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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장쩌민파 지방세력의 몰락<충칭편>
  • 샤샤오창(夏小強·대기원 시사평론가)
  • 승인 2017.07.03 11:01
2016년 말, 황치판(黃奇帆)이 충칭(重慶)시 시장직에서 해임됐다. 충칭시 정법계통과 당정(黨政) 분야의 여러 부처 역시 대규모 인사 교체가 이뤄지면서 장쩌민파는 대거 청산됐다.(AFP/Getty Images)

시진핑 집권 이전, 후진타오(胡錦濤)-원자바오(溫家寶) 정부는 10년 간 어떤 정책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정령불출 중난하이(政令不出中南海:정책이 지도부가 있는 중난하이 밖으로 전달되지 않는 현상)'의 주 원인은 장쩌민파가 각 성(省)‧시(市)의 요직을 독점함으로써 상당수의 도시가 장쩌민파의 ‘독립왕국’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 주석은 오는 가을 19차 당대회를 앞두고 전국 31개 성(省)‧시(市) 주요 보직에 모두 측근들을 배치하는 등 인사 개혁을 단행했다. 전국에 퍼진 장쩌민파 지방 세력은 이미 19차 당대회 전부터 몰락할 위기에 놓였다.

충칭시는 과거 보시라이(薄熙來)가 당서기로 취임하면서 장쩌민파는 본격적으로 충칭시 관료계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충칭에서의 보시라이

충칭으로 발령받기 전 보시라이는 상무부 부장이었다. 2007년 1월 15일 보시라이의 아버지이자 공산당 원로 보이보(薄一波)가 병사하면서 주석이던 장쩌민이 보이보에 대한 보답으로 ‘17차 당대회’에서 보시라이를 정치국 부총리에 입성시키려 했다.

그러나 당시 우이(吳儀) 부총리는 보시라이에게 부총리 직무를 인계하기 거부했다. 이 사실은 정치국 내부에서 매우 중대한 문제로 등장했다. 결국 우이는 전퇴(全退, 모든 직무를 내려놓는 것, 반대로 반퇴는 일부 직무를 유임)까지 감행하며 보시라이의 부총리 임명을 저지했다.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당시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보시라이가 파룬궁(法輪功) 박해를 주도한 혐의로 호주, 스페인, 캐나다, 영국, 미국 등 여러 국가에서 기소된 상태임을 지적했다. 그에 대한 국제적 이미지가 부정적이므로 높은 직위에 오를 인물로는 부적절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2007년 12월 보시라이는 충칭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고, 왕양(汪洋)으로부터 충칭 시 당서기직을 물려받았다.

보시라이는 충칭시에서 18차 당대회에서의 상무위원회 진입을 위해 '창홍타흑(唱紅打黑: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예찬하고 범죄와 부패를 척결)’ 운동을 벌여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기업과 시민을 상대로 수많은 사건을 날조해 억울한 피해자들이 생겨났다. 억대 자산의 민영 기업가들이 파산의 길을 걷게 됐으며, 2009년에서 2011년까지 상인·경찰·법관·정부관리를 포함해 5700여 명이 불법으로 연행됐다.

보시라이는 점점 충칭을 장악해 나갔다. 충칭의 당, 정, 군, 공안, 검찰, 사법 등 중요 부처에 자신의 사람을 대량으로 심어 놓았다. 그 결과 보시라이가 낙마하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도 그 세력은 여전히 충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충칭 관료계 1차 청산

2012년 3월 중국 공산당 양회(兩會,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이후 보시라이가 낙마했다. 그 뒤를 이어 충칭 시 난안(南岸)구 샤쩌량(夏澤良) 서기가 2012년 3월 21일 조사를 받았으며, 천춘건(陳存根)은 2012년 3월 충칭시 상무위와 조직부장 직위를 박탈당했다. 이 기간에 충칭시 법원 관원들이 대거 교체됐다.

