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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예절 규범서 弟子規] 간언을 받아들여 어진 정치를 펼친 제나라 경공 (29)아동 예절 규범서 '제자규(弟子規)'
  • 글 이육수(李毓秀) / 번역 소강(素江)
  • 승인 2012.05.02 23:21

 

[參考故事참고고사] 간언(諫言)을 받아들여 어진 정치를 펼친 제(齊)나라 경공(景公)

춘추시대(春秋時代) 제나라, 3일 내내 눈이 내리던 어느 날 경공(景公)이 여우털옷을 입고 어전(御殿)에 앉아 있었다. 이때 대신 안영(晏?)이 경공을 알현하려고 들어왔다. 경공이 안영을 보고 말하였다. “정말 이상하다! 이렇게 많은 눈이 내렸는데도 날씨가 춥지 않으니 말이오.” 그러자 안영이 대답하였다. “춥지 않으십니까? 제가 알기로는, 고대의 현군은 음식을 배부르게 먹을 때 백성들의 배고픔을 걱정하고 옷을 따뜻하게 입을 때 백성들이 추위에 떨까 걱정하면서 ‘편안할 때 백성의 노고를 헤아린다’고 했다는데, 지금 전하께서는 그 말을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이에 경공이 말하였다. “정말 옳은 말이다! 과인은 경의 건의대로 하겠다.” 그러고는 옷과 곡물을 추위에 떨고 기아에 허덕이는 백성들에게 나눠주도록 명하였다.  (《안자춘추(晏子春秋)》)


토사구팽(兎死狗烹)된 문종(文種)

문종(文種)과 범려(范?)는 본래 춘추시대 초나라 사람이었는데, 후에 월(越)나라 충신이 되었다. 월나라 왕 구천(句踐)이 범려의 충고를 듣지 않고 오나라를 공격하다 패(敗)하자, 문종은 오나라 왕에게 월 왕의 죄를 사해 달라고 죽음을 무릅쓰고 간청하였다. 오나라 왕 부차(夫差)는 문종의 간청을 받아들여 병사들을 물렸다. 그 후, 문종(文種)과 범려(范?)는 있는 힘을 다해 월나라 왕을 보좌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 범려는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큰 공을 세우고 나서 스스로 물러나 이름과 성을 바꾸고 제나라에 가서 장사를 하며 살았다. 이렇게 제나라에 은거한 범려는 월나라에 남아 있는 문종을 염려하여 편지를 보내 충고하였다.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이라도 방치해두기 마련이고, 토기를 잡고 나면 사냥개는 잡아먹힌다네. 월나라 왕의 됨됨이로 보아 그와 어려움은 같이할 수 있으나, 영화는 함께 누릴 수가 없다. 그대는 어찌하여 아직도 떠나지 않는가?” 문종은 즉시 아프다는 핑계로 물러나 다시는 입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모함을 받아 월나라 왕이 내린 검으로 끝내 자살을 하게 된다.   ( 《사기(史記)》)

글 이육수(李毓秀) / 번역 소강(素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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