(江澤民)파이다. 특히 그들이 시진핑(習近平)에게 남긴 정치적 유산은 사회 전면에 불거지며 큰 문제가 되어 왔다.

그렇다면 장쩌민이 시진핑에게 남긴 주요한 정치적 유산은 무엇일까? 이 유산은 지금까지 두 가지 현상으로 나타났다.
 

관료사회의 전면적인 부패와 타락

오늘날 중국 관료사회의 부패 정도는 거의 부패하지 않은 관료가 없을 만큼 악화됐다. 이러한 대규모, 제도적 부정부패는 장쩌민이 집권한 뒤부터 만연해왔다. 정치권력과 자본의 결합은 장쩌민이 추진한 경제발전 모델의 핵심 중 하나였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방임하고 그 대가로 그들의 정치적 지지를 얻어왔다.

그 아들 장몐헝(江綿恆)은 '중국제일탐관(中國第一貪)’으로 불릴 뿐만 아니라 장파의 주요 구성원 저우융캉(周永康), 쩡칭훙(曾慶紅), 류윈산(劉雲山) 등의 가족은 중국 국가의 재산과 비길 만큼 부유하다(富可敵國). 이러한 장파의 정책 하에 공산당의 수천만 관료들은 극도로 부패해 제도적, 체계적, 공개적 부패를 형성해왔다. 또한 당·정·군(黨政軍) 각 계통에서 양성된 부패 관료들이 장파를 구성했으며 정치계를 전면부패의 암흑 시기로 몰고 갔다.

장쩌민의 악랄함은 파룬궁 박해 사건에서 잘 드러난다. 그들은 파룬궁 박해를 지속하기 위해서 줄곧 관리를 뽑을 때 ‘죄가 있어야 자리가 있다(有罪才有位)’라는 채용 표준을 사용해왔다. 관리들 중 파룬궁 박해를 주도해 중죄를 범한 자, 즉 박해에 직접적으로 가담한 자만을 장쩌민은 안심하고 채용했다. 이들은 장쩌민파와 ‘운명공동체’가 되어 한배를 탈 수 있었고 그 결과 모든 장파의 구성원들이 파룬궁 박해에 직접 가담했다.
 

파룬궁 박해는 세계 최대의 인권 탄압

장쩌민이 시진핑에 남긴 가장 큰 정치적 유산은 바로 파룬궁 박해다. 18년 동안 지속된 쩐(眞), 싼(善), 런(忍) 신념에 대한 박해는 21세기 들어 발생한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인권 탄압이었다. 이로 인해 중국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더욱 심각한 것은 파룬궁 박해로 중국사회의 경제, 도덕 등 사회 전반의 위기가 가속화됐다.

사회 도덕적 측면에서 장쩌민은 중화민족의 도덕을 파괴해왔다. 장파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파룬궁 수련자들에게 신앙 포기를 강요했고 ‘분신자살’을 조작해 거짓으로 사람들의 원한을 선동했다. 또 국가 정책을 통해 전국 국민들을 파룬궁 박해에 참여하게 했다. 이는 중국 사회의 도덕적 추락을 가속화시켰고 사람들의 도덕 감정은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지고 말았다.

‘경제를 파탄시키고 명예를 실추시키며 육체를 소멸시킨다’ ‘때려죽인 것은 자살로 위장한다’와 같은 파룬궁 박해기구의 행동강령은 중국 법제 체제를 완전히 파괴했다.
 

반부패와 정변은 계속되고 있다

2012년에 집권한 시진핑은 장쩌민이 남긴 두 가지의 정치적 유산을 짊어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 두 가지 유산 혹은 화근은 현재까지 중국 사회의 위기를 가속화시켰다.

