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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장쩌민파 지방세력의 몰락<동북편>
  • 샤샤오창(夏小強·대기원 시사평론가)
  • 승인 2017.08.08 14:38
중앙기율위가 랴오닝(遼寧)성에 대해 집중적인 ‘특정감사’를 실시한 후, 왕민(王瑉) 전(前) 랴오닝성위원회 서기, 왕양(王陽) 랴오닝성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주임 등 2명의 성부급(省部級·장차관급) 고위 관료가 낙마했다. (인터넷이미지)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은 헤이룽장(黑龍江)·지린(吉林)·랴오닝(遙寧) 등 3성(省)으로 이루어진 지역으로, 이 같은 개념은 근대에 형성되었다. 중국의 지정학적 분류에 따르면 이 지역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다. 따라서 장쩌민(江澤民)은 집권 후 자신의 세력을 통해 장기간 둥베이 지방을 장악하는 데 주력해왔다. 따라서 장파의 주요 인물들이 이 지방의 요직을 거쳐 간 바 있었다. 지린성은 장더장(張德江)을 필두로 ‘지린방(吉林幫)’을, 랴오닝 성은 리장춘(李長春), 보시라이(薄熙來)를 우두머리로 하는 랴오닝방(遼寧幫)을 형성했다. 이들 집단은 장쩌민을 한결같이 따랐고,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반부패 호랑이 사냥 과정에서 줄곧 저항, 난국을 조성해왔다.
 

‘랴오닝방’ 제거

장파가 장악한 전국 여러 성(省)·시(市) 중 랴오닝성은 세력의 결집지로서 대표성을 띠고 있다. 제18차 당대회 이후 랴오닝성은 시진핑 당국의 반부패 운동 과정에서 주요 청산 대상으로 떠올랐다. 2017년까지 랴오닝방에 속한 여러 인사들이 실각했다. 왕민 전 랴오닝성 서기, 왕양(王陽) 전 랴오닝성 인민대표대회 상무위 부주임, 정위쭤(鄭玉焯) 랴오닝성 인민대표대회 부주임, 쑤훙장(蘇宏章) 전 랴오닝(遼寧)성 정법위원회 서기, 천톄신(陳鐵新) 전 정법위원회 부주석, 구춘리(穀春立) 전 안산(鞍山)시 서기, 리원시(李文喜) 전 랴오닝 정협 부주석, 장둥양(張東陽) 전 선양(瀋陽) 검찰원장, 양야저우(楊亞洲) 전 선양시 부시장 등이 이에 해당됐다.

특히 제18차 당대회 이후 랴오닝 관료계에서 시진핑의 반부패에 대항한 장파의 대표적 인물이 바로 랴오닝 당서기 왕민이었다.

왕민은 ‘랴오닝방’, ‘장쑤(江蘇)방’의 주요 일원 중 한 명으로, 안후이(安徽)성에서 태어나 장쑤에서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들어섰다. 장쑤성 부성장, 쑤저우(蘇州)시 서기를 역임했고, 2004년 10월 지린 성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년 뒤에는 성위원회 서기로 승진했으며 2009년 11월에는 랴오닝성 서기로 발령을 받았다. 2015년 5월에는 중국 공산당 인민대표대회로 자리를 옮겼고 2016년 3월 4일 실각했다.

이미 낙마한 왕민과 보시라이는 긴밀한 관계였는데, 이와 관련해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왕민은 ‘정치적 범죄’가 주 죄목이고, 부정부패는 부차적 죄목이다!>라는 제목으로 폭로한 바 있다.

이 보도에 따르면 보시라이가 낙마하기 전 왕민은 랴오닝성의 서기직으로 취임한 즉시 다롄(大連)으로 달려가 보시라이의 ‘정치적 업적’을 칭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시라이의 부인 보구카이라이(薄穀開來)가 선양에 왔을 때, 그가 직접 연회에 초청한 바도 있었다. 또 왕리쥔(王立軍)이 충칭(重慶)시 공안국장직을 역임할 당시 고향인 랴오닝에 자주 방문했는데, 이때마다 왕민이 왕리쥔을 직접 찾아간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이 직접 발탁한 성 정법위 서기 쑤훙장을 동행한 정황도 드러났다.

