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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80년 된 승려 시신 ‘멀쩡’ ··· 죽기 전 ‘공산당 테러’ 경고
  • 이반 펜초우코프, 나탈리 텝리츠키 기자
  • 승인 2017.06.30 09:38
바이칼호 동쪽, 몽골과 접경 지역에 위치한 부랴트(Buryat) 공화국의 지역 수도 울란우데의 한 사원에서 한 신자가 1927년 사망해 미라가 된 승려에게 공양을 바치고 있다. 이 승려는 러시아 불교 지도자 다시-도르조 이티겔로프로서 사망 당시와 똑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날짜미상 (HO / AFP / 게티 이미지)

80년 전에 사망한 한 러시아 불교 지도자의 시신이 오늘날까지 부패한 흔적이 전혀 없다.

승려 다시-도르조 이티겔로프는 1927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동료 승려들에게 나중에 자신의 몸을 파내보라는 메모를 남겼다. 승려들이 28년 후인 1955년에 시신을 발굴했을 때, 부패 흔적이 없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들이 22년 후인 1973년 다시 시신을 발굴했을 때 시신이 원래 상태 그대로인 것을 보고 경악했다. 승려들은, 당시 소련 공산주의 정권이 종교를 없애기 위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시신을 파괴 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이 사실을 비밀에 부쳤다.

2002년, 그들이 다시 발굴했을 때, 시신은 여전히 ​​살아 있는 듯 그대로였다. 그들은 이번에는 이 기적을 공개하고 과학자들에게 조사를 요청했다. 시신은 마치 미라가 돼 보존된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 시신에는 미라 보존처리가 돼있지 않았다.

러시아 국립 인문 대학교 갈리나 예르쇼바(Galina Yershova) 교수가 프라우다紙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시신이 묻힌 지 75년이 되었지만, 채취된 샘플은 죽은 사람의 피부, 머리카락, 손톱의 유기물이 살아있는 인간의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망한 1927년 당시의 다시-도르조 이티겔로브 (위키 미디어 커먼즈)

"관절도 구부러지고, 연조직도 살아있는 사람과 같이 탄력적이다. 75년 동안이나 시신이 들어있던 관을 열었는데 매우 기분 좋은 향기가 났다."고 예르쇼바는 말했다.

2002년 시신을 조사한 과학자들과 병리학자들의 공식 발표문에는 "(시신이) 36시간 전에 사망한 사람의 상태 "라는 표현이 있다.

연방법의학센터의 빅토르 즈비야진(Viktor Zvyagin) 교수는 부디스트 채널(Buddhist Channel) 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견해를 밝혔다. "수년간 임상에서, 이 사례처럼 보존된 시체를 몇 차례 보긴 했지만, 미라 처리가 됐거나 극한 환경의 결과였다. (···) 그러나 이 건은 다른 경우이며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아주 정밀한 연구를 요구하는 현상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신체의 단백질 구조가 손상되지 않았다.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의 것과 동일했다.

이 기적의 몸은 러시아 지역 불교도들의 신앙의 대상이 됐다. 성화된 시신은 현재 지역 수도 울란우데의 이볼긴(Ivolgin) 불교사원에 안치돼 있다.

울란우데의 이볼긴 불교사원 (Vasiliy Tatarinov/ Wikimedia Commons)

이티겔로프의 명성은 아주 멀리까지 퍼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3년 사원을 방문했다. 대통령은 방문하자마자 혼자서 이티겔로프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푸틴의 언론담당 비서에 따르면, 푸틴은 사원을 떠나기 전에 작별인사를 위해 다시 이티겔로프 시신 앞에 갔다고 한다.

푸틴 대통령은 불교가 러시아 전통 종교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그는 또한 사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약속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3년 4월 11일, 브랴트 공화국의 베르큰야야 이볼가 마을에 있는 이볼진스키 닷산(사원)을 방문해 승려들과 함께 걷고 있다.(ALEKSEY NIKOLSKYI/AFP/Getty Images)

스탈린 통치하의 소련은 종교의 모든 표현을 억압하고 수백 명의 라마를 처형했으며, 불교사원 46개를 파괴했다. 소련 붕괴 이후, 수년간 러시아 전역에서 불교 신자들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해 폐허가 된 사원을 재건하고 있으며,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신도들이 모이고 있다.
 

함보라마의 이력

함보 라마 이티겔로프는 부랴트의 불교대학교 아닌스키 닷산(Anninsky Datsan)에서 공부했다. 그는 의학 학위와 공(空)의 본질에 관한 연구로 철학 학위를 받았고 약리학 백과사전도 만들었다.

1911년 이티겔로프는 러시아의 불교 신앙의 수장인 함보 라마가 되었다. 1913년부터 1917 년 사이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최초의 불교사원을 열었다. 그는 또한 종교 관련 논문과 가르침을 출판하고 종파를 통합했다.

함보 라마는 1917년 3월 19일 마지막 황가(皇家) 로마노프 가문 300주년 기념행사에 초대됐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그에게 성 스타니슬라브 상을 수여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그는 군대에 자금과 의복 및 의약품을 제공했다. 그는 또한 라마 의사들이 부상당한 무장군인들을 치료할 수 있도록 몇 군데 병원을 세웠다. 그 공헌으로 그는 성안나 메달을 받았다.

1926년 그는 불교 승려들에게 다가오는 '적색 테러‘에 대해 경고하면서 티베트로 가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러시아를 떠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적색 테러에 대한 그의 예측은 실현됐다. 공산 정권은 그 후 수십 년 동안 러시아 국민 3천만 명을 살해했다.

이티겔로프는 1927년, 승려들에게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명상을 시작했고 곧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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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펜초우코프, 나탈리 텝리츠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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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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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산 2017-06-30 16:36:32

    빅뱅과 창조의 불가능성을 입증하고 우주를 새롭게 설명하는 통일장이론서(제목; 과학의 재발견)가 출간됐다. 그런데 과학자와 신학자를 포함해서 수많은 저명인사들에게 이 책에 대한 의견을 청구했으나 모두 침묵했는데 그중의 한 분이 “선생님의 글은 제가 그 가치를 판단하거나 평가할 능력이 없습니다.”라는 진솔한 답장을 보냄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침묵하는 이유가 밝혀졌다. 이 책에 반론하면 5천만 원의 상금을 준다고 책표지에 공시했으나 반론이 없다.

    이 책은 형식적으로는 과학을 논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내용은 인문교양서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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