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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국 그림자를 쫓는 반골의 르포라이터(하)
  • 중국부
  • 승인 2017.05.17 15:45
두빈 씨는 최근에 1948년 공산당군에 의해 창춘시민 몇십만 명이 아사한 사건을 다룬 책 <창춘 대아살>을 출간했다.

두빈 씨는 1999년까지 중국 국영 언론사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하다 중국의 진실한 모습을 알게 되면서 중국의 인권과 중국 정권의 그림자를 날카롭게 파고들고 있다. 현재는 베이징에서 프리랜서 작가, 다큐멘터리 제작자 등 다양한 얼굴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저서 <칫솔> <마싼자의 포효> <민원인> <원귀> 등은 중국이 아닌 해외에서 출판되고 있다. 최근에 나온 <창춘 대아살>은 중국 공산당에 의해 창춘시민이 굶어 죽은 사건을 다루고 있다.

 

“공산당 정권에 불리한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것이 맞나?”

그렇다. 2013년 5월 말 베이징에서 납치돼 37일간 붙잡혔었다. 6월 초, 나는 쇠파이프로 만든 큐브 속에 갇혀 의자에 앉힌 채 다리가 묶였다. 국내안전보위지대(정치 안정과 국내 안전을 관할하는 공안부 산하 기관) 직원이 내게 4가지 혐의가 있다고 말했다. 첫째 유언비어를 퍼뜨려 사회질서를 어지럽혔고 둘째 불법 서적을 출간했으며 셋째 타인 혹은 그의 재산에 손해를 끼쳤고 마지막으로 공공장소의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전 같았으면 당신은 일주일 안에 죽었을 것”이라고 했다.

내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주장하자 그들은 내가 쓴 <톈안먼 대학살>이 조작이라면서 무슨 목적으로 썼냐고 물었다. 나는 “목적은 책에 다 써 놨다. 톈안먼 사태 때 얼마나 많은 학생과 시민이 당국의 진압으로 목숨을 잃었는지 확실하게 밝히고 그로 인해 타국에 망명간 사람들이 조국에 돌아올 수 있도록 국가에 촉구하며 나아가 당시 유혈진압에 가담한 공산당 정권의 살인마들에게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떤 사람은 정부가 당시 민주화를 요구한 사람들의 명예를 회복해줘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살인마에게 명예 회복을 기대하는가? 설령 그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한들 그것으로 ‘문제 해결’인가?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명예 회복’이 아니라 ‘책임 추궁’이다. 중국 공산당을 심판하는 것만이 우리에게 남은 길이다.

국내안전보위지대 직원은 마싼자 강제노동수용소에 관한 책도 날조라고 우겼다. 나는 “책에 나온 피해자를 여기에 데려와서 책의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물어보면 되지 않느냐? 왜 피해자를 조사해 확인하지 않느냐?”라며 반박했다. 또 왜 이런 사진을 찍느냐고 물었는데 “우리가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우리를 짐승처럼 다뤄선 안 된다”라고 답했다.

 

"<창춘 대아살>은 어떻게 해서 쓰게 됐는가? 자료는 어떻게 구했는가?"

1946년에 국민당군이 창춘을 점령하자 공산당군은 1년 가까이 창춘을 포위해 민간인까지 굶어 죽게 했다. 이 사건은 중국에서 줄곧 민감한 문제였는데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난징 대학살과 달리 중국군이 같은 중국인 수십만 명을 아살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책에서 공산당군이 국민당군으로부터 정권을 탈취하기 위해 민간인 수십만 명을 굶겨 죽일 필요가 있었는지, 창춘시민이 굶어 죽어가던 과정과 몇 명이 아사했는지, 또 이 작전을 누가 지휘했고 이 역사적인 범죄의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 등을 밝히고 싶었다.

책을 집필하는 데 어느 정도 위험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쓰려고 한 것은 이 사건을 기억에서 떨쳐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창춘에서 일어난 이 일을 여전히 모르는 중국인이 있지만, 나는 알아버렸다. 그런데도 내가 입을 꽉 다물고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마치 친구가 공안에 부당하게 납치돼 거짓 죄를 추궁받는 데도 내가 해코지 당할까 봐 모르는 척하는 것과 같게 된다. 아마 나는 매일 밤 그 일을 떠올리면서 죄책감과 불면증에 시달렸을 것 같다. 친구를 위해 무언가 기록하지도, 듣지도 않는다면 나는 그런 나 자신이 부끄러울 것이다. 내가 사진가이자 작가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은 없다. 그러므로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할 뿐이다.

자료 찾는 일은 너무 어려워 거의 10년이 걸렸다. 중고서적 구매사이트에서 <1948 창춘> <창춘을 포위한 동북 야전군 린뱌오>를 매일 검색해 관련된 책이라도 나오면 바로 구입했다.

자료를 다 모으고 정리해 이 사건을 가능한 한 명확히 밝혀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이 사건은 여전히 내 기억에 남아 다른 일에 손을 댈 수 없었을 것이다. 현재는 있는 힘을 다해 집필을 마쳤다고 생각하기에 이제 이 사건에서 손을 뗄 수 있게 됐다.

 

“<창춘 대아살>을 시간순으로 기록한 이유는?”

