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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오해하긴 쉽지만 진의를 알기는 어렵다
  • 이상숙 기자
  • 승인 2017.05.1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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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한 때의 이야기다. 루장 현(현 중국 안후이 성 허페이 시)출신의 모의(毛義)와 둥핑 현(현 산둥 성 타이안 시)출신의 정균(鄭均)은 모두 성실하고 온후한 인물로 전해진다.

어느 날, 모의의 인품을 동경했던 장봉(張奉)이라는 남자는 고향을 떠나 그를 찾아왔다. 장봉이 도착했을 때 모의는 자신을 안양(安陽)의 장관으로 임명한다는 문서를 읽던 중이었다. 임명서를 읽은 모의는 웃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모습을 본 장봉은 그가 벼슬에 집착하는 것으로 알고 실망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몇 년 후 모의의 어머니가 돌아가자 그는 조정에 사표를 제출했다. 황제는 모의를 붙잡으려고 태수로 승진시켰지만 모의의 뜻은 완강했다.

이 말을 들은 장봉은 자신이 모의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군자의 도량을 평범한 속인이 짐작할 수 없다. 당시 장관 임명을 모의가 그렇게 즐거워한 것은 벼슬에 대한 집착 때문이 아니라 아픈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람을 오해하는 것은 쉽지만 진의를 알기는 매우 어렵다." 그 후 그는 모의를 더욱 존경하게 됐다.

한편 정균의 형 정봉은 지역에서 하급 관리를 맡고 있었다. 정봉은 늘 뇌물을 받고 그들에게 편의를 봐 주었다. 정균은 수도 없이 그것을 그만두도록 설득했지만 정봉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보다 못한 정균은 스스로 고향을 떠나 일년 남짓 품팔이를 해 돈을 모은 뒤, 돌아와서 정봉에게 주면서 말했다. "돈은 까먹어도 또 벌 수 있다. 그러나 부패하다 붙잡히면 일가를 망친다. 형이 돈이 부족하면 내가 열심히 일해서 주겠으니 제발 부정을 저지르지 말라“고 하소연했다. 그 말을 들은 정봉은 반성하고 마음을 바로잡으며 뇌물 받는 것을 그만 뒀다.

정균은 상서(상주를 취급하는 직무, 상주는 왕에게 말씀을 아뢰어 올리는 것)의 자리에 올랐지만, 퇴직을 앞당겨서 고향에 돌아가 형제들과 함께 근면하게 일하고 검소한 생활을 보냈다.

당시 한나라 황제 유달(漢章帝 劉炟,75-88년 재위)은 모의와 정균의 인격을 칭찬하고 그들의 가족들에게 옥수수 천석(약 6톤)을 수여했다. 그리고 다른 관리들에게 둘을 본보기로 하라고 명했다.

 

이상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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