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종합 라이프
드러나지 않는 1%의 품격 Bag
  • 생활부
  • 승인 2015.10.13 15:37
미니 이시스 백 (MINI ISIS BAG). 최근 각광받는 사이즈로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층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이시스 백(ISIS BAG, 왼쪽)과 미니 이시스 백 (MINI ISIS BAG, 오른쪽). 최근 각광받는 사이즈로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층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남자를 돋보이게 하는 액세서리가 시계라면 여자에게는 가방이 있다. 일반 대중들에게 알려진 루이비통이나 샤넬 등의 고가 제품들은 일명 ‘3초 백’이라는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인지도 면에 있어 대중성 있는 브랜드들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여성들은 3초 안에 누구나 알아 볼 수 있는 가방이 아닌 눈에 로고가 띄지 않는 명품 가방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올해 6월 15일자 워싱턴 포스트(WP)는 이러한 추세가 특정한 국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나만의 독특한 제품을 가지고 싶다는 욕구의 반영임과 동시에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 소위 ‘있는 티’를 내고 싶지 않은 일종의 ‘눈치’나 ‘배려’의 소비 형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최근 몇 년 새 발렉스트라(Valextra)나 흔히 콜롬보라 불리는 콜롬보 비아 델라 스피가(Colombo via della Spiga) 등과 같은 가방 브랜드들이 부유층을 기반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두 브랜드의 공통점은 삼성가의 차녀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과 관련이 깊다는 것이다. 발렉스트라의 경우, 제일모직에서 수입해 2009년 10월 신라호텔 아케이드에 처음 입점한 브랜드로 홍라희 리움 관장과 이서현 사장 본인이 공식 석상에 들고 나와 화제가 된 바 있다. 반면 콜롬보는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명품브랜드를 키우고 싶다는 이 사장의 바람에 맞추어 2011년 (제일모직에서) 인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중 이태리 명품 가죽 브랜드 발렉스트라를 중심으로 명품 가방의 조건과 그것의 가치를 높여주는 우수한 가죽에 관해 좀 더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손으로 가방을 꿰매는 모습. 손으로 가방을 꿰매는 모습.

이태리의 에르메스, 발렉스트라

발렉스트라가 이태리의 에르메스라고 불리는 이유는 심플하고 단아한 디자인에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브랜드 로고보다는 제품의 품질로 승부하겠다는 철학이 77년 브랜드 역사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발렉스트라는 이태리어로 수트케이스를 뜻하는 ‘발리지아(valigia)’와 ‘엑스트라(extra)’가 합쳐진 이름으로, 1937년 조반니 폰타나(Giovanni Fontana)에 의해 설립된 수공예 가죽 전문 브랜드이다. 밀라노의 산 바빌라 광장(Piazza San Babila)에 첫 부티크를 연 이래 오직 가죽만을 이용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발렉스트라는 오랫동안 유럽 밖에서는 접하기 쉽지 않은 브랜드였다. 화려한 로고를 뽐낸 적은 없지만 높은 완성도와 품질로 유명 인사들과 부호들로부터 인기를 끌며 입지를 다져나갔다. 100% 장인들의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발렉스트라의 가방은 그레이스 켈리, 재클린 오나시스 등으로부터 사랑받으며 유명해졌고, 국내에서는 앞서 언급한데로 홍라희 관장과 이서현 사장이 공식 석상에 들고 나오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그밖에 장동건, 고소영, 차승원과 같은 스타들의 사복패션과, <풍문으로 들었소>, <어셈블리> 등 드라마 속 유호정과 송윤아가 들고 나와 다시금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여타 명품 가방들이 그러하듯 발렉스트라 역시 숙련된 장인들의 손길을 거쳐 섬세하고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날카로운 모서리 처리나 V자 장식 커팅은 로고를 드러내지 않고도 브랜드를 표현할 뿐 아니라 미적인 면과 실용적인 면을 모두 놓치지 않았다. 발렉스트라의 섬세한 마무리 공정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코스타 랙커 파이핑 작업(Costa Lacquer Piping Application)은 날카롭게 커팅된 모서리 부분에 코스타 잉크를 여러 번 덧칠함으로써 미적인 완성도를 높임과 동시에 상품의 형태와 구조를 더욱 견고히 한다.

공방 작업실 모습. 공방 작업실 모습.

