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중국 정치
[특별보도] 중국서 파룬궁 박해로 ‘응보’ 받은 사례(3)
  • 편집부
  • 승인 2017.05.19 10:35
사진=대기원 합성

5. 국급(國級), 성부급(省部級) 고위 관료들 백여 명 응보받아

2012년 말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집권한 후, 파룬궁(法輪功)을 박해하던 수많은 부패관료들의 악행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줄줄이 체포·수감됐다. 국가지도자 반열이던 저우융캉(周永康), 쉬차이허우(徐才厚), 궈보슝(郭伯雄), 링지화(令計劃), 쑤룽(蘇榮) 등 고위 인물들도 처벌을 피하지 못했고, 낙마한 보시라이(薄熙來), 리둥성(李東生), 구쥔산(谷俊山), 바이언페이(白恩培), 저우번순(周本順), 마젠(馬建), 장웨(張越), 리춘청(李春城), 주밍궈(朱明國), 류톄난(劉鐵男), 장제민(蔣潔敏) 등과 같은 각 분야의 고위관리들 대부분도 ‘파룬궁박해 추적조사 국제기구(WOIPFG)’가 발표한 파룬궁 박해 주범들이자 책임자들이다. 이들의 행위는 ‘추적 공고문’과 명혜망(明慧網)에 모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들이 낙마한 진짜 이유는 표면적인 부패척결이나 파벌싸움이 아닌 파룬궁 박해로 인한 인과응보인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파룬궁 박해 기간 동안 18년간 낙마한 부성부급(副省部級·차관급) 이상 관료들 최소 126명이 파룬궁이 발표한 ‘인권탄압 악인 리스트’에 올라 있으며 이중에는 중국공산당 18차 당대회 이전에 낙마한 인사도 포함되어 있다.

이밖에도, 명혜망 통계에 따르면 응보를 받은 지역의 인원수 분포와 파룬궁에 대한 박해 정도가 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룬궁에 대한 박해가 극심했던 헤이룽장(黑龍江), 랴오닝(遼寧), 허베이(河北) 등 몇몇 성(省)의 경우, 현지 관료사회에 비교적 큰 변화가 있었고, 낙마 등 인과응보를 받은 관료의 수도 상대적으로 많았는데 관료사회 전체가 액운을 겪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6. 홍콩 특별행정구 수장 도널드 창(曾蔭權)의 인과응보

2017년 2월 22일, 홍콩의 도널드 창 전(前) 행정장관이 공직자 부정행위로 홍콩 고등법원에서 20개월의 형을 선고받았는데 최초로 기소되어 실형을 선고받은 홍콩 최고위급 관리로 기록됐다. 도널드 창 사건은 홍콩 정계에서 선과 악에는 인과응보가 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도널드 창은 홍콩에서 40여 년을 근무했으며, 영국령 시절의 재정부(財政司), 반환 이후의 정무부(政務司)의 사정 및 행정장관을 역임했다. 이 기간에 그는 공산당에 빌붙어 장쩌민(江澤民)에게 아첨을 일삼으며 장쩌민 집단의 파룬궁 탄압 하수인으로 전락했다.

도널드 창의 임기 동안 홍콩에는 여러 파룬궁 박해 사건이 발생해 국제 사회를 놀라게 했다. 2007년 7월 1일 중국공산당 창당일을 앞두고, 홍콩에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송환 사태가 발생했다. 800명의 타이완 파룬궁 수련자가 홍콩 입국을 거절당했으며, 이 중 항공기 탑승 불허 또는 비자 발급 불가 인사를 포함한 500여 명은 홍콩 공항에서 송환됐다. 일부 파룬궁 수련자는 홍콩 직원들에게 결박되어 강제로 항공기에 태워져 폭력적인 방식으로 송환됐다.

2010년 1월 미국 션윈(神韻)예술단은 초청을 받아 홍콩에서 7차례 공연을 가질 예정이었고, 티켓도 모두 팔렸었다. 그러나 홍콩 정부는 공연 직전 돌연 예술단의 주요 전문 제작자 6명의 입국 비자 신청을 거절해 공연이 취소되도록 만들었다.
 

7. 홍콩 바오렌사(寶蓮寺)주지, 파룬궁 모독에 대한 벌 받아

2015년 10월 홍콩에서는 종교계를 들썩이게 한 불교의 추문이 터졌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다푸(大埔)구 딩후이사(定慧寺)의 비구니 주지승 스즈딩(釋智定)이 위장 결혼으로 중국 본토의 스님 한 명을 홍콩으로 데려온 혐의가 있었다. 사건에는 바오렌사 주지와 홍콩 불교연합회 회장 스즈후이(釋智慧)도 연루됐는데 스즈딩이 그 문하의 제자인데다 이들은 선후로 스즈딩과 위장 결혼한 중국 스님과 바오렌사에서 함께 있었던 이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종교 추문을 시발점으로 스즈후이에 대한 부정적인 소식들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바오렌사 또한 사유지를 점거하고 불탑을 건설해 문제를 일으켰다. 보도에 따르면 스즈후이는 2005년 바오렌사 주지가 된 후 절을 상업화 시켰고, 그의 출신 또한 미스터리이다. 스즈후이는 2014년 8월 개인 명의로 된 부동산 회사 3개를 매각했는데, 그 금액이 2723만 위안(약 44억 7000만원)에 달했다고 한다. 딩후이사의 장부에는 스즈후이가 매월 5000위안(약 82만원)의 이사 월급을 받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스즈후이는 평소 벤츠 승용차를 타고 명품 시계를 착용했다. 외출 시에는 비서와 기사가 동행했으며 언행이 경박했다고 한다. 스즈후이의 직함을 살펴보면 중국공산당과의 관계가 일목요연하게 드러난다. 그는 홍콩 지역인민대회 대표를 연임했고 중국공산당이 직접 보내는 특별 성장(星章)을 수상한 바 있다. 또한 통일전선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2008년 이래 스즈후이는 병이 끊이질 않았고 팔순이 되어서는 좋지 않은 사건에 연루돼 자주 뉴스에 등장했다. 이는 그가 장쩌민이 지시한 임무를 홍콩에서 적극적으로 수행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2000년 3월 장쩌민이 제9기 전국인민대표대회 3차회의에 출석했는데 스즈후이는 여기서 장쩌민의 파룬궁에 대한 탄압을 적극 지지하며 ‘파룬궁은 사이비 집단’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관영 언론과 인터뷰에서 파룬궁에 대한 중국 당국의 탄압을 지지한다고 강조했으며, 자신의 발언이 장쩌민에게 인정을 받아 몹시 기쁘다고 밝혔다.

 

편집부  

<저작권자 © 대기원시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파룬궁#파룬궁 박해#인과응보#국급#부국급#성부급#저우융캉#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