2013년 1월, 시 당국이 노동교양(勞動敎養)제도를 폐지하려 했을 때 장파의 방해에 부딪힌 적이 있었다. 그해 4월 7일 친시진핑 언론 매체 ‘렌즈시각’(Lens視覺)은 <’마싼자’를 벗어나다(走出“馬三家”)>라는 제목의 장문의 기사를 게재해, 랴오닝 마싼자 여성 노동교양소의 고문 실상을 폭로, 사회에 강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보도에 의하면 압형, 매달기, 호랑이 의자에 앉기, ‘사인상(死人床)’에 묶기, 작은 감방에 가두기, 자궁 확장기를 사용한 강제 급식, 질 내에 고춧가루 넣기, 전기로 유방 및 생식기 자극, 여성을 남성 감방에 수감하는 등 여성 수감자가 이 기간 동안 겪은 각종 혹형(酷刑)을 폭로했다. 또한 파룬궁(法輪功) 수련자들이 계속해서 증언해온 노동교양소에서 벌어지는 혹형과 박해 실태를 증명하기도 했다.

보름만에 왕민이 장악하고 있는 랴오닝성 당국은 공식 조사팀을 꾸려 마싼자 노동교양 인원이 혹형고문을 받았다는 보도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발표했다. 이 같은 행동은 랴오닝성이 공개적으로 시 당국의 노동교양제도 폐지에 대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시 당국은 장파와의 격렬한 힘겨루기 끝에 같은 해 11월 노동교양제도를 공식적으로 폐지했다.

2017년 4월 5일, 왕즈융(王志勇) 랴오닝성 톄링(鐵嶺)시 상무위원이자 선전부장과 궈즈신(郭治鑫) 부시장이 ‘심각한 기율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18차 당대회부터 현재까지 톄링시에서 여러 시(市)급 관료가 낙마해왔다. 앞서 언급한 두 관료 외에, 장저우(薑周)와 린창(林強) 전임 시장, 우예쑹(吳野松) 전(前) 서기, 자오훙웨이(趙宏偉) 전(前) 톄링시 부검찰장 등이 있다. 또 이에 앞서 2017년 2월 28일 리원커(李文科) 랴오닝성 인민대표대회 상무위 부주임이 조사를 받았다. 리원커는 2004년에서 2012년까지 8년간 톄링시 서기를 역임했다. 이들은 모두 천정거오(陳政高) 전(前) 랴오닝 성장과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천정가오는 7년간 랴오닝 성장을 역임했으며, 2014년 4월 중국 국무원 주택도시농촌건설부(주건부) 부장(장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천정가오는 ‘랴오닝방’의 주요 인물로 꼽히며 랴오닝 관료계에서 43년을 재직해왔다. 또 그는 보시라이의 옛 부하이며 22년간 함께 일했다. 보시라이가 다롄 시장, 시 당서기에 재임하던 시기, 천정가오가 다롄시 시강(西崗)구 부서기, 구장, 부시장을 지낸 바 있었다. 보시라이가 랴오닝 성장으로 재임하는 동안에는 그가 부성장을 맡아서, 랴오닝 정계의 많은 이들은 천정가오가 보시라이의 확고부동한 측근임을 잘 알고 있었다.

천정가오의 재임 기간 랴오닝성에서는 부정선거와 데이터 조작 사건이 발생했고, 이는 최소한 지도력 부재라는 면에서 지도자에게 책임이 있었다. 시 당국이 강조한 ‘1인자책임제(一把手責任制)’ 원칙에 따르면 천정가오는 지도자로서의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리시(李希) 현 랴오닝성 서기는 시진핑 주석의 신임을 받아왔다. 2008년 당시 옌안(延安)시 당서기에 재임 중이던 리시는 옌안시 옌촨(延川)현 원안이(文安驛)진(鎮) 량자허(梁家河)촌으로 시진핑의 회신을 전달하기도 했다. 2014년 4월 28일, 당시 상하이(上海)시 부서기였던 리시는 랴오닝으로 돌연 발령을 받으면서 랴오닝성 부서기직을 맡았다. 5월 5일, 리시는 랴오닝 부성장, 랴오닝 대리성장에 임명됐다. 10월 17일, 리시가 랴오닝 성장에 당선되면서 정부급 관직에 올랐고 랴오닝을 인수받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2015년 5월 왕민을 대체해 랴오닝성 서기직에 올랐으며, 그 후 리시는 시 당국의 반부패 운동에 호흡을 맞추어 4명의 ‘호랑이’를 낙마시켰다.

시 주석이 랴오닝성 관료계를 재편성하고 장파의 ‘랴오닝방’을 전면 청산하면서, 장파는 둥베이 3성의 요충지인 랴오닝성에 대해 사실상 통제권을 잃어버렸다.
 

