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中 장쩌민파 지방세력의 몰락<베이징편>시진핑, ‘19차 당대회’ 앞두고 측근들 지방 요직에 배치
  • 샤샤오창(夏小強·대기원 시사평론가)
  • 승인 2017.06.19 13:20
19차 당대회를 앞두고 시진핑(習近平) 측근들이 지방의 요직 인사를 장악했다. 이에 따라 장쩌민파의 전국 지방 세력은 전면 패산(敗散)할 위기에 처했다.(대기원 자료실)

시진핑 집권 이전, 후진타오(胡錦濤)-원자바오(溫家寶) 10년 간 어떤 정책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정령불출 중난하이(政令不出中南海, 정책이 지도부가 있는 중난하이 밖으로는 전해지지 않는다)'의 주원인은 장쩌민파가 각 지방의 성, 시 요직을 독점했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도시가 장쩌민 일파의 ‘독립 왕국’으로 전락한 상황 하에서 시 주석은 19차 당대회를 앞두고 인사 개혁을 단행했다. 전국 31개 성, 시 주요 보직에 모두 측근들을 배치했다. 따라서 19차 당대회 전부터 장쩌민 일파의 전국 지방 세력은 전면 패산할 위기에 처했다.

베이징은 예로부터 ‘천자의 발아래’ 놓인 수도로 불려왔다. 이곳의 안정과 안전은 정치 판세를 좌우했다. 정치 투쟁에서 수도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다는 것은 정적에게 급소를 보이는 일과 마찬가지였다. 중국의 권력 투쟁 요지인 베이징 시에서 베이징 위수구(衛戍區·경비부대), 베이징 시정부 및 중앙경위단(中央警衛團)의 권력을 장악하지 못한다면 중국 최고 지도자도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베이징 시위원회 서기직은 중국 지방 제후의 우두머리 격으로, 중앙 정치국 일원이 확실시 되는 자리이다. 19차 당대회 개최를 앞둔 지금, 이곳의 인사권을 둘러싼 주도권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장쩌민파, 장기간 베이징 장악

베이징 시 당정 권력은 장쩌민파가 장기간 장악해왔다.

장쩌민 집권 후, 천시퉁(陳希同) 전 베이징시 당서기는 수차례 장쩌민의 영도 권위에 도전했다. 1995년 4월, 왕바오썬(王寶森) 전 베이징시 부시장 자살 사건을 시발점으로 장쩌민은 베이징 시위원회와 천시퉁을 숙청해나갔다. 1998년 7월, 천시퉁이 16년 형을 선고받고 나서야 장쩌민은 실질적으로 당정군(黨政軍) 대권을 모두 차지할 수 있었다.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웨이젠싱(尉健行)이 과도기의 베이징시 당서기직을 역임했던 것을 제외하면, 최근까지 이 자리는 장쩌민의 측근들로 채워졌다. 푸젠(福建)성 당서기였던 자칭린(賈慶林)이 베이징 시장을 거쳐 베이징 당서기로 전임한 것을 시작으로 2002년에는 류치(劉淇)가 넘겨받았다. 2012년에는 궈진룽(郭金龍)이 그 뒤를 이어 베이징시 당서기직을 맡아 2017년 5월까지 재임했다.
 

장쩌민파 요원 왕안순(王安順)

18차 당대회 이후, ‘석유방(石油幫)’ 출신 왕안순이 베이징 시장을 맡았다. 그는 ‘석유방’의 대부 저우융캉(周永康), 쩡칭훙(曾慶紅)의 측근 중 한 사람이다.

저우융캉과 왕안순은 동북 석유 계열과 관련 있을 뿐 아니라 국토자원부에서 함께 일하며 밀접한 상하 관계를 유지해 왔다. 당시 저우융캉은 국토자원부 부장, 왕안순은 국토자원부 인사교육사(人事教育司) 사장(司長)직을 맡고 있었다. 1999년 저우융캉이 쓰촨(四川) 성 당서기로 전임한 뒤, 왕안순도 간쑤(甘肅)성 위원회 조직부장으로 승진했다. 대략 2년 만에 왕안순은 다시 상하이 시위원회 조직부장으로 승진, 천량위(陳良宇)를 보필했다. 이 때 중앙 조직부장은 쩡칭훙이었다.