시진핑은 최근 5년 동안 정상적인 집권을 위해 호랑이(부패관료) 사냥을 통해 장파를 척결하기 시작했다. 장쩌민파 역시 이에 불복, 반격을 감행해왔다. 애초 시진핑의 대체자로 여겨졌던 보시라이(薄熙來)가 의외로 낙마하자 장파는 수년간 암살·폭동·난국·금융정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시진핑과 초한전(超限戰)을 벌여왔다. 지난 5년간 장파 소속 고위급 간부 100여 명이 숙청당했지만 장파는 정변을 주도하며 끊임없이 대항했다. 시진핑과 왕치산(王岐山)은 “반부패는 계속된다”고 말했지만 이에 저항하는 정변도 “계속되고 있다.”
 

시진핑은 장쩌민 유산을 제거해야

시진핑은 왜 장쩌민의 정치적 유산을 떨쳐내야 하는 것일까?

최근 중국 공산당 19차 당대회를 앞두고 충칭(重慶)시 당서기 쑨정차이(孫政才)가 갑자기 낙마했다. 이로써 그는 18차 당대회 이후 낙마한 현역 정치국 위원 중 첫 번째 인사가 됐다. 이는 반부패 운동의 대상이 지위고하를 막론, 승격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자 신호탄이었다.

하지만 시진핑의 권력이 한층 확고해지는 상황에서조차 장파는 끊임없이 대항하고 있다. 근본 원인은 시진핑과 왕치산의 반부패 운동이 장파의 이익뿐만 아니라 당 내부의 집단 이익을 건드렸다는 데에 있다. 부패 관료들 역시 시진핑에 대항하거나 태업으로 반부패 운동을 방해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는 장파와 당의 부패 집단이 왕치산을 제거하려는 결정적인 이유였다. 지난 몇 달 동안 장파의 특무(스파이)가 해외 매체를 이용해 왕치산을 비난한 것에서도, 시진핑의 반부패 운동 선봉장 왕치산을 실각시키려는 의도를 읽어낼 수 있다.

이와 함께 장파 세력은 계속해서 파룬궁을 박해하고 있으며 이 같은 방식으로 시 당국의 발을 묶어 놓았다. 중국 공산당은 법외 시스템인 ‘610 판공실(610辦公室)’을 통해 국가 자원을 파룬궁 박해에 소모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시진핑이 말한 ‘의법치국(依法治國 :법으로 나라를 다스린다)’은 아무런 반향도 일으키지 못했다. 또한 파룬궁 박해를 통해 공산당은 폭력을 터득했고 사회 안정을 빌미로 중국 사회 전반에 이 같은 폭력을 계속해 왔다. 현재 해외와 민중은 중국에 대한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상태이며 시 당국에 대한 실망감 역시 높아가고 있다.
 

장쩌민의 두 가지 정치적 유산

장쩌민의 두 가지 정치적 유산, 파룬궁 박해 문제와 관료 반부패 문제의 해결을 위한 첫걸음은 장쩌민과 관련된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다. 문제를 일으킨 자들에 대해 심판을 하지 않는다면 장파가 남긴 화근은 중국 전체에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장쩌민을 둘러싼 탐관 집단은 계속적으로 반부패 운동에 대항할 것이며 정변을 통해 권리를 되찾기 위한 기회를 엿볼 것이다.

시진핑과 왕치산의 반부패 운동은 그 수위가 높아지면서 부패 관료들이 끊임없이 낙마하고 있다. 하지만 장쩌민과 중국 공산당이 만든 부패체제의 완전한 청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최근 중국 CCTV가 방송한 정론 프로그램 중 하나에서 장쩌민과 후진타오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를 건너 뛴 채 시진핑을 덩샤오핑(鄧小平)과 연결 지었다. 시진핑과 후진타오 간 정치적 동맹 관계를 고려한 조치로 풀이되는데, 이것이야말로 장쩌민의 정치적 유산을 청산하겠다는 신호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부족한 점은 여전히 많다. 반부패 운동은 영원히 계속될 수 없다. 왜냐하면 시진핑이 짊어진 장쩌민의 유산은 이미 불붙은 시한폭탄과 같기 때문이다.

 

샤샤오창(夏小強·대기원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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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장쩌민#파룬궁#정치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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