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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가족 파괴 정책 ‘성 해방’(상)
  • 국제부
  • 승인 2017.05.17 18:46
1921년 10월 소련 볼가지역의 노숙자들이 들판에 앉아 있다.(사진=Getty Images)

‘성 해방’을 들으면 대부분 1970년대 서양의 히피문화를 떠올릴 것이다. 이것이 50년 전 전통적인 가족 형태를 무너뜨리려 했던 소련 공산당(이하 소련)의 정책임을 알까?

소련은 토지나 공장 같은 재화 생산수단을 몰수해 국유화한 것만이 아니라 전통사상에 기반을 둔 가족제도까지 붕괴시켰다. 결혼하지 않은 남녀는 동거할 수 있었고 혼외 자식도 친자식과 동등하게 인정했다.

서양에서 결혼과 가족제도는 전통적으로 기독교 교리에 근거해 왔다. 그러나 소련의 성 해방 정책으로 전통적 가치관이 깨지자 성욕을 절제하기 보다 성적 쾌락을 추구하려는 사상이 만연했고 많은 남성이 소련의 노선을 지지했다.

반면 여성은 가족이 아닌 사람들을 위해 집안일을 하고 친자식이 아닌 아이들을 돌보면서 노예화되었다. “국영 공장에 일하러 나온 여자가 오히려 자유의 몸”이라고 할 정도였다.

아이들은 일찍이 친모로부터 분리돼 탁아소, 유치원, 학교 등 보육‧교육시설에 보내져 “너희는 해방됐다”고 세뇌교육을 받으면서 장차 사회주의국가의 새로운 부품으로서 양성됐다.

전통적 가치에 근거했던 러시아 법률은 결혼제도를 종교적 원칙으로 규제했다. 이혼은 간음하거나 남편이 부양 의무를 포기한 경우 또는 생식기 기능 장애 등 제한적 사유로만 가능했다.

그러나 소련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따라 전통적 법률을 폐지하고 1918년 가족법을 만들었다. 카네기멜런대학교의 웬디 골드먼 역사 교수는 “(이 법은)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가족법이었다”고 평했다.

당시 소련 사회는 종교적 결혼 의식을 무의미하다고 여겨 등기소에서 간단한 혼인신고로써 결혼절차를 끝냈다. 이혼도 마찬가지였다. 러시아의 짜가린 작가가 1927년에 남긴 기록을 보면 “이혼은 매우 간단해 돈도, 시간도 들지 않는다. 현행법대로 이혼하면 15분도 걸리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소련의 비현실적 공산주의는 ‘공동체’로써 여성을 결혼에서 해방하고 남성은 더 이상 가족을 부양하지 않아도 된다며 가족 해방을 주장했다. 이것이 남성에게는 가족을 포기하는 근거가 되어 당시 많은 남성이 이혼 후 젊은 여성을 찾았다.

1918년 모스크바에서 약 3500쌍의 부부가 이혼했고 1927년에는 인구 1000명당 9.3쌍의 부부가 이혼했으며 남녀가 각각 평균 4회 결혼과 이혼을 되풀이했다. 소련의 ‘성해방’ 정책은 결혼과 가족의 의의를 잃게 했다. 1926년, 모스크바 지방법원의 A. Stel'makhovich 판사는 “많은 사람이 혼인 신고를 혼인관계의 기초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상 동거가 점점 퍼지는 추세”라고 했다.

(계속)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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