비스포크(bespoke) 시스템, 즉, 고객 중심의 맞춤 제작은 브랜드 초기시절부터 이어져온 발렉스트라의 전통이다. 당시 사파리 여행에서 돌아온 고객들이 마치 성공적인 사냥을 자랑이라도 하듯 직접 사냥한 코끼리나 하마 등의 가죽을 들고 찾아와 지갑이나 서류가방, 화장 가방 등의 제작을 요구했던 것에서 유래되었다. 지금은 과거에서처럼 직접 사냥한 동물의 가죽을 들고 찾아오는 손님은 없지만 브랜드 초창기부터 함께 했던 주문 제작의 명맥은 아직도 유효한 셈이다. 고객들은 가죽의 종류와 색상의 선택에서부터 제품의 마감처리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원하는 바데로 주문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식물에서 추출한 타닌을 이용해 가공한 다양한 질감의 송아지 가죽은 물론 악어나 도마뱀, 타조 등 고가의 이국적인 가죽들을 고를 수 있다. 여기에 식물에서 추출된 천연 염료를 사용해 염색한 26가지의 다양한 색상들 가운데 원하는 색상을 더한다. 끝으로 고급 제품의 마감처리를 위한 스티치라든지 금속 장식을 비롯해 발렉스트라만의 특화된 코스타 랙커 파이핑의 색상까지도 직접 선택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나만의 가방을 완성할 수 있다.

이러한 맞춤 제작 서비스가 가능한 이유는 회사 내에 고용된 약 60여명에 달하는 가죽 장인들 덕분이다. 숙련된 장인들의 확보는 2000년 엠마누엘레 까르미나티 몰리나(Emanuele Carminati Molina)가 회사를 인수할 당시 가장 공을 들였던 부분 중 하나로, 발렉스트라와 함께해온 장인들을 일일이 찾아가 ‘모셔온’ 일화는 계속해서 회자될 만큼 유명하다. 이는 현재까지도 몰리나 회장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 중 하나이다. 밀라노의 가죽장인들이야말로 발렉스트라의 가장 큰 무기이자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발렉스트라는 은퇴한 장인들이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고 기술력을 전수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최상의 품질을 자랑하는 발렉스트라의 가방은 그러나 그 명성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대에 속한다. 홍라희 관장이 들고 나왔었던 비-큐브(B-CUBE)는 438만원, 드라마 <어셈블리>에서 송윤아가 들기도 했었던 발렉스트라의 대표모델, 이시스(ISIS)는 448만원이다. 물론 악어가죽과 같은 고가의 가죽으로 만들었을 경우 그 가격은 2000만원을 훌쩍 넘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 수천만 원을 호가하고, 많게는 일억 원대까지도 올라가는 에르메스에 비하면 겸손한 가격대라 할 수 있다.

역사 속의 발렉스트라 가방 역사 속의 발렉스트라 가방

가방의 가치를 격상시키는 가죽

당연한 얘기지만 가방의 가격대를 결정하는 데는 디자인과 장인들의 기술력 외에도 재료 즉, 가죽의 질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질 좋은 생가죽의 선택에서부터 천연 식물에서 추출한 성분을 이용한 가공과 마감처리에 이르기까지 최상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은 최고의 가죽 생산국이라는 명예를 이태리에 가져다주었다. 이태리 가죽의 가장 큰 특징으로 베지터블 무두질(vegetable tanning)이라는 가공 과정을 들 수 있다. 이는 고대로부터 전해져온 가공 방식을 수세기에 걸쳐 가업으로 이어져 내려오며 발전시켜온 것으로,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기로 유명하다. 특히 무두질 또는 태닝이라고 부르는 단계는 염색과 같은 후가공 단계에도 영향을 줄 만큼 가죽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단계로, 어떤 성분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크게 베지터블 무두질과 크롬 무두질으로 나뉜다. 서로 대립하는 두 무두질의 차이점은 한마디로 자연스러움과 인공적임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고급 가죽을 생산할 때 쓰이는 방법인 베지터블 무두질은 나무껍질이나 잎 등 자연에서 채취한 식물성 타닌을 사용해 가공하는 방법으로 인류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온 전통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동물에서 바로 벗겨낸 원피는 부패하기 쉽고 물에 담그면 팽창하며 건조되면 뻣뻣해지기 때문에 그대로 사용할 수 없다. 때문에 인류가 수세기 동안 발전시킨 가공법이 무두질이다. 인류의 오래된 전통 가죽 가공 방식에 쓰이는 타닌은 생가죽을 좀 더 조밀하고 내구성이 강한 재질이 되도록 돕는다. 하지만 이를 이용한 베지터블 무두질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손이 많이 간다. 현대화된 설비를 갖춘 작업장에서 조차 평균 40일 이상이 걸릴 만큼 인건비를 포함한 생산단가가 높다. 때문에 이렇게 가공된 가죽의 경우 크롬 무두질로 가공된 일반가죽에 비해 그 가격은 평균 두 배 이상 높으며 생산량도 전체 가죽 생산의 약 10%에 머문다. 이처럼 가격 경쟁력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고급 제품에서 베지터블 무두질로 가공된 가죽을 많이 쓰는 이유는 자연친화적이며 인체에 해가 없을 뿐 아니라 가죽 본래의 풍미를 최대한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가죽의 손상을 줄여 가죽 본연의 무늬가 그대로 드러나게 할 뿐 아니라 사용할수록 연해지고 표면에 유막이 생겨 자연스럽게 색을 변하게 한다. 또한 가죽 본연의 좋은 향도 지속시킨다.