‘지린방’ 제거

지린성은 일명 장더장의 텃밭으로 여겨져 왔다. 그의 정치 인생은 지린에서 시작돼, 지린성 부서기 겸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 서기, 지린성 당서기 등을 거쳤다. 장파의 일원인 장더장, 왕윈쿤(王雲坤), 왕민, 왕루린(王儒林) 등이 차례로 지린 지역의 고위 관리를 지내면서 장더장을 필두로 한 ‘지린방’이 형성됐다. 장쩌민 역시 과거 창춘제일자동차회사(長春一汽)에서 재임하는 동안 ‘지린방’ 관료를 대거 발탁한 바 있었다.

지린성 위원회에서 ‘당과 국가 지도자’로 거론된 인물들을 정리해 보면, 쑤룽 전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 자오난치(趙南起) 전 정협 부주석, 후이량위(回良玉) 전 부총리, 왕강(王剛) 전 정협 부주석, 두칭린(杜青林) 현(現) 정협 부주석, 지빙쉬안(吉炳軒) 현(現) 전인대 상무위 부위원장, 천샤오광(陳曉光) 현(現) 정협 부주석, 왕중위(王忠禹) 전(前) 국무위원 겸 비서장 등이 있어 왔다.

그리고 시진핑 정권이 18차 당대회를 통해 출범한 뒤 ‘지린방’의 부정부패가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청산 작업이 지속되면서 주요 인사들이 하나둘 낙마했다.

톈쉐런(田學仁) 전 지린성 상무부성장은 2011년 11월 쌍규(雙規·지정된 시간과 장소에서 기율위의 조사를 받는 처벌) 처분을 받고 2013년 11월 1일 뇌물수수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2014년 8월 31일, 왕루린 지린성 서기의 직무가 시진핑 진영의 인물인 바인차오루(巴音朝魯)로 대체됐다. 이틀 뒤 지린성의 청(廳)급 관료 6명이 조사를 받고 기소됐다. 여기에는 리샤오핑(李小平) 전 지린성 당교(黨校) 상무부학교장이자 성 행정학원장, 안더우(安德武) 전 중국 이치자동차 부총경리, 쑨윈즈(孫雲志) 전 지린성 국가세무국장, 마쥔(馬軍) 전 지린성 창춘시 교육국장, 중다이허(鐘代河) 바이산(白山)시 푸쑹(撫松) 현장, 웨더룽(嶽德榮) 전 지린성 농업과학원 서기겸 학원장이 포함됐다.

2014년 12월 란쥔(藍軍) 전 지린성 쑹위안(松原)시 서기가 낙마했다.

2015년 6월 15일 쑨훙즈(孫鴻志) 전 국가공상총국 부국장이 당적을 박탈당하고 사법부로 이송됐다. 7월 8일 주춘(朱淳) 전 지린시 상무위원이자 선전부장이 조사를 받았다. 8월 8일 지린성정부 전 부비서장 왕수썬(王樹森)이 낙마했다.

2015년 8월 1일, 지린성 구춘리 부성장이 낙마했다. 구춘리는 18차 당대회 후 지린성에서 낙마한 첫 성부급 관리로, 지린성 ‘첫 호랑이’로 불렸다.

전국 정협 쑤룽 부주석은 2016년 7월 14일 기소됐다. 쑤룽은 2014년 6월 14일 낙마했고, 이는 6월 10일 장파가 홍콩 백서를 공개한 지 4일 만이다. 그의 ‘낙마’는 장더장이 홍콩에서 벌인 행각에 대한 당국의 일격이자 ‘지린방’에 대한 공격으로 풀이된다.

2016년 9월 28일 지린 성위원회 상무위이자 지린 시위원회 서기직을 역임했으며, 제1 자동차 그룹 사장 겸 서기인 쉬젠이(徐建一)가 조사를 받았다.

‘지린방’은 장더장의 지휘 하에 장쩌민의 파룬궁 박해에 긴밀히 협조했으며, 지린성을 전국에서 가장 박해가 심한 지역으로 만드는 해악을 남겼다.
 

헤이룽장(黑龍江) 관료계 대거 청산

시 당국은 제18차 당대회 이후 반부패 운동의 일환으로 헤이룽장 관료계에 공개적으로 제재를 가한 적이 있었다. 중국 언론이 2016년 1월 보도한 바에 따르면 헤이룽장 순찰조가 파견됐을 당시, 조사 대상이던 관료들이 순찰인원을 포섭하고 했으며 각종 술수를 부린 정황이 드러났다.