책이 원하는 대로 잘 써지지 않으면 답답하고 괴롭지만 그렇다고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내 감정이 글 속에 그대로 반영된다. 고민 끝에 나는 증거에 의거해 작성하고 증거가 없으면 작성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정했다. 책에 기재된 것들은 모두 근거를 토대로 한 것이고 모든 인용에는 출처를 달았다.

한 가지 이유가 또 있다. 공산당군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고 국민당군은 어떻게 했는지, 창춘 시민과 인근 주민은 어떠했으며 장개석과 마오쩌둥, 지휘관과 장교들은 어떠했는지 등을 당시 사람들의 시점으로 자세히 보여주고 싶었다.

<마오쩌둥의 지옥> <마오쩌둥의 살육정권> <톈안먼 학살>도 시간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지나간 역사를 현대에 되살리려면 최대한 자료를 원문 그대로 살려야 했다. 만약 대중의 취향에 맞게 자료를 달리 처리했다면 책은 대중의 인기를 얻었을지 모르나 원문의 느낌을 살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역사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면 시간순으로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수집한 자료의 3분의 2는 정부의 공식 출판물과 당 내부자료다. 내부자료도 국가기밀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헌책으로 나온 것을 내가 구입한 것이다.

 

“자료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1948년에 발간된 ‘톈진익세보’라는 선교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봤다. 중국 동북지방에 난민 수만 명이 모여들었는데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길거리에서 잔다는 내용이었다. 또 “우리는 인간으로서 난민에게 동정심을 가져야 한다. 그들은 우리의 동포다”라는 독자의 편지와 함께 톈진의 한 사람이 난민을 위해 써달라고 힘들게 모아온 5000만 법폐(당시 법정 지폐 단위)를 신문사에 기부한 선행도 실려 있었다.

기사가 워낙 작게 나와서 제목만 겨우 읽을 수 있었고 본문은 컴퓨터로 확대해야만 판독할 수 있었다. 평범한 시민이 보여주던 이런 인간성과 대조해 공산당이 한 짓은 도대체 무엇이었나 생각하니 가슴이 조여드는 것 같았다. 그때 5000만 법폐를 기부한 시민은 68년 후 그의 선행에 감동해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증인을 찾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매우 어려웠다. 창춘 시내를 걷다가 돌아다니는 개를 보고서 “너는 1948년에 여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니? 생존자가 어디 있는지 알아?”라고 묻고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어떻게 해서 당시 상황을 아는 노인을 찾았다. 사정을 설명하고 약속을 정하려고 하니 노인이 직장에 보고해야 한다고 했다. 79세 노인이 기자를 만나는데도 직장 허가가 필요하다니, 참! 나는 회사를 그만둔 상태라서 노인이 신분증을 요구하게 되면 일이 번거로워진다. 그래서 그러지 말라고 부탁했지만 노인은 끝내 직장에 보고하고 말았다.

사실 그분은 이미 여러 번 초청받아 자신의 체험을 수백 번 말해왔는데 공산당군의 세뇌 교육을 받아, 국민당 때문에 많은 사람이 아사했고 공산당은 오히려 자신을 구해줬기에 당연히 감사드려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수십만 명이 사망한 창춘학살은 결코 작은 사건이 아니다. 당시 위정자들은 중국인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고 짐승처럼 취급했다. 나는 중국인이 1949년 공산당이 집권한 때부터 현재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받고 살아온 적이 없다고 말한다.

내가 관심을 두고 보는 외국인의 SNS는 대개 밝고 재미있어 기분을 좋게 해주지만 중국인의 것을 보면 기분이 슬퍼지는 내용뿐이다. 중국 내 인터넷에서 ‘아무개가 구속됐다, 모모가 형이 확정됐다’는 등 인권 침해에 관한 글을 올리지 못하니 외국 SNS에 올리는 거다. 매일 해외 인터넷에서 이런 정보를 접하니 정말 괴롭다.

 

“아버지가 공산당원이셨는데 당신 책을 읽어보셨나?”

아버지는 마을의 당 규율 검사부 책임자이셨다. 아버지는 <마오쩌둥의 지옥>을 보시면서 “이 책을 읽어도 누구에게 말할 수 없구나”라고 하셨다. 하루는 산둥성 안전국장이 우리 집에 찾아와 아버지께 “정부가 싫어하는 이런 책은 쓰지 말라고 아들에게 말하라”고 했다. 아버지는 “아들도 이제 성인이라서 내 말을 들을 수도 있고 안 들을 수도 있다”고 답하셨다.

내가 이런 책을 쓰는 것이 아버지께는 매우 두려운 일이었다. 뉴욕타임스에서 일했을 때도 아버지는 두려워하셨다. 그때 아버지는 내게 “너도 나이가 있으니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라”고 재촉하셨다.

아버지는 투병 중 돌아가셨는데 그때 곁에서 지켜드리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당시 나는 경찰에게 신분증을 빼앗겨 차표를 살 수 없었다. 너무나 죄송하지만 후회하면서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수는 없다. 나는 후세에 남겨 줘야 할 가치 있는 것을 기록하는 데 나의 모든 시간과 열정을 쏟아야 한다. 이 <창춘 대아살>은 그때 공산당 때문에 아사한 수십만 영혼과 내 아버지께 바치는 것이다.

 

중국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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