천량위가 낙마하자 쩡칭훙은 왕안순을 베이징시 부서기, 정법위원회 서기로 전임시켰다. 2012년 왕안순은 시장 대행을 맡았으며 2013년 1월 시장으로 선출됐다.

한편, 궈진룽, 왕안순, 뤼시원(呂錫文) 등은 모두 장쩌민의 뒤를 따라 파룬궁(法輪功) 박해에 가담했으며, ‘파룬궁박해 추적조사 국제조직'(WOIPFG)’의 범죄 혐의 책임자 명단에 올랐다.
 

시진핑, 베이징의 장쩌민파 관료 청산

일전에 홍콩 언론은 시진핑의 베이징 인사 배치 및 구상이 저항을 받아 실천하기에 어려웠으며 일부 베이징 관료들이 겉으로만 따르면서 뒤로는 반발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시진핑이 베이징 부시장 겸 공안국장 왕샤오훙(王小洪)을 베이징 시위원회 부서기로 임명하려 했을 당시 베이징 관료들이 규정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발했다는 후문이 전해진 바 있었다.

지난 몇 년간 시진핑은 끊임없이 베이징의 장쩌민파 관료를 제거해왔다. 류치(刘淇)의 측근이자 전 베이징시 당서기인 뤼시원(呂錫文)이 실각했으며 ‘석유방’ 출신의 전 베이징 시장 왕안순은 국무원발전연구센터(國務院發展研究中心)로 전출됐다. 전 베이징 시위원 상무위원이자 부시장인 천강(陳剛)은 남수북조(南水北調) 판공실 주임으로 좌천되었고 전 베이징 시 상무 부시장 리스샹(李士祥)은 2선으로 물러났다.

2017년 2월 9일, 베이징시는 기율위 제6차 회의를 개최하며 뤼시원 사건의 정치적 영향력을 제거하기 위해 베이징 관료 15명을 조사 처리했다고 발표했다.

2월 12일, 중앙기율위 제11 순시조는 베이징 시위원회를 순시한 결과를 보고했다. 베이징 시의 ‘정치적 스탠드가 높지 않은’ 등 여러 문제와 뤼시원 사건에 대한 후속 처리 업무가 제때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시진핑, 베이징에 자기 편 인원 ‘투입’

5월 27일 차이피(蔡奇) 베이징 시장이 베이징 시위원회 서기로, 천지닝(陳吉寧)은 대리시장으로 임명됐다.

올해 61세인 차이치는 일찍이 푸젠에서 26년 간 근무했으며 이후 저장(浙江)으로 전임됐다. 시진핑 주석이 저장성 위원회 서기로 있을 때, 차이 서기는 저장성 취저우(衢州), 타이저우(台州)시 위원회 서기를 역임했다. 시진핑이 ‘18차 당대회’에서 출범한 후 차이 서기는 수차례 발탁, 중용되었다. 2016년 10월 국가안보위원회 판공실 상부 부주임이었던 차이 서기는 베이징시 대리시장으로 전임됐고, 올해 1월 시장으로 승진했다. 차이 서기는 19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위원으로 승급될 예정으로 알려졌다. 그의 정부급(正部級) 이력이 2년 6개월임을 고려할 때 이례적인 초고속 승진이다.

천지닝(陳吉寧·53)은 시진핑의 ‘칭화(清華)대 라인’에 속하는 인물이다. 천지닝은 시진핑의 대학 동창인 천시(陳希)와 친분이 두터우며, 천시가 칭화대 서기직에 있을 당시 천시닝은 칭화대 총장이었다. 지방 정부 임직 경력이 없는 천지닝이 고위 권력직인 베이징 시장에 임명되자, 많은 사람들이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현재 베이징 시위원회 서기, 대리 시장, 시위원회 부서기, 기율위 서기, 조직부장, 선전부장 등 요직에는 ‘낙하산 인사’들로 채워졌다.

 

샤샤오창(夏小強·대기원 시사평론가)  

<© 대기원시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19차_당대회#시진핑#베이징#장쩌민파#지방세력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영상
  • 1
  • 2
  • 3
  • 4
  • 5
여백
포토
  • 1
  • 2
  • 3
  • 4
  • 5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