코스타 랙커 파이핑 작업(Costa Lacquer Piping Application) - 날카롭게 커팅된 모서리 부분에 코스타 잉크를 여러 번 덧칠하는 섬세한 마무리 공정은 제품의 미적인 완성도를 높임과 동시에 상품의 형태와 구조를 더욱 견고히 한다. 코스타 랙커 파이핑 작업(Costa Lacquer Piping Application) - 날카롭게 커팅된 모서리 부분에 코스타 잉크를 여러 번 덧칠하는 섬세한 마무리 공정은 제품의 미적인 완성도를 높임과 동시에 상품의 형태와 구조를 더욱 견고히 한다.

복잡한 가공 과정과 긴 작업 시간으로 인해 대중적인 접근에 한계가 있는 베지터블 무두질을 대신하고자 개발된 것이 크롬 무두질이다. 1858년 발견된 3가 크로뮴(chromium Ⅲ)을 포함하여 여러 중금속과 화학물질을 이용해 가죽을 가공하는 방식으로, 작업과정의 간소화와 더불어 대량생산을 가능케 했다. 기존의 식물성 타닌 가공보다 사용자가 길들이기에 용이하며 선명한 색상과 오염에 강하기 때문에 사용이 편하다. 무엇보다도 생산단가가 낮아 가격 경쟁력에서도 뛰어나다. 때문에 현재까지도 세계 가죽 시장의 대부분은 크롬 무두질로 가공된 가죽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6가 크로뮴을 비롯한 가공에 쓰이는 일부 성분이 발암물질로 알려지면서 그것의 사용을 제한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이 명품을 만드는 것일까. 훌륭한 재료와 이를 다루기에 부족함 없는 기술력을 선보이는 장인들의 손길, 그에 걸맞게 쉬이 접근할 수 없게 형성된 높은 가격대, 소유욕을 자극하는 훌륭한 마케팅과 이를 뒷받침하는 자본. 이 외에 무엇이 더 있을까. 필자는 이태리의 가죽 가공의 예를 통해,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도 흔들림 없이 옛것을 고수하며 묵묵히 세월을 더해가는 이들과 또 그것의 가치를 인정하는 이들을 떠올린다. 이미 오랜 전통을 가진 명품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유럽국가들 뿐 아니라 후발주자들이라 할 수 있는 국가들에서도 자국 브랜드에 대한 애착과 소비자들의 자부심은 생각보다 크다. 벨기에의 에르메스라 불리는 델보(Delvaux)의 경우 대부분의 소비가 자국에서 이루어질 만큼 자국민들의 애착은 대단하다. 우리들 곁에도 수십 년 이상의 노하우를 쌓아온 작은 브랜드들과 수백 년을 이어오며 축적된 기술을 다루는 장인들은 늘 있어왔다. 다만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브랜딩하는 작업과 더불어 그 가치를 알아보고 애정을 갖고 찾아주는 소비자가 늘어갈 때 비로소 메이드 인 코리아의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의 탄생을 볼 수 있으리라 그려본다.

--------------

글: 한문희 대표  Dickinson’s Room

한문희 대표는 뉴질랜드 메시 대학(Massey University)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뉴질랜드와 영국의 디자이너 밑에서 경력을 쌓았고 현재 패션 브랜드 Dickinson’s Room의 대표 겸 디자이너로 있다.

생활부  lifestyle@epochtimes.co.kr

<© 대기원시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영상
  • 1
  • 2
  • 3
  • 4
  • 5
여백
포토
  • 1
  • 2
  • 3
  • 4
  • 5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