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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최고 부패관리’ 장몐헝은 누구인가?
  • 편집부
  • 승인 2016.12.27 11:51
1994년, 장몐헝은 수백만 위안의 ‘대출’로 상하이 경제위원회의 수억 위안 가치를 평가받는 ‘상하이 연합투자회사(上海聯合投資公司)’를 사들였다.(GETTY IMAGES)

중국 정·재계, 기술과학계를 모두 주무르던 장쩌민의 아들 장몐헝(江綿恆)은 누리던 부와 권력이 태자당 그 누구보다 높았다. 시진핑 정부가 장쩌민 파벌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면서 언론에서도 ‘중국 최고 탐관오리’로 알려진 장몐헝의 비리를 끊임없이 파헤치고 있다.

국가 지도자급의 초고속 승진

1980년대 장쩌민은 장몐헝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 영주권을 받게 한 후 미국의 상황을 살피게 했다. 1992년 장쩌민은 당과 군권을 장악한 후 장몐헝을 다시 불러들였다. 장몐헝은 1993년 1월 중국과학원 상하이 금속제련 연구소의 일반 기술자로 들어가 4년 만에 소장으로 승진했다. 

1999년 12월 2일, 장몐헝은 중국과학원 부원장으로 임명되면서 초고속으로 국가 지도자급 자리를 꿰찼다. 

2015년 10월 위키리크스는 홈페이지에 미국의 외교 전문을 공개하면서 장쩌민이 정치판에 장몐헝을 끌어들이려던 시도가 무산됐다고 폭로한 바 있다. 
 

장몐헝의 이익 네트워크 ‘상하이 연합’ 

장쩌민의 지위가 공고해지고 권력이 비대해지면서 장몐헝은 재계로 뛰어들었다. 

1994년, 장몐헝은 수백만 위안의 ‘대출’로 상하이 경제위원회의 수억 위안 가치를 평가받는 ‘상하이 연합투자회사(上海聯合投資公司)’를 사들였다. 표면적으로 이 ‘상하이 연합’은 국유 기업이었지만 사실상 장몐헝의 사유 재산과 다를 바 없었다. 장몐헝은 ‘상하이 연합’을 개인 사업의 도구로 사용하면서 상하이에 자리를 잡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2010년 3월 29일 <돈을 위해 사는 중국 태자당 일당>이란 보도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장몐헝은 1990년대 초 상하이로 돌아와 외국 투자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들은 장몐헝을 중국에서 가장 가치있는 협력 파트너로 여겼다. 현재 그는 상하이 연합투자 유한공사를 장악하고 있는데, 이 회사는 운영 면에 있어 사모펀드사와 매우 유사한 정부 투자회사다.”

‘베이칭넷(北靑網)’은 2015년 1월 19일 <장몐헝의 인생 역할>이라는 제목의 문장에서, ‘상하이 연합’의 투자 영역이 과학기술, IT, 항공 등 수많은 분야에 걸쳐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전자통신 소프트웨어 선두주자 차이나넷컴(China Netcom), 마이크로소프트 MSN 및 교통항공 등 분야의 상하이 자동차·상하이 항공·상하이 공항, 금융 분야에서는 상하이 은행, 문화 영역에서는 봉황 위성TV 및 미국 드림웍스사와 상하이시가 합자해 설립한 오리엔탈 드림웍스 등등이 있다. 이들 산업 배후에는 모두 상하이 연합과 투자자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장몐헝은 자본 시장에서 금고가 넘칠 만큼 돈을 벌어들여 차세대 태자당 금융 분야 개척자가 됐다. 2015년 6월까지 격렬한 변화 속에서 장몐헝의 변신에 따라 ‘상하이 연합’도 상하이시 국유회사로 ‘변신’할 수 있었다. 
 

거대한 ‘통신 왕국’ 건설과 확장

1994년, 장몐헝은 ‘상하이 연합’을 장악하고 그의 거대한 ‘통신 왕국’ 건설과 확장을 시작했다. 

그는 장쩌민의 아들로 돈이면 돈, 권력이면 권력, 원하는 것은 전부 얻을 수 있었고, 사업을 해도 손해보지 않았으며, 해외 화교와 야후 창업자 양즈위안(Jerry Yang) 등을 포함한 서방 기업가들도 그를 찾아왔다. 몇 년 동안 장몐헝은 자신의 거대한 통신 왕국을 건설했다. 2001년 상하이 연합과 상하이 연합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상하이 정보 네트워크, 상하이 유선 네트워크, 차이나 넷컴 같은 회사가 이미 10여 곳이 넘으며, 그 업무 범위도 전기 케이블, 전자 출판, CD 생산, 전자 상거래 등 전방위에 펼쳐져 있었다.