시진핑 취임 5년간, 장파의 본거지인 헤이룽장 관료계에는 대대적인 인사교체가 단행돼왔다. 헤이룽장 성위원회 상무위 한쉐젠(韓學鍵), 헤이룽장 성 인민대표대회 부주임이자 성 농업개간총국 상무위 서기 쑤이펑푸(隋鳳富), 성 인민대표대회 부주임 까이루인(蓋如垠), 헤이룽장 성 군사구 사령원 커우톄(寇鐵), 헤이룽장 성 군사구 부사령 장다이신(張代新) 등 여러 고위급 관료가 차례로 낙마했고, 푸샤오광(付曉光) 부성장은 정청(正廳)급으로 강등됐다.

2014년 말, 헤이룽장 성 공안청 구위안쉬(穀源旭) 청장이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다. 구위안쉬는 링지화(令計劃)의 처제였다.

2017년 1월 7일 쑨융(孫永)이 부성장 직무를 박탈당했다. 쑨융은 전(前) 정법위 저우융캉(周永康) 서기의 측근으로 저우융캉 덕분에 ‘위원회의 중임’을 맡았다고 알려진 인물이었다.

2017년 4월 13일, 헤이룽장 성 인민대표대회 전임 부주임 까이루인이 징역 14년을 선고받았다.

장파의 주요 인물이었던 류윈산(劉雲山)의 수하인 지빙쉬안은 시진핑이 정권을 잡은 두 번째 해, 2013년 3월 61세로 중국 공산당 전국 인민대회에서 좌천됐다. 류윈산은 장쩌민이 발굴한 극우파로 중앙 홍보부장에 재임할 당시, 상무위 부부장이던 지빙쉬안이 류윈산의 오른팔 노릇을 했다. 지빙쉬안은 중앙 사무반 링지화 주임과도 가까운 관계로 알려졌다. 2008년 헤이룽장 성위원회 서기로 발령받은 뒤 지빙쉬안은 링지화의 처제이자 당시 중앙방송국에 근무하던 구위안쉬를 헤이룽장으로 데려와 공안청 부청장 자리에 앉혔다.

지빙쉬안의 뒤를 이은 인물은 당시 성장이었던 왕셴쿠이(王憲魁)로, 역시 장 씨 일파의 일원이다. 그는 장파의 2인자인 쩡칭훙 심복, 쑤룽의 오랜 수족이었다. 쑤룽이 간쑤(甘肅), 장시(江西) 성위원회 서기직에 있을 때, 지빙쉬안은 성 위원회 부서기였다.

왕셴쿠이는 2010년 8월 중국 공산당 헤이룽장 대리성장, 성장으로 승진했다. 이는 쑤룽이 쩡칭훙에게 그를 추천한 탓으로 쑤룽이 2014년 낙마하자 가려졌던 부패의 진실이 드러났다. 부패 자금은 쑤룽이 장시 성위원회 서기로 재직할 당시에 집중되어 있었다. 왕셴쿠이가 쑤룽의 수하로 있던 때였다.

왕셴쿠이가 2013년 3월 헤이룽장 성위원회 서기로 승진한 뒤 시 당국은 헤이룽장의 장파 거점을 중심으로 대규모 인사 조정에 들어갔다. 성위원회 상무위 13명이 교체됐다. 루하오(陸昊)가 대리성장 및 성장으로, 허베이(河北)성 양루이(楊汭) 부성장을 성위원회 조직부장으로 발령하는 등, 상무위 고위급 대부분이 바뀌었다.

2017년 4월 1일 왕셴쿠이가 직위 해제됐다. 그의 직무는 우주 항공분야 출신인 허베이(河北) 성장 장칭웨이(張慶偉)가 이어받았다. 현재 헤이룽장은 시진핑 진영의 인물들이 거의 장악하고 있다.

헤이룽장은 장쩌민파가 파룬궁 수련자를 가장 잔인하게 박해한 지역이다. 밍후이왕(明慧網)의 통계에 따르면, 장쩌민이 1999년 7월 파룬궁 박해를 지시한 이래 헤이룽장에서만 532명의 파룬궁 수련자가 박해로 사망, 전국 1위를 기록했다.

지빙쉬안, 왕셴쿠이, 쑨융보(孫永波), 쑤이펑푸, 까이루인, 한쉐젠 등이 박해의 원흉으로 지목되며 파룬궁 수련자를 잔인하게 핍박하여 ‘파룬궁 수련자 박해 추적 국제 조직’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샤샤오창(夏小強·대기원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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