2012년 7월 충칭 정법위가 교체됐다. 같은 기간 충칭 ‘타흑(打黑, 범죄와의 전쟁)’ 소조 부소장이자 충칭시 공안국 부국장이었던 탕젠화(唐建華)가 조사를 받았다. 탕젠화가 체포되고 1주일 뒤, 그의 동료인 궈웨이궈(郭維國), 리양(李陽), 왕펑페이(王鵬飛), 왕즈찬(王智參) 등이 연루된 '순사왕법(徇私枉法, 사리를 추구해 법을 왜곡하는)’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12년 9월 충칭의 법원, 검찰원, 감찰원 관료들이 또 한 번 대거 교체됐다. 그와 거의 동시에 충칭 시위원회 전(前) 부비서장이자 시위원회 판공청 주임인 우원캉(吳文康)이 형사 구금됐다.

2012년 말, 지린(吉林)성 쑨정차이(孫政才) 당서기가 충칭시 당서기직을 이어받으면서 충칭 관료계는 재차 인적 청산에 나섰다.

2013년 3월부터 충칭 정계에 불어닥친 인사 바람은 8개 구와 현의 주요 직위에까지 미쳤다. 같은 해 4월 26일 충칭 재정, 수리, 계획출산, 세무, 안전, 식품, 물가, 교육, 문화, 위생, 체육 등 여러 부서의 지도층이 교체됐다. 2013년 6월 7일 충칭시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는 13 건에 달하는 인사 정보를 집중 발표했다.

그러나 충칭시 정부와 정법부문은 여전히 장쩌민파의 수중에 있었다.
 

황치판, 보시라이와 한 패로 지목

황치판은 보시라이의 재임 기간에 시장으로 발탁된 장쩌민파 인물이다. 보시라이가 장쩌민이 직접 발탁한 심복이듯, 황치판 역시 장쩌민의 본거지인 상하이에서 장쩌민파인 우방궈(吳邦國)의 발탁으로 출세가도에 올랐다. 황치판은 보시라이와 한 패로 지목되면서 보시라이-저우융캉(周永康) 정변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2012년 2월 6일, 왕리쥔(王立軍)이 청두(成都)에 있는 미(美) 영사관으로 도피한 뒤, 보시라이는 황치판에게 충칭 경찰을 동원해 왕리쥔을 체포하고 미국 영사관을 포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당시 이로 인해 미국과 중국 간에 중대한 외교 사건이 벌어질 뻔 했다.

이 사건으로 보시라이는 양회에서 사면초가에 빠졌다. 유일하게 황치판만 그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황치판은 언론을 통해 “나와 보시라이는 호흡이 잘 맞고, 고기가 물을 만난 격으로 서로 잘 지낸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양회가 끝나고 이틀 뒤 보시라이는 면직됐다.

그 뒤 황치판은 다급하게 보시라이에 대한 비리를 폭로하기 시작했다. 그는 여러 문제에서 보시라이와 의견이 맞지 않았고, 왕리쥔에 대해서도 줄곧 문제를 느꼈다고 말했다.

황치판은 줄곧 충칭시장을 역임하면서 경제권을 장악해왔다. 중앙순시조는 충칭시가 ‘국유기업 부패 현상이 심각하다’고 지적했으며, 외부에서도 황치판이 그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았다.
 

시진핑, 보시라이 일파 청산 지속

2016년 12월 30일, 황치판은 충칭 시장 직위에서 해임됐다. 부시장 우강(吳剛)도 함께였다. 또한, 충칭시 장궈칭 부서기가 대리시장으로, 충칭시 위생계획위원회(衛計委) 주임 취첸(屈謙)이 부시장으로 임명됐다.

2016년 12월 27일, 충칭 고등인민법원 원장직을 9년간 역임했던 첸펑(錢鋒)이 국무원 법제판공실(法制辦) 부주임으로 전출됐다. 첸펑은 과거 공개석상에서 보시라이의 ‘창홍타흑’ 운동을 지지한다고 여러 번 밝힌 바 있었다.

같은 해 11월 24일 웡제밍(翁傑明)이 충칭시 부시장에서 해임 당했고, 허난(河南) 성 상무 부성장으로 전출됐다. 웡제밍은 상하이 출신으로 충칭시 완성(萬盛)구 당서기, 샤핑바(沙坪壩)구 당서기, 충칭시 상무위, 통일전선부장 등을 역임했으며, 2013년 상무 부시장에 임명됐다.