장몐헝의 ‘통신 왕국’은 차이나 넷컴, 차이나 유니콤, 차이나 모바일 등으로 확대됐고 이들 회사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돈 잘 버는 기업에 속한다. 

‘차이나 넷컴(中國網通)’이 설립되기 전 장몐헝은 ‘넷컴(網通)’ 주인이었다. 2001년 중국 통신 산업이 남북으로 갈라져 재탄생되는 과정에서 장쩌민은 통신 사업을 반드시 북쪽과 남쪽 두 가지로 나누라고 명령했으며 ‘북쪽’ 지역 10개 성 통신업체 고정 자산을 ‘넷컴’에 넘기면서 ‘넷컴’이라는 ‘작은 뱀’이 ‘거대한 코끼리’를 삼키는 중국 자본시장 신화를 만들어냈다. 

그 후 장몐헝은 ‘넷컴’에서 현란한 통합과 철회 등 수작을 부려 국가 전자통신 자산을 모두 자신의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거액의 국가 자산, 개인 사업에 투입

장몐헝은 대만 통일 작전이란 명목으로 거액의 국가 자산을 개인 사업에 투입했다. 2000년 9월, 장몐헝과 대만 사업가 왕융칭(王永慶) 아들이 합작해 훙리웨이 전자 회사
(宏力微電子公司)를 차지하는 데 무려 64억 달러를 들였으며 이를 ‘합자’라고 주장했다. 

대만 언론의 끈질긴 추궁에 왕융칭의 아들 왕원양(王文洋)은 사실상 자신은 돈을 한 푼도 투자하지 않았으며 모두 장몐헝이 은행에서 돈을 끌어왔다고 털어놨다. 

장몐헝의 자금 출처는 중국 최대 금융사기 사건으로 불리는 ‘류진바오(劉金寶)’ 사건에서 그 실마리가 잡혔다. 

류진바오 사건 조사 결과, 장몐헝이 훙리웨이 전자회사에 투자할 당시, 류진바오가 중국은행(Bank of China) 상하이 지사에서 십수억 위안의 대출을 불법적으로 받아왔음이 밝혀졌다. 
 

무상 상하이 토지 점거

2003년 5월, 상하이 최고 부동산 갑부 저우정이(周正毅)가 체포됐다. 홍콩 주간지 ‘개방’은 저우정이의 정경유착 문제 조사 당시 이미 장쩌민 부자가 배후에 있음이 밝혀졌다고 폭로했다. 조사원은 징안(靜安)구 바로 옆에 위치한 푸투어(普陀)구에서 장몐헝과 푸투어구 정부가 저우정이가 징안구에서 했던 수법으로 많은 토지를 점유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장몐헝과 차남 장몐캉은 상하이 권역에서 모두 비준 받아 토지를 사용했지만 사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점유한 토지였다. 

상하이 재계 인사는 장몐헝의 사장 직함이 너무 많아 셀 수 없을 정도라며 상하이의 중요 경제 분야는 모두 그의 손이 닿았다고 밝혔다.
 

‘정경합일(政經合一)’ 최고봉

2001년 5월,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포춘 포럼(Asia Fortune Forum)에서 장쩌민은 장몐헝을 데리고 참석해 중요한 국제 인사들, 특히 글로벌 기업의 부호들에게 소개했으며, 이때 장몐헝은 이미 중국공산당 ‘정경합일’ 최고봉 위치에 있었다. 

최근 몇 년간 장몐헝이 거둬들인 부(富)가 대체 얼마인지는 미궁에 빠져있다. 2016년부터는 장몐헝이 상하이 교외에 연금되고 중앙기율위가 장몐헝과 면담을 통해 재산 상황을 추궁할 것이라는 등 소문이 무성하다. 

한편 인터넷 봉쇄를 위해 장몐헝이 주도했던 ‘황금방패(金盾)’ 프로젝트의 전반기 투자액은 8억 달러로, 이는 결국 중국 네티즌이 민주·인권·자유에 관한 정보, 특히 중국공산당의 아킬레스건인 파룬궁(法輪功; 法輪大法) 박해 관련 해외 정보를 얻지 못하게 하는 게 주요 목적이었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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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장몐헝#상하이 연합#통신 왕국#차이나 넷컴#파룬궁#황금방패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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