2017년 1월 7일 천융(陳雍)이 충칭 시위원회 상무위, 시 기율위 서기에 임명됐고, 쉬쑹난(徐松南)은 충칭시 기율위 서기직을 더 이상 맡을 수 없게 됐다. 천융은 왕치산(王岐山)의 인물로 통하는데, 감찰부 부부장직을 역임했다.

2017년 1월 17일 충칭시 고등법원장 첸펑, 검찰원장 위민(餘敏)이 사임했다. 첸펑, 위민은 보시라이, 황치판이 충칭시를 장악하던 시기의 중요한 사법 관료로, 보시라이의 ‘창홍타흑’ 운동에 깊이 관여했다.

전(前) <문회보(文彙報)> 장웨이핑(薑維平) 기자는 첸펑이 사법부와 최고법원에서 일한 경력이 있지만 관련 업무에 능숙하지 않으며, 단지 윗사람의 뒤처리를 해줄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보시라이의 상무부장 재임 시절, 친분 관계를 이용해 접근했고, 2004년 9월부터 2007년 7월까지 대외경제무역대학 국제법학을 전공하고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지만 사실 보시라이가 공들여 키운 수족이라고 지적했다.
 

허팅(何挺) 낙마

2월 20일, 충칭시 상무위원회가 확대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당서기 쑨정차이는 ‘시진핑 핵심’ 지위 수호를 천명했다. 또한 중앙 순시조의 의견에 대해 시정 작업을 충실히 집행하며, 저우융캉, 보시라이, 궈보슝(郭伯雄), 쉬차이허우(徐才厚), 링지화(令計劃) 등을 반면교사 삼아 교훈을 얻어야 하며, ‘보시라이와 왕리쥔이 남긴 해악을 철저히 없애겠다고 밝혔다.

중국 언론은 6월6일자로 올해 5월에 충칭시 상무위에 발령된 류창(劉強)이 충칭시 정법위 서기에 임명, 관련 정법 회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두 달 전 충칭시 부시장이자 공안국장이었던 허팅이 당국의 조사를 받았으며 5월 20일 개막한 충칭시 당대회에 불참했다. 그의 개인 이력 또한 충칭시 정부 홈페이지에서 삭제되면서 ‘허팅이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그러나 충칭시는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으면서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중앙 기율위 홈페이지에도 허팅의 조사 사실은 공표되지 않았다.

2012년 초, 충칭에서 ‘왕리쥔 도주 사건’이 발생한 뒤, 이 사실을 덮기 위해 저우융캉 등이 비밀리에 활동했다는 전모가 밝혀졌다. 그는 허팅을 충칭시 공안국장에 추천해 당시 충칭시 당서기 장더장(張德江)을 도와 ‘진상 은폐’와 ‘장쩌민파 보호’에 나서도록 했던 것이다.

허팅이 지난 4월 1일 충칭 지도자 회의에 참석했다가 중기위와 중앙 조직부 관계자에게 현장에서 연행됐다고 홍콩 월간지 <쟁명(爭鳴)>은 2017년 5월호에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조사팀 직원은 현장에서 허팅에게 ‘쌍규(雙規·지정된 시간과 장소에서 기율위의 조사를 받는 처벌)’를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팅은 서명하는 척하면서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 자살을 기도했다. 그러나 특수경찰이 먼저 총을 빼앗아 저지하고 허팅을 체포했다.

충칭의 실권자였던 황치판이 전출되고, 충칭 시 정법계통과 당정의 여러 부처에서 인적 교체가 이뤄지면서 충칭시의 장쩌민파 세력은 대거 청산됐다. 이는 향후 보시라이 재임 기간 벌어진 억울한 사건들을 철저히 파헤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며, 충칭시가 보시라이가 남긴 해악으로부터 한시라도 빨리 벗어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전망이다.

 

샤샤오창(夏小強·대기원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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